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VIBE] 최만순의 약이 되는 K-푸드…못생긴 생선의 반전, 물메기
[※ 편집자 주 = 한국국제교류재단(KF)의 2024년 발표에 따르면 세계 한류 팬은 약 2억2천500만명에 육박한다고 합니다. 또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초월해 지구 반대편과 동시에 소통하는 '디지털 실크로드' 시대도 열리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한류 4.0'의 시대입니다. 연합뉴스 동포·다문화부 K컬처팀은 독자 여러분께 새로운 시선으로 한국 문화를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되고자 전문가 칼럼 시리즈를 준비했습니다. 시리즈는 매주 게재합니다.]
![건조 중인 물메기 [연합뉴스 자료사진]](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3/17/yonhap/20260317094409366lgjh.jpg)
겨울 바다에는 겉모습만 보고 판단해서는 안 되는 생선이 있다. 흐물흐물한 몸, 축 처진 입, 어딘가 투박하고 못생긴 외형 때문에 한때는 그물에 걸리면 다시 바다로 던져지던 생선이다. 여러 어부 사이에서는 '재수 없는 고기'라 불리기도 했다. 바로 물메기, 혹은 꼼치다.
그러나 이 생선은 지금 겨울철 해장국의 으뜸이자 우리 민족의 양생 지혜를 고스란히 품은 보물 같은 존재로 다시 태어났다.
물메기는 지역에 따라 꼼치, 물곰, 물미거지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린다. 이름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오랜 세월 사람들의 삶 속으로 깊숙이 들어와 있었다는 뜻이다. 강원도 동해안에서는 묵은김치를 넣어 얼큰하게 끓인 곰치국으로, 남해안에서는 잡자마자 말려 무와 된장을 풀어 끓인 물메기국으로 먹어왔다.

같은 생선이지만 바다의 수온과 바람, 그곳에 사는 사람의 삶의 방식에 따라 전혀 다른 음식 문화로 발전했다. 음식은 늘 그렇게 땅과 사람의 얼굴을 닮아간다.
약선학에서 음식은 곧 약이다. 모든 식재료에는 성질(性)과 맛(味)이 있고, 그것이 몸과 마음에 작용하는 방향이 있다. 물메기의 성질은 차고, 맛은 담백하며 시원하다. 조선 후기 실학자 정약전은 '자산어보'에서 물메기를 두고 '살과 뼈가 매우 연하고 무르며 맛은 싱겁고 술병을 잘 고친다'고 기록했다. 수백 년 전 이미 물메기의 양생적 효능을 정확히 짚어낸 통찰이다.
차가운 성질의 음식은 몸속에 쌓인 과도한 열을 내려준다. 술을 마시면 간에는 열이 쌓이고 피는 탁해진다. 얼굴이 붉어지고 머리가 무거워지며 속이 더부룩해진다. 이때 물메기처럼 차고 맑은 성질의 생선은 열을 식히고 독을 풀어준다.
그래서 예로부터 물메기는 숙취 해소의 으뜸으로 꼽혀 왔다. 겨울에 찬 성질의 음식을 먹어도 되는 이유는 바깥의 한기와 안쪽의 열이 균형을 이루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양생에서 말하는 음양의 조화다.
물메기의 다양한 영양학적 요소
현대 영양학의 눈으로 보아도 물메기는 뛰어난 식재료다. 100g당 열량은 약 78㎉에 불과한 저칼로리 식품이면서도 단백질 함량은 높다. 필수 아미노산이 골고루 들어 있어 성장기 청소년에게는 몸의 기초를 다져주고 노년층에게는 근육과 기력을 지켜준다. 여기에 비타민 B군, 엽산, 철분, 칼슘, 마그네슘이 풍부해 피로 해소와 신경 안정, 빈혈 예방과 뼈 건강에 두루 이롭다.
그래서 물메기는 예로부터 아이들의 보양식이자 노인의 양로식(養老食)으로 여겨졌다.
