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도 서울시도 못 한 일을 제주도는 해냈다…‘인권의 봄’ 맞은 섬

조해람 기자 2026. 3. 17. 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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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금지법 비등한 내용 담은 ‘제주평화인권헌장’
‘막무가내’ 극우 반대, 숙의와 토론으로 극복
제주의 결단이 ‘백래시의 시대’에 던지는 메시지는
“도민은 합리적인 이유 없이 성별, 종교, 장애, 나이, 사회적 신분, 출신 지역, 용모 등 신체 조건, 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 성적(性的) 지향, 학력 등을 이유로 차별받지 않을 권리가 있다.”

제주도는 지난해 12월10일 ‘제주평화인권헌장’을 선포하면서 첫머리에 이 같은 내용을 담았다. 제주평화인권헌장은 국내 첫 시민참여형 인권헌장이다. 10장 40조로 이뤄진 두꺼운 헌장에는 4·3사건의 진상을 정확히 알고 왜곡·폄훼에 맞설 권리, 기후위기로부터 모두가 보호받을 권리, 성소수자가 차별받지 않고 존중받을 권리 등이 명시됐다. 제주의 평범한 도민 100명이 직접 숙의해 만든 조문들이다.

법적 강제력은 없지만 사회에 던지는 의미는 크다. 최근 10여년 동안 학생인권조례 등 인권 관련 제도는 혐오·차별에 밀려 차츰 후퇴했다. 정치권은 일부 종교계와 보수단체의 눈치를 보며 침묵하거나, 오히려 동조했다. 2014년 서울시민인권헌장이 제정을 코앞에 두고 폐기된 일은 상징적이었다. 차별금지법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국회 앞에 오래 멈춰 있다.

제주 역시 거센 반동에 직면했다. 매일같이 혐오 발언을 동반한 집회가 열렸고, 위력으로 행사가 파행됐다. 그러나 제주는 ‘해야 할 일’을 포기하지 않았다. 설득과 소통의 노력을 놓지 않았다. 평화와 인권은 거저 오는 것이 아니지만, 오지 못할 것도 아니라는 선례를 남겼다.

‘평화의 섬’은 혐오의 파도를 어떻게 넘었을까. 경향신문은 지난 2월20~25일 제주에서 헌장 제정에 참여한 이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2023년 4월1일 제주도 서귀포시 유채꽃프라자에서 상춘객들이 봄을 만끽하고 있다. 문재원 기자
도민 100명, 직접 헌장을 쓰다

제주의 많은 가족이 그렇듯, 홍창부 4·3희생자유족회 부회장의 가족에게도 4·3의 상처가 있다. 학살의 광풍이 섬을 뒤덮었던 1948년 11월, 한라산 중턱에 살던 홍씨 가족은 ‘해안에서 5㎞ 이상 떨어진 곳에 사는 이들은 적으로 간주하겠다’는 소개령 때문에 해안가로 이주했다.

동네 청년들과 야학을 하던 큰아버지가 산을 내려오던 중 사라졌다. 경찰은 큰아버지를 데려오지 않으면 그 동생(홍 부회장의 아버지)을 죽이겠다고 협박했다. 홍 부회장의 아버지는 제주 앞바다 비양도에 숨어 지내다가 겨우 마을에 돌아왔다. 그는 군경에 남편을 잃은 한 여성과 결혼했다. 여성의 세살배기 아들도 함께 슬하에 들였다. 생부의 누명이 아들에게도 굴레가 됐다. ‘빨갱이의 자식’이라는 주홍글씨를 메고 살던 그 아들은 30대에 세상을 떠났다. 홍 부회장을 끔찍이 아끼던 큰형이었다.

수십년이 흐르고 홍 부회장도 환갑을 넘겼다. 2024년 4월13일 오후, 홍 부회장은 제주 샬롬호텔 컨벤션센터를 찾았다. 지인의 권유로 참가하게 된 ‘제주평화인권헌장 도민참여단’ 첫 모임이 열리는 자리였다. “4·3의 정신을 바탕으로 평화와 인권의 가치, 규범을 담은 헌장 제정을 추진한다”는 제주도청의 공고문이 홍 부회장의 관심을 끌었다.

