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향만리) 오는 비, 가는 비 / 권규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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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맑은 날은 맑은 날 대로 비가 오는 날은 비 오는 날 대로 운치가 있다.
화자는 비가 내리는 것을 예사로이 바라보지 않고 오는 비, 가는 비를 썼다.
오는 비는 그렇게 어떤 생각을 품고 오고 있다.
머리를 곱게 빗겨서 땅 위에 반듯하게 세우려고 오는 비가 오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한 화자의 다정다감함이 눈길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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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와 풀들까지/ 머리를 곱게 빗겨// 땅 위에 반듯하게 세우려고 오는 비// 사랑도 이쯤이라면/ 만물이 울 만하지// 돌에도 먼지에도/ 이마를 대어 보고// 그렁한 눈망울로 서성이다 가는 비// 적막도 이쯤이라면/ 천지가 울 만하지
『나래시조』(2025, 가을호)
날이 맑은 날은 맑은 날 대로 비가 오는 날은 비 오는 날 대로 운치가 있다. 화자는 비가 내리는 것을 예사로이 바라보지 않고 「오는 비, 가는 비」를 썼다. 전편에서 동심을 읽는다. 어린이 마음이 그 밑바탕에 깔려 있어서 더욱 정감이 간다. 이렇듯 순수성은 곧 시심이 된다.
나무와 풀들까지 머리를 곱게 빗겨 땅 위에 반듯하게 세우려고 오는 비, 라고 첫수 초장과 중장은 노래하고 있다. 화자가 조곤조곤 들려주는 이야기에 금방 몰입이 된다. 정말 그렇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인다. 오는 비는 그렇게 어떤 생각을 품고 오고 있다. 그 대상은 나무와 풀들이다. 달리 말하면 자연이다. 머리를 곱게 빗겨서 땅 위에 반듯하게 세우려고 오는 비가 오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한 화자의 다정다감함이 눈길을 끈다. 그래서 사랑도 이쯤이라면 만물이 울 만하지, 라고 나직이 읊조린다. 사랑의 정도가 이렇게 지극하니 만물이 울음 울 만한 것이다. 그러면 가는 비는 어떤가? 돌에도 먼지에도 이마를 대어 보고 나서 그렁한 눈망울로 서성이다 간다. 이처럼 하잘것없어 보이는 돌과 먼지의 이마를 짚어주는 일은 무척 느꺼운 일이다. 거기에다가 눈망울이 그렁하면서 미련이 남아 서성이다 가는 비의 아련한 모습이 마음을 붙들고 있어서 하염없다. 하여 적막도 이쯤이라면 천지가 울 만하지, 라고 오래 여운이 남는 끝을 맺고 있다. 이렇듯 자신과 더불어 만물과 천지를 사랑하는 마음이 곡진하다. 참으로 정겹고 아름다운 시편이다.
「어른 김장하」를 읽는다.
시간은 무엇으로 시간의 옷을 짓고/ 어른은 무엇으로 어른이 되는 걸까/ 세상과 나의 관계를/ 저울 위에 놓아보다// 시대의 야만 앞에 다림줄을 내리듯이/ 이름없는 작은 시민 이름없는 아버지로/ 고요히 타는 빛들을/ 세상에 바친 사람// 제 몸의 그 꽃들을 저는 보지 못한 채/ 묵묵히 피고 지는 수풀 속의 꽃처럼/ 흰 우주 본령을 따라/ 자박자박 걸었다// 막다른 어귀마다 숨이 찬 그늘들이/ 일순의 변명도 없이 달려드는 그믐밤/ 제 심장 스스로 지펴/ 등불이 된 한 사람.
여러 보도에서 이젠 널리 알려진 김장하 선생에 대한 시조다. 이와 같은 작품은 자칫 찬사 일변도일 수 있지만, 「어른 김장하」는 그렇지가 않다. 진득한 한 편의 시가 되고 있다. 각계에서 어른이 드문 시대에 김장하 선생은 참 어른이다. 시인은 그 점을 진솔하게 노래하고 있다.
이정환(시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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