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바100] “건설 산재·체불의 핵심은 공사비…적정임금제 도입해야”

박유진 기자 2026. 3. 17.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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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릿지 초대석] 심규범 건설고용컨설팅 대표
심규범 건설고용컨설팅 대표가 브릿지경제와의 인터뷰에서 답변을 하고 있다. (사진=이철준 PD)

건설현장의 산업재해와 임금체불 문제를 둘러싼 정책 논의가 다시 활발해지고 있다. 정부와 지자체가 임금 직접지급제, 전자대금지급 시스템 등 제도적 장치를 확대하고 있지만 현장의 구조적 문제는 여전히 해소되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반복되는 사고와 체불의 배경에는 다단계 하도급 구조와 공사비 축소 관행이 자리하고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심규범 건설고용컨설팅 대표는 “건설 산재와 임금 문제의 근본 원인은 반복적으로 삭감되는 공사비와 그로 인한 노동시장 왜곡”이라며 “적정임금제와 기능등급제 같은 구조적 장치를 통해 건설노동 시장의 질서를 재설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건설업에서 산업재해가 반복되는 원인을 단순히 현장 관리 문제로 볼 것이 아니라, 사업구조 전반의 문제로 봐야 한다는 지적이 있다. 이러한 구조적 원인에 대한 진단과 대안을 제시해 주신다면

“건설 산재의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원인은 입찰·낙찰 과정과 다단계 하도급 구조에서 기술력과 무관하게 공사비가 반복적으로 삭감되는 데 있다. 결국 핵심은 ‘돈의 부족’이다. 현장에서는 불법 재하도급을 거치며 100원짜리 공사가 50원 수준으로 줄어드는 사례도 적지 않다. 비용을 맞추기 위해 공사기간을 단축하고 노동 강도를 높이면서 안전 보호구나 규정은 속도를 늦추는 요소로 취급돼 무시되기 쉽다. 이러한 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산업재해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

최근 정부는 산재와 임금체불, 불법고용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건설사업자 등록 말소, 영업이익의 5% 이내 과징금(하한액 30억원) 부과, 공공공사 입찰참가 제한, 외국인 고용 제한, 금융권 대출 제한 등 행정 규제와 경제 제재를 전방위적으로 강화하고 있다. 이러한 규제가 동시에 작동하는 상황에서 건설업체가 생존하려면 품질·안전·임금 지급·합법 고용 등 요구되는 기준을 모두 충족하면서도 일정 수준의 이윤을 확보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현재와 같은 공사비 구조에서는 이를 감당하기 어렵다. 이제는 낙찰률을 소폭 높이거나 적용 범위를 조정하는 식의 미세한 공사비 보정으로 대응할 수 있는 단계를 넘어섰다. 

품질·안전·임금 지급·합법 고용 등 강화된 규제를 준수하면서도 기업이 생존하려면 ‘제값을 받아 제값을 지급하며 제대로 시공하는 구조’가 필요하다. 발주자가 객관적인 기준에 따라 산정한 공사비, 즉 ‘100원’을 확보하고 집행하는 것이 건설현장 정상화의 출발점이다.

이러한 구조를 만드는 방법 가운데 하나가 ‘적정임금제’다. 임금 하한선을 설정하면 숙련 인력 우선 고용을 유도하고 불법 재하도급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 미국은 공공공사에서 일정 수준 이상의 임금을 지급하도록 하는 ‘프리베일링 웨이지(Prevailing Wage)’ 제도를 1931년부터 운영해 왔는데, 민간공사에 비해 일반재해는 50%, 사망 재해는 15% 감소한 것으로 보고된다. 국내에서도 서울시(2017년), 경기도(2019년), SH공사(2022년 이후) 발주 공사 등에서 시범 적용되면서 불법 재하도급 억제와 산재 감소 등의 효과가 확인됐다.

특히 SH 발주 공사 사례를 보면 물량 단위 성과급 대신 ‘8시간 일급제’를 적용해 무리한 속도 경쟁을 줄이고, 시중노임단가 이상을 지급해 내국인 숙련 인력 고용 비율을 60~80% 수준까지 높였다. 동시에 낙찰률 상승으로 적정 공사비와 공사기간이 확보되면서 무리한 공기 단축이 줄고, 체불과 하자, 산재 위험도 완화되는 효과가 나타났다. 결국 가격을 깎는 경쟁이 아니라 기술과 생산성을 높이는 경쟁으로 전환하는 것이 건설현장 정상화의 핵심이라고 본다.”