특히 물메기에 풍부한 타우린 성분은 간 기능 회복을 돕는다. 술로 지친 간을 빠르게 회복시키고 피로를 풀어주며 면역력을 높인다. 감기 예방과 겨울철 원기 회복에 물메기국이 사랑받아 온 이유도 여기에 있다. 흐물거리는 살 속에 이렇게 단단한 영양이 숨어 있다는 사실이 물메기를 더욱 특별하게 만든다.
물메기의 살은 익히면 순두부처럼 풀어진다. 어떤 사람은 그 식감을 두고 '콧물 같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호불호가 분명한 생선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 부드러움 속에는 깊은 철학이 숨어 있다. 도교에서는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긴다(柔能克剛)'고 말한다. 노자는 가장 이상적인 삶의 태도를 물에 비유했다. 물은 가장 낮은 곳으로 흐르며 스스로를 주장하지 않지만 결국 바위를 뚫는다.
물메기는 바로 그 물의 철학을 닮았다. 단단하지 않기에 부서지지 않고 힘을 과시하지 않기에 오래 남는다. 강한 자극 대신 시원하고 맑은 국물로 속을 풀어준다. 겨울철 과식과 음주로 지친 현대인에게 물메기국 한 그릇은 약이자 위로다. 혀를 자극하기보다 몸 깊숙한 곳을 어루만진다.
물메기는 머리부터 내장, 뼈까지 버릴 것이 없다. 살과 뼈가 모두 연해 통째로 먹을 수 있다. 이는 우리 민족 음식 문화의 중요한 특징과도 맞닿아 있다. 우리는 예로부터 재료 하나를 남기지 않고 자연의 은혜를 끝까지 활용해 왔다. 물메기는 그런 '절제와 감사의 음식'이다. 못생겼다고 버려졌던 생선이 다시 밥상 위로 돌아온 것은 우리가 다시 본질을 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손자병법으로 바라본 물메기 요리
이 지점에서 손자병법의 '작전(作戰)의 장'이 떠오른다. 손자는 전쟁을 오래 끌지 말라고 했다. '병귀속전'(兵貴速戰)에 따르면, 군대는 빠름을 귀하게 여긴다. 전쟁이 길어지면 군량은 바닥나고 백성은 지치며 승리의 의미는 퇴색된다. 이 말은 전장에만 해당하지 않는다. 밥상에도, 삶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겨울 바다의 물메기, 혹은 꼼치는 바로 이 '작전'의 지혜를 몸으로 보여주는 생선이다. 제때 잡고, 제때 손질해, 제때 먹어야 한다. 타이밍을 놓치면 맛도 효능도 흩어진다. 물메기는 오래 끌 전쟁이 아니다. 짧고 정확해야 한다.
물메기탕은 작전의 기본이다. 손자가 말했듯 군량은 현지에서 조달해야 한다. 멀리서 끌어오면 비용이 열 배가 된다. 제철 겨울 바다에서 건져 올린 물메기를 무와 파, 고춧가루만으로 끓여도 충분하다. 화려한 전략은 필요 없다. 오래 끓이지 않아도 국물은 이미 시원하다. 최소한의 자원으로 최대의 효과를 내는 것, 그것이 작전의 본질이다.
곰치 김칫국은 지형을 활용한 전술이다. 찬 성질의 물메기에 잘 익은 묵은김치를 더한다. 발효된 김치의 따뜻한 기운이 물메기의 차가움을 조율한다. 이는 음양의 배치다. 작전이란 환경을 적으로 돌리지 않고 아군으로 만드는 기술임을 이 한 그릇이 보여준다.
말린 물메기를 찜으로 만드는 방식은 병력을 아끼는 전략과 닮았다. 말리는 동안 수분은 빠지지만 영양은 응축된다. 찜은 기름을 쓰지 않아 몸에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도 깊은 맛을 낸다. 노자가 말한 '무위'(無爲)의 조리다. 억지로 개입하지 않고 재료가 스스로 제 모습을 드러내게 한다.
