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건 완성됐는데 UAE 바이어, 연락이 안돼요” 수출중기 날벼락[중기+]

홍석희 2026. 3. 17. 0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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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이 핵심적인 에너지 수송로인 호르무즈 해협 봉쇄에 나서며 유가가 급등할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3일 경기도 성남시 대한송유관공사 서울지사 인근에서 유조차들이 오가고 있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기준으로 중동 원유 도입이 전체 70%에 달하고, 이 중 95% 이상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했을 정도로 중동산 원유 의존도가 높다.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될 경우 타격이 막대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연합]
중동향 맞춤 생산 중기 직격탄… 연락두절 바이어 속출
유류할증료·전쟁위험 할증료 부담에 ‘물류계약’ 공포

[헤럴드경제=홍석희 기자] “물건이 완성됐어요. 그런데 UAE 바이어 연락이 안 됩니다. 이런 일이 없었어요. 잔금이 지불돼야 선적을 할 수가 있는데 연락이 안 돼요. 상품 제작에 들어갔던 자금이 묶여 있어 회사가 너무 힘든 상태입니다” 아랍에미레이트(UAE)에 화장품을 납품하는 중소기업 P사는 미국·이란 전쟁의 직격탄을 맞았다. 수년째 거래해온 현지 바이어가 전쟁 이후 연락 두절 상태에 빠지면서다. 이 회사 대표 S씨는 “중동에 맞춰 성분과 패키지, 라벨까지 따로 제작한 제품이라 다른 나라에 돌려 팔기도 쉽지 않아요”며 “원료비와 생산비는 이미 다 집행됐는데 창고에만 쌓여있습니다. 자금이 묶여 있어 회사가 너무 어려워요”라고 말했다.

유럽에 기계장비를 판매하는 K사의 사정도 다르지 않다. 이 회사 관계자는 “이제 2분기 물류 계약을 해야 하는 시기인데 큰일”이라며 “유류 할증료는 물론이고 선박 자체를 구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고 했다. 물류 계약 상황에 대해 이 회사 관계자는 “보험료나 가격을 선사에 먼저 물었다간 가격 협상력만 더 떨어질 수 있어 계약조건을 묻지도 않고 대기만 하고 있다”며 “운임이 얼마로 튈지, 중간 기항이 늘어날지, 납기가 며칠 더 밀릴지 아무도 장담을 못 한다”고 말했다.

중동발 충격이 물류 지연을 넘어 대금 미회수·계약 보류라는 자금경색 국면으로 번지고 있다. 운송 차질과 물류비 상승은 물론, 대금 결제 지연과 연락 두절 사례까지 잇따르며 현장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정부가 발표한 ‘중동 상황 관련 중소기업 애로 현황’에 따르면 지난 11일 12시까지 접수된 중소기업 피해 및 애로 사항은 총 146건으로 집계됐다. 이 중 구체적인 피해가 발생한 경우는 76건이며, 사태 장기화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50건이었다.

더 큰 문제는 미국·이란 전쟁이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점이다. 전쟁이 장기화 될 경우 석유 화학 제품을 판매하는 국내 중소·중견기업들의 경영난도 가중될 전망이다. 국내 한 페인트업계 관계자는 “사태 장기화 가능성에 대비해 시장 물류비·운임 상승에 대한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 페인트 업계의 통상 보유 재고 물량은 5~6개월치 가량으로 알려진다. 당장이야 재고 물량으로 버틴다 하더라도 상황이 장기화 될 경우 천정부지로 뛰어오른 상품비, 물류비를 감당키 어려울 수도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중소기업일수록 전쟁 변수는 존폐를 가늠할만큼 큰 문제다. 앞선 P사의 경우 처럼 당장 제품 생산에 들어간 비용 회수가 지연되면서 이후 일정도 기약없이 밀린다. 입금이 안돼 선적이 늦어지면 납품 일정이 꼬이고, 납품 일정이 꼬이면 다음 원부자재 결제와 생산 일정까지 흔들린다. 특히 중동향 거래 비중이 큰 화장품, 소비재, 기계장비, 부품 업체들 사이에서는 “이익률이 줄어드는 정도가 아니라 운전자금이 잠겨 버리는 게 더 치명적”이라는 반응이 나온다.

영세 기업일수록 충격은 더 치명적이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대기업에 비해 협상력과 재무 여력이 떨어지는 중소 화주는 운임·보험료 비중이 수출 단가의 10~20% 수준까지 치솟는 경우도 있어 가격 인상이나 물량 축소를 고민할 수밖에 없다. 영세기업의 경우 가격 인상분을 판매가격에 전가하기 어렵다는 점도 문제다. 대기업은 장기 계약을 통해 일부 충격을 흡수할 수 있지만, 중소기업은 거래 한 건 한 건이 곧 현금흐름과 직결된다. 중동 바이어와 조건부 결제를 해온 기업일수록 충격은 더 크다.

정부도 이런 점을 의식해 대응 수위를 높이고 있다. 중소벤처기업부는 이달 중동 수출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105억원 규모의 긴급 물류 바우처를 투입하기로 했고, 산업통상자원부와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도 중동 수출 애로 기업을 상대로 긴급 바우처와 금융 지원을 확대하고 있다. 한국무역보험공사 역시 UAE, 사우디아라비아, 이라크, 카타르, 이란 등 호르무즈 인접국 수출 중소기업에 대한 긴급 금융 지원에 나선 상태다.

또 정부는 중동 지역에 수출 중이거나 계약을 체결한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최대 1050만원(정부 보조율 70%)을 긴급 지원하기로 했다. 전쟁위험 할증료(WRS), 항만 폐쇄 등에 따른 물류 반송 비용, 현지 발생 지체료(Detention Fee), 대체 목적지 우회 운송비 등을 지원 항목에 추가했다. 신청 기업은 수출 실적과 피해 증빙만으로 신청 후 3일 이내에 지원 여부를 확정받는 ‘신속심사제’도 도입한다.

다만 현장에서는 지원책이 ‘사후 보전’ 중심이라는 점을 아쉬워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한 수출 중소기업 대표는 “물류 바우처나 보험료 지원이 분명 도움은 된다”면서도 “문제는 지금 기업들이 겪는 위기가 운임 몇 푼의 문제가 아니라 결제 지연과 자금 경색이라는 점”이라고 말했다. 그는 “매출채권이 회수되지 않는 동안 임금, 임차료, 원료비는 계속 나가는데, 중소기업은 이 시간을 버틸 체력이 약하다”며 “납품 계약이 살아 있어도 현금이 안 돌면 공장은 멈출 수밖에 없다”고 했다.

LNG 수송선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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