-건설 인력 고령화와 외국인 노동자 의존이 커지고 있다. 숙련 인력 유지와 임금 체계는 어떻게 재설계돼야 할까.

“건설 인력의 고령화는 오랜 기간 청년층 유입과 숙련 인력 양성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결과다. 건설산업의 품질 저하와 산업재해 증가의 근본 원인 가운데 하나로도 지목된다. 단순히 고령 인력이 늘어난 것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핵심 건설기능인의 숙련도가 빠르게 낮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2015년 건설근로자 919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와 2024년 건설근로자 1319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를 비교해 보면 이러한 변화가 뚜렷하게 나타난다. 핵심 숙련 인력으로 분류되는 40대 이상 연령대의 구조가 크게 변했다. 2015년에는 40대·50대·60대 이상 비중이 각각 28.6%, 46.3%, 17.0%였지만 2024년에는 18.1%, 34.4%, 33.5%로 나타났다. 40대와 50대 비중은 줄어든 반면 60대 이상 고령 인력 비중은 크게 증가했다.

숙련 수준의 변화는 더 심각하다. 기능공과 팀·반장을 합친 숙련 인력 비중은 2015년 40대·50대·60대 이상에서 각각 73.0%, 91.1%, 90.8%였지만, 2024년에는 51.0%, 59.1%, 53.9%로 크게 낮아졌다. 반대로 일반공과 조공을 합한 비숙련 인력 비중은 17.7%, 4.7%, 5.0%에서 28.5%, 26.6%, 31.9%로 크게 늘었다. 고령화보다 더 심각한 ‘숙련 인력 감소’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숙련 수준의 저하는 품질 저하와 생산성 하락, 산업재해 증가 등 건설현장의 구조적 문제와도 무관하지 않다.

이 같은 변화의 배경에는 저가 수주 경쟁과 다단계 하도급 구조 속에서 공사비가 과도하게 삭감된 현실이 있다. 공사비를 맞추기 위해 공기 단축과 노동 강도가 강화되고, 저임금 외국인 노동자 고용이 늘면서 기존 숙련 인력은 이탈하고 청년층의 신규 진입은 줄어드는 구조가 형성된 것이다. 그 결과 다른 업종에서 이직한 비숙련 인력이 진입 장벽이 낮은 건설현장으로 유입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숙련 인력을 확보하려면 청년층의 진입과 숙련 형성, 장기 근속을 유도하는 구조가 필요하다. 이를 위한 장치가 2021년 5월 도입된 건설근로자 기능등급제다. 독일 건설현장의 ‘마이스터’ 제도와 유사하게 건설기능인에게 4개 등급에 맞는 지위와 역할을 부여하고, 축적된 시공 경험을 체계적으로 활용하면서 그에 상응하는 소득을 보장하려는 취지다. 그러나 제도 도입 이후 등급 보유자에 대한 고용·임금 우대 조치가 제대로 마련되지 않으면서 활용이 제한적인 상황이다.

따라서 기능등급제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활용 방안을 서둘러 법제화할 필요가 있다. 특히 고급·특급 수준의 기능인을 전문건설공사의 현장대리인 배치 기준이나 전문건설사업자 등록 기준, 필수 보유 인력 기준 등에 포함해 제도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동시에 기능인에게 교육자 역할을 부여하고 등급에 따른 임금 차등 체계를 마련해 숙련 인력의 위상과 보상을 제도적으로 보장해야 한다."

-직불제·적정임금제 등 보호 장치가 늘었음에도 체불 문제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다. 현 제도의 가장 취약한 지점은 어디라고 보나

“임금 체불의 원인은 크게 임금 전달 지연과 임금 삭감 두 측면으로 나눠볼 수 있다. 여러 도급 단계를 거치면서 지급이 늦어지는 과정에서 체불이 발생하기도 하지만, 불법 재하도급 과정에서 임금이 부당하게 반복적으로 삭감되면서 지급 능력 자체가 약화되는 경우도 있다. 이 가운데 후자가 보다 근본적인 원인이자 취약한 지점이다.