제주평화인권헌장 도민참여단에서 도민들과 함께 헌장 초안을 만든 홍창부 제주4·3희생자유족회 부회장이 지난달 20일 제주도 제주시 한 카페 앞에서 하늘을 보고 있다. 제주|조해람 기자

헌장은 2022년 7월 취임한 오영훈 제주지사의 공약에서 출발했다. 200여개 공약 중 하나였던 ‘인권헌장 제정’에 4·3의 의미를 담아 ‘평화인권헌장’으로 확장시켰다. 인권·노동·여성 등 각계 인사와 학계 전문가 35명으로 구성된 헌장 제정위원회가 2023년 8월 출범했다. 제정위 운영위원장을 맡았던 고현수 제주인권위원장은 “‘평화와 인권의 섬’인 제주도의 가치를 담아 도민들이 인권을 보장받을 권리를 명문화하고, 인권 행정을 펼쳐나갈 규범을 만들고자 했다”고 말했다.

제정위는 도민들이 직접 숙의를 통해 헌장 제정에 참여하게 하자고 결정했다. 공개 모집을 거쳐 신청한 255명을 나이별·성별·지역별 인구 비례에 따라 무작위 추첨으로 추려 100명의 도민참여단을 구성했다. 위촉식과 교육이 진행된 2024년 4월13일부터 5월18일까지 도민들은 매주 토요일 만나 ‘4·3과 평화’ ‘건강과 안전’ ‘다양성’ ‘자연과 환경’ 등을 주제로 토론하며 헌장 초안에 담길 조문을 만들었다.

홍 부회장은 “다들 열성적으로 참여했다. 4·3 이야기를 내가 하지 않아도 많은 사람들이 말한 게 인상적이었다”며 “서로 생각이 다르더라도 한 명 한 명의 말을 무시하지 않았다”고 했다. 헌장 2장에 ‘진실을 알 권리(3조)’ ‘회복할 권리(4조)’ ‘왜곡 등에 대항할 권리(6조)’ 등이 담겼다.

당시 고등학교 1학년이었던 고채운양은 “나이가 많은 어른들도 나를 편하게, 친절하게 대해 줬다”며 “연극에 관심이 많아서 제주의 부족한 문화시설 이야기를 많이 했다”고 했다. 헌장 초안에 ‘문화를 누릴 권리(19조)’, ‘문화시설을 이용할 권리(21조)’가 적혔다. 고양은 “돌아다니는 게 불편하다”는 장애인 참여자의 말을 듣고 장애인 이동권 문제를 알게 되기도 했다. 그의 말은 ‘이동에 관한 권리(33조)’로 남았다.

북한을 탈출해 제주에 정착한 도민은 자신을 어딘가로부터 도망친 이탈자가 아니라, 한 민족으로서 함께 살아가는 주민으로 정체화하고 싶다고 했다. 당시 법적 명칭이던 ‘북한이탈주민’ 대신 ‘북향민’이라는 표현을 헌장에 앞세우기로 했다. 정치인들이 민감한 주제라며 쉬쉬하는 성소수자, 성적 지향, 성별 정체성 같은 단어들도 망설임 없이 헌장에 담았다.

제주평화인권헌장 도민참여단이 2024년 5월18일 제주시 샬롬호텔 컨벤션센터에서 회의를 하고 있다. 제주도청 제공

5월18일 마지막 회의에서 도민참여단은 헌장 초안을 완성했다. 도민들은 자신들을 ‘인권 존중의 주체’로 정의했다. 차별받지 않을 권리, 안전한 일터와 평등한 교육을 받을 권리가 담겼다. 성소수자와 이주민의 인권도 놓치지 않았다. 제정위원인 신강협 제주평화인권연구소 ‘왓’ 소장은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이라는 말을 도민들의 입으로 정확하게 얘기해줬고, 국제인도주의 원칙도 확인됐다”며 “인권운동가로서 겸손해지는 순간이었다”고 했다.

제정위는 도민들의 원문을 최대한 유지하며 일부 표현만 다듬어 헌장안을 만들었다. 공청회 등 공론화를 거쳐 최종안을 완성하고, 제주인권위가 그 최종안을 심의·의결하면 도지사가 승인해 선포하는 게 예정된 절차였다.

