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 꺼진 화장장, 튀김 없는 식당… 이란전 여파로 남아시아 에너지 대란 현실화
印 뭄바이 식당 20% 휴업
파키스탄 대학 휴교령
방글라데시 국영 공장 가동 중단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침공 여파로 촉발된 세계 에너지 위기에 남아시아 국가 경제 전체가 크게 휘청거리고 있다. 인도와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등은 막대한 양에 달하는 화석 연료를 중동 걸프 지역 수입에 전적으로 의존하다 가스 수급에 직격탄을 맞고 국가 비상사태에 준하는 경제 위기를 겪는 중이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액화석유가스(LPG)를 수입량이 많은 인도는 상업 인프라 근간인 요식업계부터 쓰러졌다. 16일(현지시각) 파이낸셜타임스(FT)와 힌두스탄타임스 등 주요 매체 보도를 종합하면 최근 수도 델리와 경제 중심도시 뭄바이 등 인도 전역에서 대형 식당들은 가스 소비량이 유독 많은 튀김 요리와 장시간 끓여야 하는 메뉴 판매를 일제히 중단했다. 인도호텔레스토랑협회(AHAR)는 가스 부족을 견디지 못하고 뭄바이 지역 호텔과 식당 20%가 이미 임시 휴업에 들어갔다고 공식 발표했다. 협회는 소속 회원들에게 가스 소모를 조금이라도 줄이려 요리할 때 반드시 솥뚜껑을 덮으라는 구체적인 지침까지 내린 상태다.
유명 식당 체인 다리야간지 창업자 아밋 바가는 “인도 식당 80%가 상업용 LPG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며 재고는 길어야 1~2일 치에 불과해 수급이 단 하루만 끊겨도 곧바로 문을 닫아야 하는 취약한 구조”라고 힌두스탄타임스에 전했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대국민 안심 성명을 잇달아 발표했지만, 현장 시장에서는 이미 가스 사재기와 가격 폭등이 일상화하며 혼란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는 양상이다. 가스 가격이 여전히 상승세인 점을 감안하면 인건비와 재료비를 도저히 감당하지 못한 인도 내 식당 연쇄 폐업 사례는 더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거대 자본을 갖춘 식당 체인보다 자금력이 현저히 부족한 영세 상인과 일반 서민이 매일 체감하는 고통은 훨씬 더 심각한 수준으로 추정된다. 인도 뭄바이 도심에 위치한 패스트푸드점 매니저 비젠더 나이크는 FT에 “정상적인 유통 루트로는 가스통을 아예 구할 수 없다”며 “암시장에서 거래되는 가스통 한 개 가격은 평소 두 배인 1800루피(약 2만 9000 원)까지 치솟았다”고 했다. 뉴델리 상업지구 길거리에서 끓인 차를 파는 노점상 트리나스 마토 역시 “가스 1kg 가격이 위기 이전 100루피에서 불과 며칠 만에 250루피로 폭등해 손해를 줄이려 어쩔 수 없이 차 제공량을 줄였다”고 FT에 전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장례를 치르는 필수 시설인 화장장마저 가스 공급이 완전히 끊겼다. 관계 당국은 시신이 제때 처리되지 못하고 화장장에 무더기로 쌓이는 최악의 사태를 막기 위해 가스 대신 전기 용광로나 나무 장작, 석탄, 등유를 이용해 화장을 하는 등 촌극을 벌였다. 평범한 인도 시민들도 생필품인 취사용 가스통을 구하기 위해 매일 아침 배급소 앞에 몇 시간씩 줄을 서서 뜬눈으로 대기하는 실정이다.

가스 대란이 몰고 온 충격파는 인도를 넘어 이웃 남아시아 국가 전체로 빠르게 번져나가고 있다. 파키스탄은 국가 차원에서 에너지 소비를 극단적으로 줄이고자 이달 말까지 전국 모든 학교 문을 강제로 닫는 초강수를 뒀다. 대학 수업은 전면 온라인으로 전환한다. 파키스탄 공공기관은 주 4일 근무제를 전격 도입하고, 내수용 휘발유 가격을 단번에 20% 인상하는 극약 처방까지 동원했다. 셰바즈 샤리프 파키스탄 총리는 긴급 대국민 연설에서 “국가 경제 상황이 조금만 더 악화하면 기초 물가를 도저히 통제할 수 없는 끔찍한 지경에 이른다”며 절박하게 에너지 절약을 호소했다.
방글라데시 내부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타리크 라흐만 신임 방글라데시 총리는 정부 부처 집무실 조명을 절반으로 줄이고 에어컨 가동을 전면 금지했다. 나아가 전력망 붕괴를 막기 위해 국영 비료 공장 가동을 15일간 중단하고, 여기 쓰이는 가스 물량을 모두 핵심 발전소로 돌렸다. 다카 대학교 학생 대표 우마마 파테마는 “가스 부족 여파로 대학 내 수많은 주요 시험이 돌연 취소됐다”고 했다.
만성적인 경제난에 시달리며 국가 부도 사태를 겪었던 스리랑카 역시 이번 가스 부족 사태를 비켜 가지 못했다. 스리랑카 전역 주유소마다 얼마 남지 않은 연료를 구하려는 삼륜택시와 오토바이가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길게 줄을 늘어서며 도심 교통이 마비됐다. 아누라 쿠마라 디사나야케 스리랑카 대통령은 대국민 담화에서 “현재 국가 전체가 보유한 LPG 재고 물량은 고작 일주일 분량에 불과하다”고 시인했다.

남아시아 지역은 중동 산유국에 절대적이라고 할 만큼 가스 수입 의존도가 높다. 인도는 자국에서 소비하는 전체 LPG 수입 물량 60%를 아랍에미리트(UAE)를 비롯해 쿠웨이트, 카타르, 사우디아라비아 등 걸프 지역 국가에서 들여온다. 방글라데시 역시 국가 전체 에너지 수요 95%를 수입 물량에 절대적으로 의존한다. 역시 카타르와 UAE 등 걸프 국가가 LNG 수입량 75%를 홀로 책임지는 구조다.
자체 생산 시설을 일부 갖춘 파키스탄도 전체 가스 소비 20%를 여전히 걸프 지역에서 수입해 충당한다. 당장 파키스탄은 다음 달 카타르에너지로부터 수입하기로 굳게 약속된 LNG 화물선 6척을 단 한 척도 인도받지 못할 위기에 처했다. 카타르는 파키스탄 전체 LNG 수입 물량 90%를 전담 공급하는 핵심 파트너다.
중동 지역 무력 전쟁은 이들 남아시아 국가 경제 뇌관을 직접 건드렸다. 인도와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스리랑카 등 남아시아 국가들은 가스 거래 시장에서 유럽 국가보다 현금 구매력이 떨어진다. 이들은 세계 1위 LNG 수출 시설인 카타르 라스라판 공장 가동이 무력 충돌 여파로 중단된 이후, 같은 가스를 놓고 글로벌 가스 확보 경쟁에서 속수무책으로 유럽에 밀리고 있다. 글로벌 에너지 컨설팅 업체 우드맥킨지는 “갑작스러운 글로벌 가스 공급 충격이 방글라데시를 포함한 남아시아 경제 전반에 걸친 광범위한 에너지 강제 배급제로 곧장 이어졌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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