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전쟁 아니다"… 트럼프 '호르무즈 파병' 요구에 유럽이 등돌린 이유
② 2003년 이라크전 참전의 악몽
③기뢰제거 작전 성공도 장담 못 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호르무즈해협 파병 요구에 핵심 동맹인 유럽이 “우리가 시작한 전쟁이 아니다”라며 등을 돌렸다. 유럽의 안보 이익과 직결된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미국의 지원이 절대적으로 필요한데도 거부 의사를 밝힌 것이다. 유럽은 그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에서 발을 빼려는 트럼프 대통령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상호관세나 방위비 인상 압박을 감수해왔다.
가장 강경한 거부는 독일에서 나왔다.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 대변인인 슈테판 코르넬리우스는 16일(현지시간) “전쟁이 지속되는 한 어떤 형태의 개입도 없을 것”이라며 “군사적 수단으로 호르무즈해협을 유지하는 방안에도 참여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보리스 피스토리우스 국방장관은 “트럼프 대통령은 강력한 미 해군도 할 수 없는 일을 유럽 함정 몇 척이 하길 기대하는가”라며 “이것은 우리 전쟁이 아니며, 우리는 이 전쟁을 시작하지 않았다”고 선을 그었다. 불과 2주 전 백악관을 방문한 메르츠 총리가 “이란의 끔찍한 정권을 제거하는 데 있어 미국과 같은 입장”이라며 지지를 표명했던 것과 상반된다.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 역시 기자회견에서 “더 큰 전쟁에 휘말리지 않을 것”이라며 “영국은 합법적이고 제대로 검토된 계획이 있는 작전에만 투입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중동에 함정 12척을 파병할 정도로 이번 전쟁에 가장 적극적으로 개입했던 프랑스의 카트린 보트랭 국방장관조차도 “호르무즈해협에 군함을 보낼 즉각적인 계획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카야 칼라스 유럽연합(EU)의 외교안보 고위대표도 이날 “호르무즈해협은 나토의 작전 구역 밖”이라고 했다.
①”이란 전쟁 장기화가 우크라전에 악재” 판단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 나토를 향해 “우리는 우크라이나 문제에 있어 그들을 도울 필요가 없었지만 도왔고 이제 그들이 도울지 지켜보겠다”고 말했다. 호르무즈해협 파병을 우크라이나 지원과 연계하는 듯한 발언이었다. 그럼에도 유럽은 거부했다.
유럽외교협회(ECFR) 중동 전문가인 줄리안 반스-데이시는 미 CNN 방송에 “중동에 전투기와 군함 등 군사력을 파병한 유럽의 초기 전략은 트럼프 대통령을 만족시켜 우크라이나에 대한 미국의 지원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었다며 “다만 전쟁이 장기화 조짐을 보이면서 (유럽은) 그 전략에 한계를 느꼈다”고 진단했다. 중동에서 서방의 탄약과 무기가 고갈되고 러시아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나토의 발트해 전략자산과 작전 병력이 대거 차출되면서 전력 공백을 우려하게 된 것이다.
무엇보다 트럼프 행정부가 고유가에 대응하기 위해 러시아산 원유 제재를 일시 해제한 것이 컸다. 반스-데이시는 “이란 전쟁으로 트럼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에 집중하지 않고 오히려 러시아 경제에 생명줄을 제공하면서 트럼프와 협력하는 것이 우크라이나에서 유럽의 이익을 확보하는 것이란 판단에 변화가 생겼다”고 덧붙였다.
②이라크전 참전의 악몽

2003년 이라크전 참전 악몽의 영향도 적지 않다. 당시 조지 부시 행정부도 트럼프 대통령처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승인 없이 전쟁을 개시했다. 그러나 수습은 동맹국 몫이었다. 9∙11 테러 직후 나토는 만장일치로 집단 방위조항(나토헌장 5조)을 발동했지만 1년 6개월 후 미국이 이라크 전쟁을 감행하자 분열 직전까지 갔다. 프랑스, 독일은 끝내 파병을 거부했고 반대 여론에도 참전했던 영국은 후유증이 적지 않았다.
미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다만 당시 부시 행정부는 전쟁 개시 이후 참전 여부를 동맹국과 협의하고 유엔에서 논의하는 등 부단히 노력했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그런 노력조차 없다”고 전했다. 당시 나토 주재 미국 대사였던 니콜라스 번스는 NYT에 “트럼프의 근본적 실수 중 하나는 석유 의존도가 큰 유럽 및 아시아 동맹국에 사전에 알리거나 협의하지도 않았다는 점”이라고 꼬집었다.
③군사작전 성공도 장담 못 해

일각에선 유럽이 미국보다 훨씬 많은 기뢰제거함을 보유하고 있다고 하지만 군사작전 성공을 장담할 수 없다. 과거 해군의 핵심 기능이었던 기뢰 제거가 오래전에 군사작전 우선 순위에서 밀려났기 때문이다. 영국 해군사령관을 지낸 톰 샤프는 영국 BBC방송에 “영국의 최신 기뢰 제거 기술들이 실전에서 검증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닉 카터 전 영국 국방참모총장도 “서방 국가들이 대규모 기뢰 제거 작전을 마지막으로 수행한 것은 1991년 제1차 걸프전이었다”며 “당시에도 51일이 걸렸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호르무즈해협에 파병되면 기뢰 제거뿐 아니라 이란 이슬람혁명수비대의 해상 자폭 드론과 미사일도 방어해야 한다.
베를린= 정승임 특파원 chon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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