제주에도 들이닥친 ‘백래시’

제주도와 제정위는 세계인권의날인 2024년 12월10일에 헌장을 선포하려 했다. 뜻대로 되지 않았다. 전국 곳곳을 휩쓸었던 ‘백래시’가 제주에도 들이닥쳤다.

그해 9월9~10일 제주시와 서귀포시에서 열린 공청회에 보수 기독교계와 극우단체 회원들이 결집했다. 고성을 지르거나 “폐지하라!”는 구호를 크게 외쳤고, 마이크를 뺏거나 단상을 점거하며 공청회를 파행시켰다. 그들은 “평화와 인권은 좌파의 선전선동용 단어”라고 외쳤다.

제주도민연대와 제주거룩한방파제 관계자들이 지난해 12월2일 오후 제주도청 앞 도로에서 제주평화인권헌장 폐기를 요구하며 시위하고 있다. 연합뉴스

반대 단체들은 “소수자의 삶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다수의 인권이 역차별받을 것”이라며 도청 앞에서 계속 기자회견과 집회, 행진을 열었다. 육지의 보수단체가 원정을 와 제주의 보수단체들과 함께 움직였다. 도청 앞은 성소수자를 원색적으로 헐뜯는 혐오 발언과 고성으로 아수라장이 됐다.

강행·굴복 대신 ‘더 많은 설득’

제주도는 그들의 목소리를 더 듣기로 했다. 예정된 선포일을 닷새 앞둔 2024년 12월5일, 제정위는 회의를 열고 격론 끝에 추가 의견 수렴을 결정했다. 해를 넘겨 2025년 1월24일, 제주MBC에서 헌장 찬반토론이 진행된 뒤에도 보수단체들의 반대는 계속됐다. 제정위와 제주도는 수차례 반대 단체들을 접촉해 이야기를 들었다. ‘무조건 폐기’에서 ‘일부 내용 수정’으로 입장을 바꾼 단체도 있었지만, 백래시는 멎지 않았다.

그해 4월23일, 제정위가 마침내 헌장안을 의결해 제주인권위로 넘겼다. 이후에도 절차는 좀처럼 진행되지 않았다. 헌장을 최종 의결해 도지사에게 넘길 제4기 제주인권위의 임기가 끝나는 9월22일이 점점 다가왔다. 인권위를 새로 구성하느라 해가 넘어가면 지방선거 국면에 들어서고 헌장은 무산될 가능성이 컸다.

제주차별금지법제정연대가 지난해 9월15일 제주시 제주도의회 도민카페에서 제주평화인권헌장 제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연합뉴스

분위기가 달라진 건 여름이 지나면서였다. 제주연구원이 도민 101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도정 성과 도민 인식조사’를 발표했다. ‘헌장안 내용에 찬성한다’는 응답은 65.2%로 반대 응답 17.1%를 크게 앞질렀다. 헌장 제정을 촉구하는 제주 시민단체와 진보정당의 성명이 연달아 쏟아졌다. 그해 9월16일, 제주인권위는 임기를 엿새 남기고 헌장안을 최종 의결했다.

인권단체들이 보기엔 아쉬움도 있었다. 일부 인권위원이 헌장 초안에 담긴 ‘성별 정체성’과 ‘성적 지향’이라는 단어에 우려를 보인 것이다. 3~4시간의 격론 끝에 국가인권위원회법에 명시된 개념인 ‘성적 지향’만 남기고, 그 결정을 부대의견으로 달아 도지사에게 올리기로 의결했다.

제주도의 의견수렴도 그해 12월2일 도지사-보수단체 간담회를 끝으로 마무리됐다. 김인영 제주도 특별자치행정국장은 “반대하는 목소리도 있고 오해도 있었지만, 세계인권헌장이나 국가인권위법이 정하는 내용이라면 도민들도 수용할 수 있을 테니 최대한 설득하기로 했다”고 했다. 헌장 제정 절차는 늦어졌지만, 그만큼 명분은 더 단단해져 있었다.

4·3 영령들에게 바친 평화·인권

2025년 12월10일, 마침내 제주시 4·3평화공원에서 헌장 선포식이 열렸다. 보수단체 회원들은 새벽부터 행사장 앞에 장사진을 쳤다. 고함과 욕설이 오가는 아수라장 속에 한 남성이 마이크를 잡고 외쳤다. “제주도를 공산당의 나라로 만드는 개악을 한 거야! 공부하라고 공부!”

