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거래 5만원 ‘먹튀’에 법원行‥국민 10명 중 1명은 ‘소송 중’
<상> 민사소송 500만건 육박
민사소송 해마다 늘어 작년 469만건
1심 민사재판 건수 3년새 10% 증가
사업 정산금·임대차 보증금 분쟁 등
실익 적더라도 ‘끝까지 가보자’ 확산
전자소송 개선으로 접수 간편해져

공동으로 사업을 운영하던 A씨와 B씨는 사업을 정리하다가 500만 원 가지고 분쟁을 겪었다. 정산을 하다가 누구의 몫인지 애매한 500만 원 때문에 싸움이 났고, 결국 두 사람은 법원으로 갔다. 양측이 선임한 변호사 선임비나 시간을 고려하면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소송이었다. 이 사건을 대리한 한 변호사는 “500만 원 분쟁에 500만 원 이상을 변호사비로 쓰는 사례가 있는데 개인 이익보다 분노가 작용하는 대표적 사례”라고 했다.
20대 C 씨는 최근 중고 거래 플랫폼에서 물품을 구매하려다 사기를 당했다. 상대방에게 5만 원을 송금하고 물품을 받으러 나갔는데 상대방이 이른바 ‘먹튀’를 한 것이다. 참지 못한 A 씨는 중고 거래 플랫폼에서 과거 거래 사례 등을 찾아 사기 당사자를 특정하고 서울중앙지법에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해당 사건을 맡았던 판사는 “예전 같으면 법원에서 볼 수 없었던 사건”이라며 “소송 문턱이 낮아져 쉽게 소송을 제기하는 듯하다”고 말했다.
경기 침체가 장기화 되고 전세사기 등 경제 사건이 늘어나며 민생 소송이 늘어나고 있다. 또 “비용과 상관 없이 상대를 무너뜨리고 만다”는 식의 ‘분노 소송’도 늘어나고 있다. 특히 젊은 층의 경우 상대와 직접 대면해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법원으로 가 장기간·고비용의 소송 절차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은 세태도 나타나고 있다.
17일 서울경제신문이 법원통계월보에 등록된 민사소송 자료를 분석한 결과 지난해 제기된 민사소송은 총 469만 건으로 집계됐다. 국민 10명 중 1명꼴로 민사소송을 진행하고 있는 셈이다. 향후 법원이 일부 누락된 사건 등을 포함해 발표할 확정치에서는 이보다 더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최근 5년 통계를 보더라도 코로나19 확산 시기였던 2021년을 제외하고 해마다 늘었다. 본격적인 재판을 시작했음을 의미하는 민사 1심 재판 건수는 2022년 74만 4123건에서 지난해 80만 9338건으로 3년 새 10% 가까이 많아졌다.
반면 실제 재판에 돌입하기 전 화해를 해 사건이 종결되는 경우는 갈수록 줄고 있다. 대화를 통해 갈등을 풀기보다는 법적인 결론을 받아야 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는 뜻이다. 실제로 제소 전 화해 사건은 2015년 1만 1740건에서 2024년 8652건으로 26%나 감소했다.
지난해 제기된 민사소송 469만 건 가운데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 것은 민사 집행 사건으로 127만 건에 달한다. 이는 2015년 80만 건과 비교해 60%가량 증가한 수치다. 민사 집행은 민사소송 판결이 확정됐음에도 채무자가 이를 이행하지 않을 때 강제로 집행하는 절차다. 민사 집행이 가장 많이 늘어난 이유로는 개인 간 금전 분쟁이 큰 몫을 차지한다. 법원은 “고금리 경제 상황과 전세사기에 따른 임대차 분쟁 등 여파로 민사 집행 건수가 크게 늘어나 법원도 대응하고 있다”고 밝혔다.
실제로 30대 초반 A 씨는 2년 전 결혼을 준비하며 수도권 신도시에 전세 보증금 2억 원짜리 신축 빌라 전세를 구했다. 몇 번이나 등기부등본을 확인하고 거래에 나섰지만 1년 뒤 A 씨는 빌라가 경매에 부쳐졌다는 우편을 받게 됐다. 전세권 설정을 하지는 않았지만 전입신고를 한 만큼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판단했지만 통보된 배당표에는 자신에게 배당될 금액이 없었다. A 씨는 현재 이와 관련한 소송을 진행 중이다. 이처럼 임대차 보증금 소송도 빠르게 증가하고 있으며 생활형 금전 분쟁에 해당하는 구상금과 대여금 소송도 늘고 있다. 임대차 보증금 소송은 2022년 3720건에서 2024년 7789건으로 2년 사이 두 배 이상 증가했고 구상금과 대여금 소송도 1심 본안 사건 기준 2024년 3만 2013건을 기록해 2020년 2만 9700건과 비교해 2300건 이상 증가했다.
소액 금전 분쟁의 경우 예전에는 소송 자체를 생각하지 않았지만 최근에는 전자소송 등 도입으로 소송이 쉬워지고 개인 간 분쟁도 말보다 법적으로 풀려는 일이 많아지고 있다. 예컨대 과거 연인 사이에 금전을 빌려줬지만 헤어지고 나서 소송을 거는 식이다. 실제로 지난해 30대 여성 B 씨는 헤어진 남자친구에게 1000만 원가량 대여금 청구 소송을 당했다.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B 씨를 위해 남자친구가 수년간 나눠 도움을 준 것이다. 이후 남자친구가 부정행위를 저질러 헤어졌는데 그가 대뜸 돈을 돌려달라는 소장을 보냈다. 증여가 아니라 ‘빌려준 것’이라는 걸 입증해야 하는데 이를 입증하지 못해 결국 B 씨가 승소했다. 임동한 법무법인 동인 변호사는 “예전에는 소송이 되지 않던 주장까지 소송으로 들어오면서 사건의 난도가 높아지고 부담도 커졌다”며 “기획 및 다수 당사자 소송 증가로 사법 자원의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고 했다.
