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전쟁, 글로벌 금융시장의 두 가지 시나리오

주관적인 희망이 헛된 과시로 부풀었다가 거짓말로 드러나고 만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대(對)이란 전쟁에서 거듭 반복되는 패턴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3월10일 오후 ‘전쟁은 곧 끝난다’라며 “(이미) 선박들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직후 크리스 라이트 미국 에너지장관은 소셜미디어 엑스(X)에 “방금 미국 해군이 상업용 유조선을 호위해서 호르무즈 해협을 성공적으로 통과시켰다”라고 썼다. 트럼프가 ‘나의 계획은 순조롭게 실현 중이야’라고 말하자, 그의 부하인 에너지장관이 ‘팩트’로 화답한 셈이다.
그러나 이 게시물은 업로드되고 20분도 지나지 않아 슬그머니 삭제된다. 라이트 장관은 따로 해명하지도 않았다. 직후 열린 백악관 정례 브리핑에서 캐럴라인 레빗 대변인은 기자들의 질문에 “현시점에서 미 해군이 상업용 선박의 호르무즈 해협 통과를 호위한 사실은 없다”라고 답변한다. 트럼프 행정부의 주장을 그대로 믿으면 안 된다는 것을 대변인 스스로 인정한 셈이다.
불과 수 시간에 걸친 이 촌극에 글로벌 원유 가격은 마치 발작하는 것처럼 경련했다. ‘호르무즈 통과’라는 소식에 폭락했다가 그것이 거짓으로 드러나자 다시 폭등했다.
이 패턴이 기사 작성 시점인 3월12일 오후 현재까지 되풀이되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의 안전 항행은 이뤄지지 않았다. 시장은 호르무즈 해협의 정상화가 쉽지 않다는 사실을 점차 깨달아가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은 페르시아만과 오만만 사이의 좁은 물목이다. 글로벌 원유 공급의 20%가 이 해협을 통과해서 아시아와 유럽으로 향한다. 〈이코노미스트〉(3월8일)에 따르면, 2025년 기준으로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한 원유의 87% 및 액화천연가스(LNG)의 86%가 아시아에서 소비되었다. 글로벌 정치·경제 지정학에서 이 해협의 압도적 무게감을 알 수 있는 수치다.
지난 2월28일, 미국·이스라엘은 이란 본토에 대규모 공습을 개시했다.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등 수뇌부 인사들이 그날 사망했다. 이란 혁명수비대는 주변의 산유 부국들(사우디아라비아·UAE·바레인 등 미국의 동맹국)에 배치된 미국 군사기지 및 핵심 인프라를 보복 타격하며 전쟁의 범위를 확대했다. 호르무즈 해협에 대해서는 ‘어떤 선박도 통과할 수 없다’는 경고로 사실상의 봉쇄를 실현했다. 문제는 원유 생산이 아니라 운송이다. 이 해협의 선박 통행량이 급격히 줄면서 글로벌 원유 공급량은 대폭 축소되었다. 이 전쟁 직전에 70달러대 초반 수준이었던 브렌트유 가격(배럴당)은 100달러를 순식간에 넘어서더니 3월9일엔 한때 120달러까지 치솟았다. 불과 열흘 사이에 유가가 거의 두 배 수준으로 뛰어올랐다.

그날(3월9일) 오후, 파국으로 치닫던 원유 시장은 미묘한 분기점을 맞이한다. 트럼프가 “이란의 드론과 미사일 능력은 완전히 파괴되었고, 이 전쟁은 아주 빨리 끝날 것”이라며 심지어 “선박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고 있다”라고 호언장담했다. 또한 미국 등 G7이 국제에너지기구(IEA)를 통해 회원국들의 ‘전략 비축유(석유 쇼크를 방지하기 위해 IEA 회원국들이 의무적으로 비축해야 하는 원유)’ 가운데 3억~4억 배럴 정도를 시장에 푸는 방안을 논의 중이라는 소식이 알려졌다. 〈파이낸셜타임스〉(3월9일)에 따르면 전략 비축유는 모두 12억4000만 배럴 정도다.