지난해 12월10일 제주시 봉개동 제주4·3평화교육센터에서 열린 제주평화인권헌장 선포식 행사장에서 인권헌장 선포에 반대하는 단체 관계자들이 손팻말을 들고 고성을 지르며 반발하고 있다. 연합뉴스

행사가 시작되고도 소란이 이어졌다. “폐기하라”는 구호 속에 오 지사와 내빈들이 인사말을 마쳤다. 이어 오 지사와 이상봉 도의회 의장, 김광수 제주교육감, 김창범 제주4·3유족회장, 청년, 사회복지사, 여성, 인권단체 활동가, 이주민 등이 무대에 나란히 서 헌장 전문을 나누어 낭독했다.

“인권을 존중하고 어떠한 이유로도 차별받지 않으며, 4·3의 민주주의와 평화·인권의 가치가 실현되는 섬을 만들고자 제주평화인권헌장을 제정, 선포한다.” 도민참여단에도 참가했던 문채수연 제주여성인권연대 이사는 “무대에서 문장을 읽어내려갈수록 반대단체들의 구호가 점점 작게 들리는 것처럼 느껴졌다”고 했다. 보수단체 회원들은 4·3희생자 위령제단에 헌장을 봉헌할 때까지 따라붙어 고성을 지르다가 흩어졌다.

지난해 12월10일 제주시 봉개동 제주4·3평화교육센터에서 제주평화인권헌장 선포식이 진행되고 있다. 연합뉴스
“제주, ‘동아시아 인권벨트’ 중심 되길”

헌장의 내용과 제정 과정 모두 한국 사회에 중요한 메시지를 던진다.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보편적 인권에 관련된 내용도 잘 정리돼 있고 환경이나 4·3사건 같은 지역적 특성, 최근의 중요한 변화인 기후위기 관련 내용도 잘 담겨 있다”고 평가했다.

차별금지법을 비롯한 인권 제도·정책이 백래시로 멈춰서는 와중에 헌장을 통과시켰다는 것도 의미가 있다. 홍 교수는 “10여 년 전부터 인권헌장·조례를 방해하는 세력이 큰 압박을 가해 대부분 지자체에서 (제정이) 시도조차 되지 않거나 시도하더라도 좌절됐다”며 “제주에서도 반대가 적지 않았고 힘든 상황도 있었지만, 굴복하지 않고 헌장을 선포한 것”이라고 했다.

헌장 제정 과정을 지켜본 도민들의 인권 의식도 높아졌다. 고채운양은 도민참여단 참여를 계기로 4·3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됐다. 학교 연극부인 그는 4·3을 주제로 연극을 만들었다. 따로 책을 찾아보며 4·3을 공부하고, 4·3 피해자와 통화도 했다. 지난해 5월 말 연극제에 극을 올렸다. 고양은 “연기하는 내내 그분들의 마음을 생각하면서, 그분들을 위로해주고 싶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했다.

오영훈 제주도지사가 지난해 12월10일 제주시 봉개동 제주4·3평화공원에서 열린 제주평화인권헌장 선포식 후 위패봉안실을 찾아 평화인권헌장을 봉헌하고 있다. 연합뉴스

헌장은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행정이 정책 수립·평가에서 주요하게 참고해야 하는 ‘행정적 구속력’을 지닌다. 제주도는 헌장 해설서를 만들고 교육·홍보를 늘려나가는 걸 단기 목표로 삼고 있다. 헌장 내용을 정책에서 실현하는 방안을 수립하기 위한 연구용역도 맡겼다. 고 위원장은 “제주가 광주, 부산, 서울, 더 나아가 동아시아를 잇는 ‘인권벨트’의 중심이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오 지사는 “사회가 점점 복잡해지고 갈등이 다양해질수록 보호나 권리를 누리지 못하는 이들도 늘기 때문에, 평화와 인권의 가치도 더 강조돼야 한다”며 “오랜 숙의를 거쳐 만들어진 헌장은 다양한 이해당사자들의 의견이 모인 지혜의 산물”이라고 말했다.

※제주평화인권헌장 제정 과정을 생생하게 담아낸 스토리텔링 기사 <경해도, 봄은>이 18일 온라인으로 올라옵니다.

제주 | 조해람 기자 lenn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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