든든한 당산나무 같았던… 장애인 체육·기술인재·적십자에 헌신[그립습니다]

2026년 밀라노·코르티나 동계 패럴림픽에서 우리 선수들이 메달을 목에 거는 순간, 나는 문득 한 사람을 떠올렸다. 대한민국 장애인 스포츠의 길을 묵묵히 닦아온 고 조일묵(사진) 선배였다.
패럴림픽은 신체적 장애를 가진 선수들이 참가하는 국제 스포츠 대회다. ‘나란히’를 뜻하는 그리스어 ‘파라(para)’와 올림픽의 합성어로, 장애가 있어도 올림픽 정신 속에서 함께 경쟁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우리나라가 패럴림픽에 처음 참가한 것은 1968년 이스라엘 텔아비브 장애인올림픽이었다. 그러나 한국 장애인 스포츠 역사에서 많은 사람들이 떠올리는 장면은 단연 1988년 서울 올림픽이다. 올림픽과 장애인올림픽을 같은 도시, 같은 경기장에서 개최하는 전통이 이때부터 자리 잡았다.
나는 지금도 그날의 장면을 잊지 못한다. 잠실 경기장을 가득 메운 관중석에서 “대한민국 짝짝짝”이라는 응원이 파도처럼 번져가던 순간들이었다. 세계 각국에서 온 장애인 선수들이 입장했고 관중들의 환호가 경기장을 가득 채웠다. 그 함성은 단순한 응원이 아니었다. 대한민국이 장애인 스포츠와 함께 새로운 길을 걷기 시작한 역사적인 선언과도 같았다. 그리고 그 중심에 조일묵 선배가 있었다.
선배는 늘 과묵했지만 한마디 말에는 울림이 있었다. 서울 장애인올림픽 조직위원회 사무총장으로 대회의 준비와 운영을 총괄했다. 국제사회에서는 한국이 올림픽과 패럴림픽을 동시에 성공적으로 치를 수 있을지 우려하는 시선도 있었다. 그러나 서울은 그 모든 의문을 넘어 세계가 인정하는 대회를 만들어냈다. 장애인 스포츠가 인간의 가능성과 존엄을 보여주는 스포츠임을 세계에 알린 순간이었다.
선배의 삶은 장애인 스포츠에만 머물지 않았다. 산업기술 인력 양성과 기능 인재 육성에도 큰 발자취를 남겼다. 국제기능올림픽 한국 대표선수단 단장을 여섯 차례 맡아 대한민국이 세계 기능 강국으로 자리 잡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러한 공로로 석탑산업훈장을 받았고 언론에서는 선배를 ‘기능한국의 숨은 설계자’라고 부르기도 했다.
나와 선배의 인연은 청소년적십자(JRC)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대학생들로 구성된 적십자청년봉사회는 청소년적십자 단원들에게 우상 같은 존재였다. 나 역시 그 선배들을 동경했고 대학에 진학한 뒤 적십자청년봉사회 활동을 하게 됐다. 훗날 적십자사에서 정년을 맞았다. 선배가 일구어 놓은 청년봉사회가 올해 70주년을 맞는다. 세월이 이렇게 흘렀는데도, 선배의 모습은 아직도 내 기억 속에 선명하다.
선배의 삶 뒤에는 늘 든든한 동반자가 있었다. 내과 전문의인 홍진숙 여사의 남다른 내조였다. 대학 시절 선배님댁을 찾았을 때 따뜻하게 맞아주시던 모습이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두 분의 모습은 서로를 아끼고 존중하는 한 쌍의 원앙처럼 보였다.
한평생 기능한국과 장애인, 그리고 인도주의 정신을 위해 살아온 선배의 삶은 청소년적십자 단원과 적십자 봉사원들에게 봉사의 요람을 열어 준 삶이었다. 선배는 마치 마을을 지켜주는 당산나무와 같았다. 그 그늘 아래에서 많은 사람들이 잠시 쉬어가고 다시 힘을 얻었다.
밀라노·코르티나 패럴림픽에 참가한 우리 선수들에게 진심 어린 박수를 보낸다. 그동안 흘린 땀과 노력의 무게를 알기에 “정말 수고했다”고 말해주고 싶다. 선배가 뿌린 작은 씨앗이 세대를 넘어 이어지고 있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선배는 내게 늘 이렇게 말씀하곤 했다. “무슨 일이든 열정을 다하면 누군가는 반드시 지켜보고 손을 내민다.” 그 말은 지금도 내가 살아가며 붙들고 있는 삶의 덕목이다. 오늘도 나는 선배를 떠올리며 마음속으로 조용히 말해 본다.
선배님, 참 많이 그립습니다. 감사합니다.
전원균(전 대한적십자사동우회장·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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