시장은 다시 요동쳤다. 브렌트유 가격이 90달러대로 급락했다. 전쟁 초기에 큰 폭의 등락을 거듭했던 코스피 등 아시아 증시도 안정되는 것처럼 보였다.
두 가지 시나리오
유가 상승의 영향력은 단지 주유소 기름값을 올리는 데 그치지 않는다. 거의 모든 재화의 가격이 함께 오른다. 석유는 대다수 공산품의 기초 재료인 동시에 공장을 돌리는 에너지다. 전 세계로 재화를 나르는 물류·운송비 역시 유가의 변동을 직접적으로 반영한다.
〈파이낸셜타임스〉(3월9일)가 ‘클락슨 리서치(해운 데이터 추적 업체)’를 인용·보도한 바에 따르면 컨테이너선, 유조선 등을 포함한 평균 운임 지수는 전쟁 직후보다 20% 상승해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코노미스트〉(3월8일)는 “대서양에서 아시아까지 LNG(액화천연가스) 운송 비용은 하루 26만4000달러로 전쟁 발발 직전인 2월27일 이후 6배 상승했다”라고 썼다.
전쟁 발발 이후 선박보험 시장은 사실상 마비되었다. 로이터(3월2일)에 따르면, 보험사들은 호르무즈 해협 등 이란 인근 바다에 대한 ‘전쟁 위험 보장’을 일방적으로 취소했다. 이 해협을 ‘폐쇄 구역’으로 확정하는 선고나 다름없다. 해운사 입장에선, 설사 미국 대통령이 ‘전쟁 종료’를 선언하더라도, 보험 없이 수천억 원짜리 선박을 사지로 몰아넣을 수는 없다. 로이터(3월6일)에 따르면, 선박 가치의 약 0.25%였던 해상 보험료가 최대 3%까지 상승했다. 2억 달러짜리 유조선이라면, 보험료가 50만 달러에서 600만 달러로 오르는 셈이다. 이 같은 운송비와 보험료의 동반 상승은 물가 전반의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 글로벌 금융시장에는 지극히 불길한 징조다.
그동안 전 세계 투자자들은 주요국 중앙은행들의 기준금리 인하를 애타게 기다려왔다. 금리가 내려가면 시중 유동성이 주식 등 위험자산으로 쏠리고 기업의 이자 부담 역시 줄면서 주가의 상승으로 이어지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전쟁 발발 이후 유가 폭등에 따른 인플레이션 우려가 조성되면서 중앙은행들은 금리인하 시점을 늦추거나 오히려 금리를 올려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실제 금융시장은 이미 ‘금리인상’ 모드로 급격히 선회 중이다. 〈파이낸셜타임스〉(3월9일) 보도에 따르면, 영국의 2년 만기 국채 수익률이 전쟁 직후 0.5%포인트 급등해 4.1%를 돌파했다. 시장금리가 중앙은행의 의지와 상관없이 먼저 치솟고 있다는 뜻이다. 금리 스와프(swap) 시장에서 변동금리를 고정금리로 교환할 때 지급하는 프리미엄(수수료) 인상이 관찰되었다. 글로벌 금융기관 등 전문 투자자들이 (공식적으로는 뭐라고 말하든) 본능적으로 ‘인플레에 따른 금리인상’에 대비해 방어막을 치기 시작한 것이다.
이후 글로벌 금융시장은 크게 두 가지 시나리오로 예측할 수 있다.
