‘뉴 이재명’이라는 유령 [아침햇발]

이세영 기자 2026. 3. 17.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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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언주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이 15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뉴 이재명을 논하다’ 토론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세영 | 논설위원

유령이 배회한다. ‘뉴 이재명’이라는 유령이다. 그것이 유령인 건 ‘부재하지만 현존하는 실체’여서다. 많은 이들이 ‘뉴 이재명’이라는 ‘세력’과 ‘흐름’에 관해 이야기하지만, 아직은 여론조사 통계표상의 숫자로 존재할 뿐 과거의 ‘노사모’나 ‘손가혁’처럼 정치 현장에서 목격 가능한 ‘집단 주체’가 아니다. 우리를 사로잡으면서도 자신은 포착되지 않는 무엇, 포착 불가능하지만 믿을 수밖에 없는 무엇이란 점에서 ‘뉴 이재명’은 유령이다.

3주 전에 쓴 ‘‘뉴 이재명’은 죄가 없다’라는 칼럼을 대통령이 아무런 논평 없이 엑스(X)에 공유했다. 사람들은 그것을 칼럼 내용에 대한 대통령의 동의로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유튜브 생태계는 대체로 반응이 둘로 갈렸다. 일부는 ‘뉴 이재명’이란 최초 명명이 한겨레 여론조사 보도에서 이뤄졌음을 언급하며 ‘레거시 미디어의 불순한 갈라치기 공작’이라고 분기탱천했다. 창졸간에 ‘올드 이재명’으로 ‘강제 분류’ 당한 이들의 반응이었던 만큼 ‘그러려니’ 했다.

반면 ‘대통령께서 직접 ‘뉴 이재명은 죄가 없다’고 교시하셨으니, 비판자들은 입을 닫으라’며 기세등등해하는 이들도 있었다. 대부분 ‘뉴 이재명’ 콘텐츠로 접속자 수를 늘려온 친여 유튜버들이다. ‘민주당이 안정적 집권 기반을 다지고 싶다면, (편의상) ‘뉴 이재명’으로 명명한 이질적 유권자층을 기존의 친민주당 유권자 연합에 결합시킬 정교한 전략과 정치 기획이 필요하다’는 취지의 진단서가 ‘뉴 이재명’ 마케터들을 위한 ‘무한 까방권 보증서’로 전용되고 있었던 것이다.

지난 15일 국회에서 열린 ‘뉴 이재명 토론회’ 역시 당혹스럽긴 마찬가지였다. ‘뉴 이재명’의 심벌을 자처해온 이언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주최한 행사였다. 발표자와 토론자들 대부분은 ‘뉴 이재명’을 구원의 약정서를 들고 미래에서 찾아온 새로운 정치 주체, 환대받아 마땅한 ‘뉴 웨이브’로 평가했는데, 정작 내 눈길을 끈 것은 이들의 말보다 유튜브 중계 화면에 비친 토론회장 풍경이었다. 플로어를 채운 이들의 다수는 60~70대로 보이는 여성들이었는데, 프리드리히 니체와 알랭 바디우라는 낯선 이방 철학자까지 인용해 ‘뉴 이재명’을 칭송하고 ‘앙시앵레짐’을 공격하는 인문학자 유튜버의 확신에 찬 언설에 환호와 추임새, 화끈한 구호 연창으로 화답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뉴 이재명’을 둘러싼 이런 흐름에는 현상에 대한 해석과 개입을 통해 각자의 정치적 욕망과 이익을 실현하려는 개별적·집단적 모티브가 작용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는 ‘뉴 이재명’이 유통되는 담론 시장의 전위에 누가 서 있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 민주당 전현직 의원 그룹에선 ‘탈당 후 재입당파’와 ‘전향 보수파’들이 단연코 눈에 띈다. 유튜브 생태계에선 핵심 메이저 채널들이 분점해온 정치 콘텐츠 시장에서 점유 지분 확대를 도모하던 중소 규모 플랫폼들이 다수다. 이들은 ‘뉴 이재명’이란 유령을 불러내 여권의 지형을 ‘기득권’ 대 ‘소외된 신진 세력’으로 구분 짓고 스스로 ‘반기득권’의 대표 주자로 자리매김하려 한다.

반면 여권의 명망가들 일부는 ‘뉴 이재명’이란 명명과 현상 앞에 강한 불쾌감과 경계심을 드러낸다. ‘뉴 이재명’을 둘러싼 최근의 논의 구도와 관련해 ‘뉴’와 ‘찐’ 같은 접두어는 “배제와 갈라치기의 언어”라고 직격한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가 대표적이다. 이는 지극히 현실적인 반응이다. 유령이란 무엇이라고 형용할 수 없다는 점에서 “달랠 수 없는 불쾌감”(자크 라캉)을 갖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런 불쾌감과 두려움은 역설적이게도 ‘뉴 이재명’이란 유령을 살아 움직이게 만드는 힘이다.

흥미로운 건 ‘뉴 이재명’이란 유령을 환대하는 쪽도 경계하는 쪽도 ‘외연 확장’의 중요성을 입 모아 이야기한다는 점이다. 이 확장이 ‘안정적 다수 연합’의 구성을 뜻하는 것이라면, 그들이 할 일은 명확하다. 전통 지지층과 신규 지지층의 욕망과 요구를 한데 묶어낼 새로운 ‘상징’(과 ‘정책’)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것이 꼭 공통의 호감 대상인 지도자의 이름이거나 ‘뉴 이재명’ 같은 구별짓기식 조어일 필요는 없다. 경쟁 정치세력을 향한 경멸과 적대감에 편승한 정치 슬로건 역시 답이 아니다. 국정지지율이 80% 선을 오르내리며 ‘우리 이니 마음대로 해’라는 유행어까지 낳았던 문재인 정부가 어쩌다가 윤석열 괴물 정부의 등장에 길을 터줬는지를 되짚어보면 답이 보일지도 모르겠다.

mon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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