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이란 전쟁에 흔들린 미 외교 일정…트럼프 “미·중 정상회담 한 달 연기 요청”
중 외교부 “미국과 소통 중” 사실상 인정
“전략적 여유” 중국에 나쁘지 않다 평가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과의 전쟁을 이유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을 한 달가량 연기해 줄 것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중국은 “미국과 소통하고 있다”며 트럼프 대통령의 방중 연기 요청을 사실상 인정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16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미·중 정상회담 연기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나는 참석하고 싶지만 전쟁 때문에 지금 여기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그래서 (중국 측에) 한 달 정도 연기해 달라고 요청했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시 주석과 “아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다른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라면서 “전쟁이 진행 중이고, 내가 여기 있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새로운 정상회담 날짜와 관련해 “조금 연기될 수 있지만 크게 연기되지는 않을 것”이라면서도 구체적인 시일을 언급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오는 31일부터 다음 달 2일까지 중국을 방문해 시 주석과 정상회담을 할 예정이었다. 두 정상은 이번 정상회담에서 지난해 10월 부산에서 합의한 ‘1년간의 관세 휴전’을 확정할 계획으로 알려졌지만 미·이란 전쟁 장기화로 향후 일정이 불투명해졌다.
트럼프 대통령의 미·중 정상회담 연기 요청은 미·이란 전쟁이 장기화하는 기로에 놓인 가운데 최고 군통권자가 자리를 비우는 데 따른 부담감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15~16일 프랑스 파리에서 허리펑 중국 국무원 부총리와 트럼프 대통령 방중 준비를 위한 회담을 진행한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은 이날 CNBC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과의 전쟁 지휘를 위해 워싱턴 DC에 남기를 원한다면 미·중 정상회담이 연기될 수 있다”며 “이런 시점에 외국에 나가는 것은 최선의 선택이 아닐 수 있다”고 말했다.
베선트 장관은 중국의 대이란 관계가 정상회담 연기의 이유는 아니라고 밝혔다. 그는 “만약 어떤 이유로든 정상회담이 연기된다면 물류적인 문제 때문”이라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에 군대를 파견해 호르무즈 해협 상선 호위 협조를 요청한 것 때문은 아니라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앞서 파이낸셜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중국이 호르무즈 해협 재개방에 협조하지 않으면 정상회담을 연기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중국도 트럼프 대통령의 방중 연기 요청 사실을 사실상 인정했다. 린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17일 정례 브리핑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방중 연기 가능성이 어느 정도인지 묻는 질문에 “중·미 양측은 트럼프 대통령의 방중 문제와 관련해 소통을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린 대변인은 미국으로부터 일정 연기 요청을 받은 시점이나 양측이 논의하는 구체적인 일정과 관련해서는 “현재 추가로 제공할 수 있는 정보는 없다”고 말했다.
린 대변인은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이 호르무즈 해협 군사행동에 동참하지 않으면 방중 연기를 요청할 수 있다’고 파이낸셜타임스 인터뷰에서 밝힌 것과 관련해서는 “미국 측이 잘못된 보도에 관해 이미 해명했다”며 “트럼프 대통령의 방중은 호르무즈 해협과 무관하다”고 답했다.
미·중 양측이 정상회담과 ‘호르무즈 해협 문제’와 무관하다고 선을 그으면서 중국이 트럼프 대통령의 회담 연기를 수용할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양측이 ‘이란 문제’로 극한 대립한다는 인상을 피하면서 회담 연기에 따른 부담을 다소 덜었다.
중국 역시 미·중 정상회담 연기를 내심 반긴다는 평가도 나온다. 미국에 대한 신뢰나 기대치가 처음부터 높지 않았던 데다 자국의 우방국과 전쟁을 벌인 미국 대통령을 환영하는 것도 부담이었기 때문이다.
홍콩 성도일보는 ‘트럼프의 협박은 쉽게 통하지 않고, 중·미 정상회담 연기는 중국에 나쁠 것 없다’는 제목의 17일자 사설에서 “미·이란 전쟁이 교착 상태에 빠진 상황에서 중국이 ‘광인(狂人)’을 성대하게 맞이할 경우 오히려 국제사회의 비판을 받을 수 있다”며 “정상회담 연기는 중국에 더 큰 전략적 여유를 제공할 것”이라고 평했다.
중국 측은 정상회담 준비 기간이 촉박한 것에 불만을 품었다고 알려져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소식통을 인용해 중국은 앞서 트럼프 대통령의 4월 말 방중을 제안했다며, 정상회담 연기가 대만 이슈를 포함한 외교·안보 문제에 관해 더 많은 논의를 가능하게 할 것이라고 전했다.
베이징 | 박은하 특파원 eunha999@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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