직불제는 임금 전달 지연을 줄이는 데는 효과가 있지만, 임금 삭감이나 재하도급 문제까지 막지는 못한다. 실제로 공공공사 현장에서도 직불제만으로는 체불이 크게 줄지 않았지만, 적정임금제를 함께 시행한 현장에서는 체불이 상당히 감소한 사례가 확인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금의 건설노동 정책은 ‘통제 중심’에 가깝다는 평가도 있다. 노동 보호와 산업 경쟁력 사이에서 정책의 균형점은 어디에 있어야 한다고 보나

“서울시와 SH가 시행한 적정임금제 현장에서 확인된 성과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시중노임단가를 임금 하한선으로 설정하자 내국인 숙련 인력이 우선 투입됐고, 물량 단위 성과급제가 아닌 8시간 일급제가 적용되면서 노동 강도도 완화됐다. 주휴수당과 초과근로수당이 지급되면서 노동시간이 줄고 주말 휴식이 가능해져 노동자의 만족도와 워라밸도 높아졌다.

작업 속도가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있었지만, 작업 난이도에 맞는 숙련도의 작업팀을 배치하고 관리 체계를 강화하면서 품질·안전·생산성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었다. 근로조건이 개선되면 청년층 유입과 숙련 인력 양성 여건이 마련되고, 이는 건설산업의 경쟁력과 지속 가능성을 높이는 기반이 될 것으로 본다.”

-정부가 도입을 추진 중인 공공공사 발주자의 ‘임금 직접지급제’는 임금체불 방지를 목적으로 하지만, 일각에서는 통장 사용이 어렵거나 당일·주급 지급 관행에 의존해 온 건설 일용노동자들이 현장에서 배제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 제도의 실질적 효과와 현장에서 나타날 수 있는 부작용을 짚어준다면

“임금 직접지급제가 시행되면 대다수 건설노동자에 대한 보호는 강화될 수 있지만, 열악한 처지에 놓인 일부 일용노동자는 현장에서 배제될 가능성도 있다. 전자대금지급시스템을 통한 발주자 임금 직접 지급은 통장 보유와 월 1회 임금 수령을 전제로 하는데, 통장이 없거나 당일 임금이 절실한 일용노동자에게는 이러한 방식이 현실적으로 맞지 않기 때문이다.

이 경우 약 4만~7만 명으로 추산되는 일용노동자가 공공현장 일자리에서 밀려날 수 있고, 일용 인력을 즉시 투입하기 어려워진 건설업체의 생산 비효율도 커질 수 있다. 또한 이들을 연결해 온 제2의 인력 공급망인 유료직업소개소의 역할이 약화되면서 노동시장 구조에도 변화가 생길 수 있다. 결과적으로 일부 취약 노동자의 실업이 늘고 사회적 부담이 확대될 가능성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임금체불 방지와 일용노동자의 고용 접근권을 동시에 보장하려면 현행 직불제·전자대금지급 시스템을 어떤 방향으로 보완해야 한다고 보나.

“대안으로는 1988년 ‘200만호 건설’ 시기부터 자구적 방식으로 형성된 건설노동시장의 ‘임금 선지급 관행’을 제도화하는 방안을 생각해볼 수 있다. 유료직업소개소(직업안정법에 따라 등록)가 일용노동자에게 당일 임금을 먼저 지급하고, 이후 건설업체로부터 해당 임금과 소개수수료(선불노무비)를 후불로 정산받는 방식이다.

이를 위해 국토교통부 고시에 임금 선지급을 인정하는 근거 규정을 마련하고, 전자카드로 확인된 일용노동자의 임금 선지급 내역을 건설업체가 발주자에게 청구하도록 하는 구조를 만들 수 있다. 발주자는 해당 내역을 바탕으로 유료직업소개소에 직접 비용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제도를 설계하는 것이다.”

심규범 건설고용컨설팅 대표 (사진=이철준PD)

◇심규범 건설고용컨설팅 대표는

심규범 건설고용컨설팅 대표는 한국노동연구원 책임연구원,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실장, 건설근로자공제회 조사연구센터장 등을 지내며 30여 년간 건설노동시장과 고용 구조를 연구해 온 전문가다. 문재인정부 일자리위원회(2019~2022년) 위원으로 활동하며 적정임금제와 건설근로자 기능등급제 도입 논의에 참여했고, 국토교통부 건설산업혁신위원회(2018~2022년), 고용노동부 건설근로자고용개선전문위원회(2019~2023년), 서울시 경제민주화위원회(2016~2020년) 등에서도 정책 자문을 맡았다. 최근에는 건설노동시장 사각지대에 놓인 일용노동자의 고용 구조와 임금 지급 방식 개선 방안을 연구하며 제도적 보완책 마련에 집중하고 있다.

박유진 기자 pyj@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