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산업, 이번엔 '고환율 쇼크'] ② 공사비·자잿값 '더블폭탄'에 맥못추는 현장
대형사들 비상대책 회의 일제히 가동
선물환 헤지로 환차익 실현 ‘그림의 떡’
민간 이어 공공공사도 마진 소멸 공포
“단가 재조정 없이는 버틸 구조 아냐”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 유지 의사가 전해진 직후, 국내 주요 대형 건설사들은 경영진 주재 비상대책 회의를 일제히 소집했다. 표면적 안건은 국제유가 급등과 원ㆍ달러 환율의 재상승이었지만, 회의 테이블 위에는 그보다 넓은 의제가 올라갔다. 고환율이 해외 매출 환산이익을 키워줄 것이라는 외부의 기대와 달리, 내부에서는 이 상황이 수익성에 어떻게 작용할지를 놓고 냉정한 분석이 오갔다. 해외는 환헤지 비용 부담으로, 국내는 원가율 상승으로 양쪽이 동시에 죄어드는 구조란 판단에서다.
고환율 국면에서 해외 수주 비중이 큰 건설사가 반사 수혜를 볼 것이라는 시각이 시장 일각에 있다. 해외건설 계약 통화의 3분의 2 이상이 미 달러화로 이뤄지는 만큼, 달러 매출을 원화로 환산할 때 이익이 불어난다는 논리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환헤지를 하지 않았을 때’의 이론적 수치다. 현재 건설사들의 실상은 다르다. 국내 주요 건설사들은 대규모 해외 프로젝트를 수주할 때 통상 선물환 매도 계약으로 환리스크를 미리 차단해 놓는다.
한 대형사 관계자는 “수주 단계에서 선물환거래로 환율 수준을 고정해놓고 가격입찰을 하기 때문에 고환율이 수주경쟁력 제고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다”고 밝혔다. 환차익을 보더라도 전체 기성액의 5% 내외에 불과해 수익성이 크게 개선된다고 보기 어렵다는 게 현장의 목소리다.
고환율의 충격은 고스란히 국내 현장으로 집중되는 구조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이 집계한 공사비지수는 이미 올해 1월 기준 133.28(2020년 100)로 역대 최고치를 매달 경신 중이다. 철근ㆍ합판ㆍ타일ㆍ석재 등 수입 의존도가 높은 자재값이 환율과 함께 치솟는 데다, 시멘트ㆍ레미콘 등 국산 자재도 에너지 및 원료 수입비용 상승에 따른 2차 파급을 피하지 못하고 있다. 환율이 10% 오르면 건설 수입품 가격은 0.34% 추가 상승한다는 분석도 있지만, 이미 복합 원가 부담이 누적된 현장에서는 단순 수치가 무의미하다는 목소리가 크다.
자재업계는 여기에 추가 인상 카드까지 꺼내 들었다. 국내 주요 제강사들은 지난 3월 초 철근 건설향 기준가격을 2만3000원 올린 t당 94만5000원으로 책정한 데 이어 추가 인상 가능성을 시사했다. 중동 지역 지정학적 리스크 확대에 따른 운송비와 물류비 상승 압력과 함께, 환율 변동에 따른 전극봉 등 수입 부재료 가격 상승분을 선제적으로 반영하겠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 같은 자재비 급등이 단순한 비용 압박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한건설협회 조사에 따르면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당시 유연탄 공급 차질로 시멘트 가격이 폭등하자, 국내 건설현장의 63.6%가 공사 중단ㆍ지연을 겪었다. 당시 정부가 뒤늦게 협의체 구성에 나섰지만, 현장 피해는 이미 광범위하게 번진 뒤였다. 특히 민간공사는 물가변동 배제 특약 관행으로 비용을 고스란히 건설사가 떠안았고, 이는 연쇄적인 공사 중단과 주택 공급 지연으로 이어졌다.
지금의 상황은 그때보다 훨씬 복잡하다. 자재비 폭탄이 현실화되는 가운데, 업계에서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재연됐던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도미노가 다시 재연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중견 건설사 대표는 “원가율이 100%를 넘겨도 이미 계약한 현장을 멈출 수가 없어 버티는 것이지, 작년을 기점으로 수익을 기대하고 공사를 하는 현장이 거의 없다”며 “이번에는 버티다 쓰러지는 속도가 2008년보다 빠를 수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 역시 해외와 국내 양쪽에서 수익성 방어 여력이 동시에 소진되는 이번 구조가 과거 단일 충격과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진단한다. 정지훈 해외건설협회 연구위원은 “고환율 리스크를 분산하기 위해 환율 변동성에 따른 손실분을 보장하는 보험 상품에 가입한다거나, 계약 단계에서 환율로 인한 손해분을 조정할 수 있는 항목을 추가해야 하는데 이런 대응이 미흡하다”고 강조했다.
전영준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센터장 역시 “건설은 사실 환율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산업이 아닌데, 중간재로 인한 하방압력을 크게 받고 이에 따른 위기를 겪는다”며 “고환율ㆍ고물가를 뉴노멀로 받아들이지 않는 발주자의 인식이 산업 위기를 초래하는 과도기적 시점”이라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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