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타적유전자·박재항〉밥벌이 vs 밥 짓기

풀조차 제대로 자랄 수 없는 거친 땅이라 '불모지대(不毛地帶)'라고 했다. 식물도 거부되니 당연히 문명의 산물들도 깃들일 수 없는 그곳 시베리아에서 이차대전 종전과 함께 소련군의 포로로 11년 동안 억류돼 중노동을 한 일본군 대본영 참모 출신의 엘리트 장교가 있다. 겨우 살아남아 모국 일본으로 귀환했다. 본인이 애쓰지는 않았지만, 그의 참모 역할을 눈여겨 본 종합상사의 사장 눈에 들어가 입사했다. 군 시절에 익혔던 정보 수집, 인맥 활용으로 두각을 나타내고 최고경영자까지 올라갔다.
종합상사인 만큼 해외 시장을 무대로 활약했다. 한국의 제3공화국부터 제6공화국까지 정치권의 주요 인물들과 교류하며 한일 관계의 숨은 주역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그를 모델로 한 소설이 1970년대 말에 일본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베스트셀러가 됐다. 2009년에 일본 후지TV의 창사 50주년 특집드라마로 만들어져 역시나 큰 인기를 끌고, 한국에서도 OTT를 통해 몇 차례 방영되고 있다. 소설 첫 장면의 배경이자 제목이기도 한 드라마 '불모지대'를 최근 보았다.
가수로도 유명한 여성이 주인공의 부인 역으로 나온다. 전쟁이 끝난 후 11년 동안 생사도 알 수 없는 남편을 기다리며 남매를 키운 강인한 여성이다. 그런데 주인공 남성이 종합상사에서 직장인으로 일을 하기 시작한 후, 그 여성은 판에 박힌 모습으로 나타난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는 퇴근한 남편의 가방을 받아 든다. 남편은 그녀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노룩(no look)으로 가방을 건넨 후에 자신의 서재 같은 방으로 들어가서 양복 윗도리를 옷걸이에 걸고는 거실로 나간다. 어느새 부인은 맥주나 호리병에 든 일본 술을 간단한 안주거리와 함께 차려서 내놓는다.
일상으로 되풀이되는 이 풍경은 1950년대를 배경으로 한 흑백으로 방영되던 미국 드라마에도 나온다. 일본인들이 경탄하면서 자신들의 벤치마킹 대상으로 삼았던 미국도 별반 다르지는 않았던 것이다. 1998년에 개봉했던 영화 '플레전트 빌(Pleasantville)'의 장면들이다.
'나 퇴근해서 왔어요('I', home)'라고 남편이 말하며 중절모와 윗도리를 옷걸이에 건다. 부인이 차린 풍성한 저녁 식탁을 즐기는 남편과 아이들의 생활은 다음 날 아침과 별다를 바 없다. 아침의 식탁에는 팬케이크가 풍성히 쌓여서 나오는 것만 다를 뿐이다. 본능적 감성에 이끌려 저녁을 차리지 않은 여성을 두고 동네의 남성들이 너무나 놀란 표정으로 합창을 하는 노래의 가사는 너무 원초적이다.
"내 저녁은 어디 갔어?"
그렇게 남자들은 여성들이 차려주는 저녁을, 한 끼의 식사를 당연하게 천부의 권리처럼 받아들였다. 밥을 먹을 시간의 식탁에 식사가 차려 있지 않을 때 그들은 부당한 처우를 받은 것처럼 분노하고 봉기했다. 그런 1950년대 미국 남성의 분노를 보면서 생각나는 한국의 여성이 있었다.
대한민국 헌정사상 최초로 여성 대통령 후보로 나섰던 이다. 21세기도 아니고 지금으로부터 40년 전인 1987년의 13대 대통령 선거였다. 당시 집권여당의 통제 하에 만들어진 관제 야당이라고 했지만, 엄연히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정당에서 여성을 대통령 후보로 내세웠다. 1933년생으로 당시 50대 초반이었던 홍숙자씨가 주인공이었다. 우리나라 최초 여성 외교관, 세계여성단체협의회(ICW) 회장 등 숱한 '최초'의 기록을 가진 그는 당시 "정치 기적을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그가 먼저 기적을 만든 장소가 있다. 1957년 기독교 재단의 주선을 간 유학 중에 주위 소개로 결혼을 하면서 홍숙자씨가 조건을 하나 내건다. '부엌일을 하지 않겠다'였다.
드라마 '불모지대' 주인공의 처로 나온 여성은 11년 동안 두 남매를 남편 없이 키웠다. 회사원이 된 남편에게 그리고 집을 나서는 아이들을 포함한 가족들에게 풍성한 식사를 제공하고 집 안을 청소하는 모습만 계속 나온다. 철저히 남편과 자식의 그늘 속에만 산다. 같은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드라마 '플레전트 빌' 속 미국의 가정주부들의 행태도 다르지 않았다. 동시대 한국을 대표하는 여성으로 세계 외교 무대에서 활약했던, 최초의 여성 외교관이자 대통령 후보로까지 나선 이가 거부했던 한국의 부엌은 지금 어떨까.
여성 대통령 후보가 나오던 1980년대 후반에 어머니와 함께 아파트 단지에 있던 상가 지하의 식품부에 간 적이 있었다. 반찬가게 앞을 지나던 40대 아저씨들 몇이 투덜거리듯 농담을 했다. "여자들이 할 일이 없네. 사가서 내놓기만 하면 되는구나." 어머니께서 혼잣말처럼 내게 속삭이셨다. "남자들은 돈만 벌어 갖다주면 되고."
그렇게 돈을 벌기 위한 노동의 일상을 두고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이라 하며 '밥벌이'란 표현을 흔하게 쓴다. 김훈 작가의 '밥벌이의 지겨움'이란 책을 회사 책상 위에 두었을 때, 지나가는 이마다 제목이 가슴에 확 꽂힌다고 했다. 집에 그 책을 갖고 가자, 처는 코웃음을 치면서 '밥 짓기의 지겨움은 밥벌이의 100배'라고 했다. 애 둘을 두고 직장을 다니는 여자 후배는 처의 말에 사무칠 정도로 공감한다고 했다. 자신은 배달을 하든 반찬가게에서 사든 남이 준비하고 차려준 음식을 꺼내어 놓는 것만도 힘들다면서 100표를 처의 말에 던져주고 싶다고 했다.
요리하고 밥 차리는 남성들이 많아진다는 소리가 나온 지 오래다. 1990년대 말부터 10여년 넘게 한국인 라이프스타일 조사를 담당했었다. 남성들의 가사 참여도는 꾸준히 오르는 경향을 보였다. 가사 노동에 관한 설문 중 기혼자들 대상으로 '가사 노동을 공평하게 분담한다'는 항목이 있었다. 남편들이 30~40%의 긍정률을 보였는데, 그렇게 생각하는 여성들의 비율은 1/3 수준인 10%대에 그쳤다. 가사에 대한 인식으로부터 시작된 그 차이를 즉석밥에 대한 태도에서 극명하게 느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