첫째, 미군의 압도적 화력으로 전쟁이 3월 중하순에 단기 종료되는 경우다. 파괴된 에너지 물류망이 서서히 복원되면서 글로벌 경제가 궤멸적인 충격을 받는 최악의 사태는 피할 수 있다. 그러나 포성이 멎고 바닷길이 다시 열린다고 유가가 전쟁 직전의 70달러대로 돌아갈 가능성은 크지 않다. 유가는 악재를 만나면 튀어오르지만, 호재에는 깃털처럼 천천히 내리는 경향이 있다. 정유사와 유통업체들은 불확실성이 완전히 해소될 때까지 가격 하락을 최대한 늦출 것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전략 비축유’를 방출한 뒤 종전이 이뤄지면 기름 탱크를 다시 채우기 위한 추가 수요가 유가 하락을 차단할 것이다. 파괴된 송유관과 가스 액화 설비, 정유공장 등을 온전히 수리해 공급망을 복구하는 데도 수개월이 걸린다.
두 번째 시나리오는, 이란의 결사 항전으로 전쟁이 수개월 이상 장기화하는 경우다. 유가 폭등이 물가를 끌어올리고, 이에 대응하려는 중앙은행들은 기준금리를 연쇄적으로 올린다. 세계경제는 물가상승과 성장둔화가 동반되는 끔찍한 글로벌 스태그플레이션의 늪으로 빠져들 수 있다. 실물경제에도 치명적 영향을 미치게 된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지속되면, 예컨대 반도체 제조 공정에 필수적인 헬륨 등 중동 의존도가 높은 핵심 소재의 공급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 ‘코스피 6000’ 돌파에 직접적으로 기여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치명적 리스크다.
‘곧 전쟁 종료’ 시장은 안 믿어
두 시나리오 중 어느 쪽이 유력할지 미리 예측하기는 어렵다. 시시각각 전황의 흐름을 지켜볼 수밖에 없다.

3월12일 오후(한국 시각) 현재, 트럼프가 ‘이미 압도적으로 승리했다’고 큰소리를 치는데도 불구하고 전황은 오히려 격화되고 있는 국면이다. 미국은 전쟁을 마무리하겠다는 듯 3월10일 테헤란 등 이란 주요 도시에 ‘가장 격렬한 공습’을 감행했다. 이란 혁명수비대는 호르무즈 해협의 민간 화물선들에 대한 미사일 발사로 대응했다. 일부 선박은 치명적 피해를 입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란 측은 해협 봉쇄로 국제 유가를 크게 올려 글로벌 경제를 스태그플레이션으로 몰아넣어도 무방하다는 입장이다. 트럼프는 호르무즈 해협에 기뢰를 설치하려던 이란 선박들을 타격해서 기뢰 부설선 16척 등 함선 약 60척을 파괴했다고 주장한다. ‘호르무즈엔 기뢰가 없’으니까 운송을 재개해도 괜찮다는 뜻이다. IEA 회원국들은 4억 배럴 규모의 전략 비축유 방출을 결정했으며 일부 물량을 풀기 시작했다.
잔혹한 공습을 담보로 삼은 트럼프의 ‘곧 전쟁 종료’ 선언과 비축유 방출은 일종의 시장 달래기다. 그러나 시장의 반응은 트럼프의 바람대로 흘러가지 않고 있다. 브렌트유는 3월12일 오후 들어 상승하면서 다시 배럴당 100달러를 돌파했다. 시장이 전쟁의 조기 종식을 믿지 않는다는 의미다. 적어도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싸움에서는 이란 혁명수비대의 입지가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기뢰를 몇 발 뿌리고 상선 몇 척만 공격해도 트럼프의 계획을 좌초시킬 수 있다. 민간 해운사와 보험사들은 바닷길의 안전이 확인되지 않는 한 선박을 해협으로 밀어넣거나 보험을 제공하지 않을 것이다. 위협과 말 바꾸기를 거듭하는 트럼프의 입에는, 시장이 믿을 만한 권위와 신뢰감이 실릴 수 없다.
현재 시점에서 분명한 것은 하나밖에 없다. 글로벌 경제의 장단기적 미래가 호르무즈 해협이라는 좁은 해상 통로에 걸려 있다는 사실이다.
이종태 기자 peek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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