물메기 튀김은 기습이다. 흐물거리는 살을 바삭한 옷으로 감싸 전혀 다른 얼굴을 만든다. 자주 쓰는 전략은 아니지만 때로는 전세를 바꾼다. 입맛을 잃은 아이들에게, 생선을 멀리하는 사람들에게 물메기를 건네는 가장 현실적인 작전이다.
회는 가장 짧은 작전이다. 불을 거치지 않고 칼질만으로 먹는다. 조작이 적을수록 본질은 더 선명해진다. 노자가 말한 '큰 도는 단순하다'는 문장이 이보다 잘 어울리는 요리도 드물다.
물메기는 오래 끓일 생선이 아니다. 미루면 상하고 오래 욕심내면 맛이 풀어진다. 손자병법 '작전'의 장이 말하듯 싸움은 짧아야 하고 결정은 빨라야 한다. 제철에, 제 방식으로 먹을 때 물메기는 최고의 약선이 된다.
못생겨서 버려졌던 생선이 지금은 겨울 해장의 으뜸이 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본질을 알면 평가는 바뀐다. 강함보다 부드러움이, 오래 버티는 것보다 제때 물러날 줄 아는 지혜가 더 큰 힘이 된다.
탕으로 끓여도, 김칫국에 담가도, 찜으로 익혀도, 바삭한 튀김이 되어도, 혹은 회로 차분히 마주해도 물메기는 한결같은 목소리로 우리에게 말을 건넨다. 급히 소모하며 버티는 전쟁 같은 식사가 아니라 몸의 흐름을 읽고 기력을 아끼는 작전 같은 밥을 하라고.
또한 화려하지도 않다. 기름지게 흥분시키지도, 자극으로 몸을 몰아붙이지도 않는다. 대신 맑고 깊은 국물로 장부를 덥히고 부드러운 살결로 소화의 부담을 덜어 노화를 늦춘다. 천천히 흡수되고 오래 남아 몸을 지탱하는 저속노화 음식의 미덕을 고스란히 품고 있다.
노자는 말했다. 강한 것은 먼저 부러지고 부드러운 것이 오래 간다고. 물메기의 연약해 보이는 살과 투박한 생김은 바로 그 이치다. 빠른 에너지로 몸을 소모하지 않고 긴 겨울을 건너게 하는 지혜. 그것이 물메기의 작전이다.
그래서 물메기는 겨울의 보약이자 삶의 방식에 대한 조용한 조언이다.
"전쟁처럼 살지 말고 작전처럼 먹어라."
몸을 늙히지 않는 한 끼, 시간을 아끼는 한 그릇. 물메기는 그렇게 겨울이 우리에게 건네는 가장 지혜로운 저속노화 음식이다.
최만순 음식 칼럼니스트
▲ 한국약선요리 창시자 ▲ 한국전통약선연구소장 ▲ 중국약선요리 창시자 팽명천 교수 사사 후 한중일 약선협회장 역임
seva@yna.co.kr
▶제보는 카톡 okjebo
Copyright © 연합뉴스. 무단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 이장우, 식자재값 미지급 논란에 "전액 지급, 중간업체 문제" | 연합뉴스
- 남편 독살하고 '슬픔 이기는 법' 동화 쓴 美작가…4년만에 죗값 | 연합뉴스
- 부하직원 책상·컴퓨터·근무복에 체모…50대 재물손괴로 송치 | 연합뉴스
- 662m 도로, 착공 무려 11년만에 개통…시간도 혈세도 버렸다 | 연합뉴스
- 국민 절반 이상 "고소득층 세금 너무 낮다" | 연합뉴스
- "모즈타바, 美공습 때 마당 나가있어…몇분 차이로 미사일 피해" | 연합뉴스
- 부산서 항공사 기장 살해한 50대 남성 울산서 검거 | 연합뉴스
- 지귀연도 '법왜곡' 고발…서울경찰청 광수단이 수사 | 연합뉴스
- NCT 재민이 팬들에게 선물한 상품권, 이마트 직원이 '꿀꺽' | 연합뉴스
- 지인에 필로폰 투약 혐의 황하나, 첫 재판서 공소사실 전면부인 |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