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 잡는다며 축산업계 압박…“유통 갑질은 눈감나”

김보경 기자 2026. 3. 17.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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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위, 돼지고기업체 담합 판단
농식품부, 달걀농가 ‘웃돈’ 경고
대형마트 단가 후려치기 외면에
농가 “구조적 문제 먼저 고쳐야”

정부가 밥상물가를 안정시키겠다며 돼지고기·닭고기·달걀 등 주요 축산물 공급업체와 생산자단체를 연일 압박 중이다. 한쪽에선 대형 유통업체 공급 과정에서 업계의 가격 담합이 있었다며 과징금을 매겼다. 다른 한쪽에선 달걀농가들의 웃돈 요구 사례가 있는지를 들여다보고 이를 방지하는 제도적 방안을 마련하겠다며 농가 도덕성에 흠집을 냈다. 축산현장에선 대형마트 중심으로 축산물 유통체계가 고착화하고 각종 생산비가 치솟는 등 구조적 문제를 외면한 것이라며 억울하다는 견해를 내놨다.

청와대·공정위·농식품부·달걀상인, “공급업체는 가격 담합하고 달걀농가는 웃돈 요구”=공정거래위원회는 12일 이마트에 돼지고기를 납품하면서 입찰가 혹은 견적가를 사전에 합의해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공정거래법)’을 위반한 돼지고기 가공·판매 업체 9곳에 시정명령을 내렸다. 그러면서 이들 업체에 모두 31억6500만원을 과징금으로 부과하고, 업체 6곳에 대해선 검찰에 고발하기로 했다.

공정위 관계자는 “국민 생활 물가 상승을 유발하는 먹거리분야 담합을 엄정 조치해 향후 식료품 가격 안정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면서 “현재 진행 중인 밀가루·전분당·달걀 등 담합 사건도 빠르게 처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튿날 농림축산식품부는 보도 참고자료를 내고 “햄·소시지 등 가공육 주원료인 돼지고기 뒷다릿살 가격이 높은 이유가 일부 업체에서 과도한 재고량을 장기 보유해 가격 상승을 주도하는 정황이 포착됐다”면서 “공정위에서 가격 담합으로 제재받은 돼지고기 가공·판매 업체 9곳에 대해 올해부터 정책자금 지원대상에서 배제하겠다”고 밝혔다.

농식품부는 달걀농가를 대상으로 강경 메시지도 던졌다. “일부 산란계농가가 유통상인에게 웃돈을 요구한다는 제보와 관련해 부당거래 여부 등을 면밀히 검토 중이며, 이를 방지하기 위한 제도적 방안을 마련할 예정”이라고 했다.

앞서 한국계란산업협회는 9일 보도자료에서 “3월 들어 수도권·충청권 대형 농장에서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 확산에 따른 살처분을 핑계로 달걀가격 인상을 요청했고 농장들이 달걀가격에 웃돈을 요구한다”고 주장해 파문을 일으킨 바 있다.

두 부처의 이례적인 신속한 움직임을 놓고 청와대 회의와 무관하지 않다는 해석이 나온다. 2월19일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서는 “우리 사회에는 설탕·밀가루·육고기·부동산 등 경제산업 전반에서 반시장적 담합 행위가 뿌리 깊게 퍼져 있다”는 말이 나왔다. 이어 “이런 질 나쁜 범죄를 뿌리 뽑아야 경제의 질적 도약이 가능하다”면서 “담합 이득을 훨씬 넘어서는 무거운 제재가 뒤따라야 한다”는 발언도 있었다.

축산업계 “유통업계 ‘갑질’에 살아남으려는 몸부림”=육류유통업계에선 시장 내 대형마트의 고질적인 ‘단가 후려치기’ 문제를 먼저 들여다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업계 관계자는 “돼지고기 소매유통시장에서 대형마트가 차지하는 비중은 14.8% 수준으로 대형마트가 사실상 납품가격 결정권을 가진다”면서 “(가격 합의는 대형마트에) 이미 원가 이하 가격으로 납품하는 상황에서 최소한의 손실을 감수하고자 가격 최하선을 논의한 업계의 절박한 몸부림”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예를 들어 대형마트가 25% 할인행사를 진행하면 할인액을 마트 수익이 아닌 납품단가에 전가한다”며 “공정위의 가격 담합 판단은 대형마트에서 최저가만을 일방적으로 요구하는 갑질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농축산물 생산원가 상승과 산업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은 데 대한 불만도 터져나왔다. 앞서 공정위는 2019년 11월부터 종계·삼계·육계·토종닭·오리 분야를 대상으로 가금업계가 담합했다며 과징금을 부과했다. 하지만 2024년 9월 서울고등법원은 “농어민 자조 조직의 활동은 농업 보호 등을 위해 자유경쟁의 예외로서 허용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 헌법상 경제질서에 부합하는 해석”이라며 “오리고기 분야는 담합으로 볼 수 없다”고 판결했다. 한국육계협회 관계자는 “이상기상·고령화 등의 영향을 고스란히 받는 농축산물 수급을 공산품과 같은 잣대로 봐서는 곤란하다”면서 “생산비 부담 등을 고려한 생산자의 수급조절과 가격 결정 행위를 적법하게 봐야 한다”고 말했다.

산란계 관련 생산자단체 관계자는 “60여년간 이어진 달걀 거래 관행에서 유통인이 손실보상금 등을 명목으로 달걀 거래대금을 일방적으로 깎았을 때는 아무런 제재를 취하지 않다가, 최근 불가항력적인 이유로 달걀이 부족해지자 농가가 웃돈을 요구한다는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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