민사 단독 사건을 담당했던 한 현직 판사는 “전자소송이 도입되면서 법원에 직접 오지 않아도 집에서 클릭 몇 번이면 사건 접수가 된다”며 “소액 사건은 인지액도 적고 당일 판결이 나오는 경우도 있어 ‘소송을 한번 체험해보자’는 생각으로 쉽게 접근하는 경우도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20~40대 젊은 층을 중심으로 한국 사회에서 대화와 타협을 통한 갈등 해결 대신 법정으로 향하는 일이 늘고 있다. 대면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세대들인 만큼 얼굴을 맞대고 대화로 갈등을 해결하기보다는 서류에 기반한 공적인 해결 수단에 기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13일 대한법률구조공단에 따르면 지난해 20~40대를 대상으로 한 민사 등 법률구조 건수는 6만 4853건으로 집계됐다. 전체 법률구조 건수 가운데 20~40대가 차지하는 비중은 43.4%에 달했다. 이 비중은 2023년 38.4%, 2024년 41.8%에 이어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 최근 2년 새 20~40대 비중이 5.0%포인트 늘어난 셈이다. 법률구조공단은 국민의 기본적 인권 보호를 위해 법률 상담, 소송대리, 형사변호 등 각종 법률 서비스를 지원하는 기관인데 젊은 층의 이용이 그만큼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젊은 층을 중심으로 갈등을 대면 협상보다 법적 절차를 통해 해결하려는 경향이 뚜렷해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사회적 신뢰가 약해져 상대를 직접 마주하며 조율하는 과정이 비효율적 소모로 인식되며 법원이라는 공적 해결 수단에 기대 갈등을 매듭지으려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사회적 갈등이 점점 심각해지고 있는데 자생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역량은 오히려 줄어들고 있다”며 “문제 해결을 사법 시스템에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됐다”고 말했다. 최정필 법무법인 로엘 변호사도 “젊은 세대 의뢰인들은 굳이 얼굴을 마주하며 감정을 소모하기보다 법적 절차로 해결하는 모습이 보인다”고 전했다.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한 데다 이들 세대가 살아온 시대의 공동체적 연결망이 느슨해지고 있다는 점도 갈등 조정 기능 약화 배경으로 꼽힌다. 과거에는 당사자 간 해결이 어려울 경우 친지나 지인 등이 중재하는 갈등 해결 시스템이 있었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공동체 간 유대가 약해지며 중재자가 점차 줄고 있다는 것이다.
젊은 층의 권리 의식 강화도 이러한 중요한 이유로 거론된다. 예전에는 법적 권리에 대한 정보를 접하기가 힘들거나 사건이 발생해도 문제를 감내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적지 않았지만 최근에는 인공지능(AI)과 유튜브 등 콘텐츠 플랫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의 발달로 관련 정보에 대한 접근성이 높아지며 자신의 권리를 적극적으로 인식하고 대응하려는 경향도 강해졌다는 것이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명예교수는 “젊은 세대는 분쟁 대응 경험 등을 플랫폼에서 공유하며 자기 보호에 더욱 철저하려는 모습을 보인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전자소송을 활용하기 편해진 것도 디지털 업무 처리에 익숙한 젊은 세대들의 소송이 늘어난 이유 중 하나다. 황용 법무법인 상림 대표변호사는 “과거에는 소송을 제기하는 문턱이 다소 높았는데 최근에는 변호사 수임료가 일부 낮아졌고 인터넷을 통해 필요한 정보를 얻으면서 변호사 선임 없이 직접 소송을 진행하는 사람들도 많아졌다”고 설명했다.
법조계에서는 법적 해결이 일상화할수록 사회적 비용과 감정적 단절도 함께 커질 수 있는 만큼 대화와 조정의 복원력을 높이는 장치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임종현 기자 s4our@sedaily.com박호현 기자 greenlight@sedaily.com김성태 기자 kim@sedaily.com
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모텔 약물 연쇄살인’ 김소영, 추가 피해자 3명 확인
- 코스피·나스닥 하락장에도 8% 뛴 ‘이것’…이란 전쟁 속 돈 몰린 곳은
- 하루 1000원·월 3만 원…인천 천원주택 700호 접수에 ‘북새통’
- “어서 와, 서울은 처음이지?”…BTS 컴백 공연 맞는 서울, 아미 위한 도시로 변신
- “호르무즈에 한국 군함 보내라”…트럼프 최후통첩에 유가·안보 동시 비상
- 트럼프 한국 등 5개국에 “호르무즈에 함선 파견해 달라”...영국 “동맹과 논의중”(종합)
- 법왜곡죄 1호 조희대…법조계 “재판 지연 등 혼란 불가피”
- 사우디서 軍수송기 타고 한국인 204명 귀국 중…오늘 韓 도착
- 바다속 지뢰 ‘기뢰(機雷)’…해군 ‘기뢰부설함’ 2척 운용
- “싸고 양 많은 게 최고?” 가성비 커피, 무작정 마셨다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