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는 '총'이 아닌 '마음'에서 시작된다 [전문가 칼럼]

2026. 3. 17.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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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정호 성균관대 교수
양정호 성균관대 교수

대한민국 안보가 안팎으로 거대한 시험대에 올랐다. 밖으로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호르무즈 해협의 안전한 통과를 위해 한국을 포함한 우방국에 군함 파견을 노골적으로 요구하며 안보 청구서를 들이밀고 있다. 안으로는 인구 절벽으로 인한 병역 자원 급감 속에서 과연 우리 사회가 국가를 위한 헌신을 어떻게 가치 매기고 있는지 근본적인 질문이 던져지고 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 안보 결속의 핵심 동력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 지도층이 앞장서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사회에 강력 메시지를 전달해 준다. 미국과 영국에서 명문가 자제들이 최전선에서 피를 흘리는 모습은 흔한 풍경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 왕실의 엘리자베스 2세 공주가 수송보급병으로 복무하고, 미국의 케네디 가문이 해군 장교로 참전해 희생을 치른 사례는 단순한 미담을 넘어 국가적 자부심의 근간이 됐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도 대기업 자녀들의 미담이 화제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딸 최민정 씨가 해군에 자원입대해 아덴만 파병 임무까지 완수한 사례나,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장남 이지호 씨가 미국 국적을 포기하고 해군 장교로 입대해 병역의 의무를 다하는 점 등은 공정한 병역 의무를 다시 확신해 준 장면들이다.

지도층 자제들의 솔선수범은 "왜 나만 군대에 가야 하는가"라는 청년들의 냉소적 질문에 대한 가장 확실한 대답이 된다. 이러한 흐름이 일회성 화제에 그치지 않고, 3대(代)가 현역 복무를 마친 병역명문가에 대한 사회적 존경으로 이어질 때 비로소 안보의 내실은 다져진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홍라희 삼성미술관 리움 명예관장이 지난해 11월 28일 경남 창원시 진해구 해군사관학교 연병장에서 열린 제139기 해군·해병대 사관후보생 수료 및 임관식에서 아들 이지호 소위에게 경례를 받고 있다. (공동취재) ⓒ 뉴스1 윤일지 기자

미국이 군인을 대우하는 법…단순한 혜택 넘어선 '존경'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제도적 혜택보다 더 깊은 곳에 자리 잡은 군을 향한 사회적 예우다. 미국에서 군인은 단순한 직업이 아닌 자유의 수호자로 대접받는다.

미국의 공항에서는 "현재 복무 중이거나 퇴역한 군인이 계신다면 먼저 탑승해 주십시오"라는 안내 방송이 당연하게 흐른다. 주요 항공사는 이들에게 일등석 승격이나 전용 라운지 이용을 우선하여 제공하며 그들의 헌신에 경의를 표한다.

더욱 감동적인 것은 시민들의 자발적인 행동이다. 기내에서 참전 용사를 발견한 유명 록스타나 배우들이 자신의 일등석 자리를 조용히 양보하거나, 식당에서 군복을 입은 장병을 본 시민이 몰래 식사비를 결제하고 떠나는 '미담'은 미국 사회에서 일상의 풍경이다.

할리우드의 대스타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같은 인물들이 레드카펫이나 공식 행사에서 군인을 마주칠 때, "여러분이 우리를 보호해 주기에 우리가 이곳에 있을 수 있다. 진심으로 감사하다"고 고백하는 모습은 군인들에게 그 어떤 훈장보다 값진 자부심을 심어준다.

이란발 안보 청구서, '존경의 안보'로 넘어야

트럼프의 이란 전쟁은 에너지 안보와 장병들의 희생을 선택하게 하는 냉혹한 국제정치의 현실이다. 전 세계 다양한 전장에서 국위를 선양하는 장병들에게 우리는 어떤 존경을 보여주고 있는 다시 한번 자문해 봐야 한다.

지금처럼 병역명문가에 고작 박물관 입장료 할인이나 해주는 수준의 예우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안보의 속을 채우기 위해서는 보다 근본적 변화가 필요하다. 우선 경제적 혜택이 파격적이어야 한다. 미국처럼 민간 기업이 병역명문가와 군인들에게 자발적으로 특별 우대를 제공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사회적 캠페인과 세제 혜택이 병행돼야 한다.

또 '제복 입은 영웅'에 대한 과감한 문화적 예우다. 정치인과 연예인, 기업인들이 앞장서 군인에 대한 존경을 표현하는 문화가 정착돼야 한다. 군복을 입고 거리를 걷는 것이 자랑스러운 사회를 만드는 것이 수조 원의 국방비 지출보다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국가의 무한 책임이다. 고위험 지역에 파병되는 장병들에게는 세계 최고 수준의 보상과 사후 관리를 보장해 "국가를 위한 희생은 국가가 끝까지 책임진다"는 믿음을 줘야 한다.

병역명문가에 '사회적 존경'의 카펫 깔아줘야

병역명문가가 대접받지 못하고, 군인이 조롱받는 나라에서 국가의 위기를 막아낼 용기는 나오지 않는다. 미국의 강력한 군사력은 첨단 무기뿐만 아니라 군인을 향해 "Thank you for your service"(당신의 봉사에 감사드립니다)라고 속삭이는 시민들의 진심에서 나온다.

우리는 먼저 내부의 안보 결속력을 다져야 한다. 지도층의 솔선수범을 격려하고, 병역명문가에 할리우드 스타들의 레드카펫보다 더 화려한 '사회적 존경'의 카펫을 깔아줘야 한다. 국가를 위해 헌신한 이들이 "다시 태어나도 이 나라를 위해 총을 들겠다"고 말할 수 있는 사회, 그것이 진정한 안보 강국으로 가는 유일한 길이다.

이제라도 정부와 정치권은 병역의 가치를 훼손하는 소모적인 논쟁을 멈추고, 병역명문가를 필두로 한 '군(軍) 예우의 상향 평준화'에 나서야 한다. 그것이 대한민국 안보의 백년대계를 세우는 유일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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