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유가 20조 추경 '초읽기'...업종별 '희비' 뚜렷
15조~20조원 규모 윤곽 가시화
정유, 손실보전·가격 상한 동시
지역화폐, 소상공인 가맹점 전용
[대한경제=최지희 기자] 기획예산처가 “구체적인 규모와 시기, 내용에 대해서는 정해진 바 없다”며 신중론을 거듭 강조하고 있지만, 산업계의 추가경정예산 편성 기대감은 오히려 높아지고 있다. 고유가 충격이 현실화된 데다 이재명 대통령이 직접 “밤을 새워서라도 신속하게 하라”고 주문한 만큼, 정부의 ‘신중’ 메시지는 속도 조절용 수사에 불과하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16일 기획예산처는 “중동 상황이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고, 고유가에 따른 현장의 부담을 덜 수 있도록 관계부처와 협의 후 신속하게 추경안을 마련해 최대한 빠른 시일 내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라고 공식 확인했다. 추경 편성 방향과 의지는 분명히 했으면서 규모와 시기만 ‘미정’으로 선을 그은 형국이다. 업계에서는 이를 세부 사업 조율 과정에서의 협상용 여지 확보로 읽는 분위기다.
추경 배경은 중동 정세 불안에 따른 유가 급등이다. 3월 초 두바이유가 배럴당 107달러를 돌파하며 10여 일 만에 약 50% 급등한 상황에서 15조~20조 원 규모의 추경 윤곽이 가시화되자, 업종별 수혜와 부담도 선명하게 갈리기 시작했다.
이번 추경에서 가장 직접적인 이해관계자는 정유업계다.
정부는 지난 13일 0시부터 석유 최고가격제를 시행해 정유사의 주유소 공급가격 상한을 설정했다. 일선 주유소 판매가에 직접 적용되는 제도는 아니지만, 공급 단계 가격을 통제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에 따른 정유사ㆍ주유소 손실은 추경 재원으로 직접 보전할 방침이다. SK이노베이션과 에쓰오일, 현대오일뱅크 등 주요 정유사로서는 손실 보전이라는 수혜를 받는 동시에 판매 마진이 제한되는 규제를 함께 감수해야 하는 구조다.
중동 수출 의존도가 높은 중소ㆍ중견 기업을 대상으로는 긴급 물류 지원 바우처 확대가 검토되고 있다. 세부 지원 기업 수와 금액은 추경안 확정 전 단계로 아직 공식 발표되지 않았으나, 화학ㆍ철강ㆍ제조업계는 원자재 유가 상승 부담 완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화물차ㆍ영업용 차량 유가보조금 지급 비율 상향도 검토 중이나 구체적 수치는 추경안 확정 후 결정된다.
이 대통령이 직접 방향을 제시한 지역화폐 지급은 소비ㆍ내수 업종의 희비를 가르는 변수다. 지역화폐는 소상공인 가맹점에서만 사용 가능한 구조여서 편의점과 슈퍼마켓, 음식점 등 지역 밀착형 업체는 직접적인 매출 증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반면, 유통ㆍ물류 대기업은 유류비 부담 경감과 소비 회복이라는 간접 효과에 기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번 추경 재원 구조에서 주목되는 점은 반도체 기업이 사실상 재원 제공자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반도체 호황으로 법인세 초과 세수가 5조원대 추가 발생할 것으로 추정되며, 이것이 추경 재원의 핵심 축을 형성할 전망이다. 추경 재원은 세계잉여금과 불용 예산 구조조정과 합산해 최종 결정된다.
정부는 3월 말~4월 초 국회 제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 대통령이 사업 수를 줄여 심의 기간을 단축하도록 지시한 만큼, 여당이 다수인 현재 정치 지형에서 통과 자체는 사실상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진다.
다만, 정부 관계자는“국채 발행 없이 가용 재원을 최대한 끌어쓰는 구조인 만큼 재정 건전성 훼손 우려는 크지 않지만, 집행 속도를 앞세우다 사업 설계가 허술해지는 부작용은 경계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최지희 기자 jh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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