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돌아온 국가의 시대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시작된 이란 전쟁이 발발한 지가 벌써 3주나 되었다. 당초 3~4일이면 끝날 것이라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호언장담과 달리 이란은 아직까지 무너지지 않았다. 무너질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이대로 전쟁이 끝난다면 미국은 아무런 성과도 없이 알리 하메네이보다도 더 강경한 그의 아들이 다스리는 신정체제를 상대해야 한다. 도대체 왜 이 전쟁을 일으켰냐는 물음에 트럼프가 답할 수 있을까. 다급해진 미국과 이스라엘은 지도부를 제거함으로써 국가정책의 변화를 유도하는 '베네수엘라 모델'을 이란에도 적용하려던 당초의 전략을 이란의 군사적 능력을 최대한 제거하는 것으로 급하게 수정했지만 딱히 유의미한 결과를 낳을 것 같지는 않다.
이번 전쟁은 헤게모니 국가로서의 미국의 역량이 심각할 정도로 낮아졌다는 사실을 가감 없이 보여주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군사적 능력을 선전하지만, 이미 전쟁의 주도권 자체가 이란에게로 넘어갔다. 이란은 미군기지, 이스라엘, 주변국들을 타격하며 군사적 역량을 과시할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호르무즈 해협 봉쇄와 같은 지정학적 수단을 활용해 미국을 압박하고 있다. 미국은 동맹국들의 참전까지 요청하고 있지만 그럴수록 동맹국들의 불만만 커질 것이다. 이 전쟁이 어떻게 마무리될지와 관계없이 미국의 헤게모니는 적어도 한동안은 작동하기 어려워 보인다.
이처럼 미국이 통제력을 상실하자 세계의 분열이 가속화되고 있다. 전선은 계속해서 확장되고 있고 분쟁 또한 곳곳에서 터지고 있다. 가령 우크라이나가 미국을 지원하자 이란은 군사적 대응을 검토하고 있으며, 이스라엘과 레바논의 헤즈볼라는 전면전에 돌입했다. 파키스탄은 아프가니스탄과 전쟁에 돌입했을 뿐만 아니라 사우디와의 협정을 이유로 이란과의 군사적 충돌까지 예고하고 있다.
이 사태를 어떻게 파악해야 할까. 우리는 어떤 시대를 살고 있을까. 이번 전쟁에서는 두 가지 현상이 명확한 대비를 이루고 있다. 미국의 헤게모니에 기초한 세계통합은 이제 더 이상은 어렵다. 하지만 자본주의적 세계시장에 의한 경제적 통합력은 여전히 강고하다. 실상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해 세계경제에 막대한 타격을 가할 수 있는 것도 그들 자체의 역량보다는, 그들에게 지정학적 중요성을 부여한 세계경제의 높은 통합력 덕분이다. 즉, 상부구조 차원에서의 헤게모니 국가에 의한 세계통합의 불가능성과, 하부구조 차원에서의 막강한 통합력 간의 불균형이 세계 정세의 불안정성을 심화시키고 있다.
이와 같은 불균형을 메우는 게 바로 '근대국가'이다. 세계화 속에서 사라지는 것처럼 보였던 국가가 화려하게 부활하고 있다. 국가적 통합력을 앞세운 지역적 강대국들이 현상변경을 꾀하며 분쟁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헤게모니 국가의 쇠퇴로 인한 공백을 어느 정도 메우며 균형점에 도달하기까지 한동안은 계속해서 분쟁 상태가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미국도 세계질서의 수호자에서, 서반구 지역의 패권국으로 스스로의 역할을 축소시키며 균형점을 향해 이동하고 있다. 이란 전쟁조차도 이스라엘에 의한 서남아시아 지역의 질서유지를 위한 균형점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동북아 지역의 '기묘한' 평화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 지역은 이미 국가적 통합력이 잘 작동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군사적인 균형 또한 어느 정도 유지되고 있다. 역설적으로 보일지 모르겠지만 한중일+대만 간의 대립이 평화를 유지하는 기초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균형이 무너져 분쟁상태에 빠진 다른 지역들과 달리 여전히 '세계의 공장' 지위를 유지하며 평화를 유지하고 있는 이 지역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위협이란 미국의 급격한 후퇴 혹은 재배치밖에 없다. 그에 대한 대응책을 우리는 가지고 있는가.
이처럼 우리는 국가안보가 경제적 이해를 압도하던 냉전시대에서, 경제적 이해가 국가안보를 압도하던 탈냉전시대를 거쳐, 국가안보가 곧 경제적 이해인 탈(脫)탈냉전 시대에 접어들었다. 다시 돌아온 국가의 시대에, 좌파는 어떤 정치적 기획으로 평화를 이뤄낼 수 있을까. 보다 담대한 기획이 필요한 때가 아닌가 한다.
<자본 이전의 세계> 저자 (fpdlakstp@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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