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 벤처에 독점 특수법인 잣대…관치 족쇄에 안방 내주는 K가상자산

염윤경 기자 2026. 3. 17. 05:36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대주주지분제한 둘러싸고 가상자산 2단계 법안 표류
연내 제정을 목표로 추진중인 디지털자산기본법이 대주주 지분 제한을 둘러싸고 표류하고 있다. /사진=
연내 제정을 목표로 추진 중인 디지털자산기본법(2단계 입법)이 '대주주 지분 제한'을 둘러싼 정치권과 업계 반발로 표류하고 있다.

16일 가상자산업계에 따르면 여당 내부에서도 정부의 일방적인 지분 제한 추진을 두고 의견이 엇갈리면서 지난 5일 예정됐던 금융위원회와 더불어민주당 디지털자산 태스크포스(TF)의 당정협의회도 무기한 연기됐다.

가상자산 산업의 법적 기반을 마련하고 글로벌 디지털 자산 생태계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겠다는 당초 입법 취지가 '지분 제한'이라는 규제 논쟁에 발목이 잡혔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재명 대통령이 신년사에서 강조한 '혁신 스타트업 열풍'과도 배치된다는 비판이다. 업계에서는 당국의 낡은 금융 규제 논리가 자생적으로 성장한 국내 가상자산 플랫폼의 지배구조를 흔들고 글로벌 경쟁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ATS 논리 벤처에 적용"…행정 편의주의 논란


금융당국이 가상자산 거래소 대주주 지분을 자본시장 대체거래소(ATS) 수준인 15~20%로 제한하려는 근거는 거래소의 '공공 인프라적 성격'이다. 그러나 이는 ATS의 탄생 배경과 법적 성격을 잘못 이해한 접근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해 출범한 대체거래소 넥스트레이드는 한국거래소(KRX)가 보유한 시장 개설 독점 구조를 완화하고 증권사 간 경쟁을 유도하기 위해 정부 주도로 도입된 제도다. ATS에 적용된 지분 제한은 국가가 허용한 시장 일부를 분산하는 과정에서 공공성을 확보하기 위한 장치다.

반면 가상자산 거래소는 국가로부터 독점권이나 인가권을 위탁받은 적 없는 순수 민간 플랫폼이다. ATS가 기존 상장 주식의 매매 체결 기능만 수행하며 한국거래소와 보완적 관계를 이루는 것과 달리 가상자산 거래소는 상장·매매·보관까지 자체 생태계를 구축한 통합 플랫폼이라는 점에서 구조가 다르다.

한 법률 전문가는 "독점권을 분산받은 ATS의 지분 규제를 민간 경쟁 시장에서 성장한 가상자산 벤처에 적용하는 것은 전형적인 행정 편의주의"라며 "적법하게 취득한 지분을 사후적으로 강제 처분하게 하는 방식은 재산권 침해와 소급입법 금지 원칙 위반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글로벌 경쟁 속 '역차별' 우려


가상자산 산업의 경쟁 구조 역시 기존 자본시장과 다르다. 한국거래소와 ATS는 국내 주식시장이라는 제한된 범위에서 경쟁하지만 가상자산 거래소는 국경 없는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한다.

국내 투자자가 클릭 한 번으로 바이낸스나 코인베이스 등 해외 거래소로 자산을 이동할 수 있는 환경에서 국내 거래소에만 지분 규제를 적용하면 경쟁력이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다.

업계에서는 창업자 지분이 크게 제한될 경우 장기 투자 유인이 약해지고 의사결정 속도도 떨어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결국 국내 거래소가 글로벌 플랫폼과 경쟁하기보다 해외 거래소에 유동성을 공급하는 단순 중개소로 전락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 글로벌 거래소 코인베이스는 2025회계연도 기준 매출 71억8000만달러(약 10조7000억원)를 기록하며 종합 금융 플랫폼으로 성장했다. 반면 국내 1위 거래소 업비트 운영사 두나무 매출은 이의 약 7분의1 수준에 그친다.

해외 거래소들이 스테이블코인과 파생상품 등 고부가 사업으로 영역을 확장하는 동안 국내 거래소는 수수료 중심 수익 구조에 머물러 있다는 평가다. 미국이나 유럽(MiCA) 역시 대주주 지분율 상한을 두기보다 적격성 심사와 내부통제 규정 등을 통해 시장 투명성을 확보하는 방식이 일반적이다.


정치권 "위헌 소지…통제 아닌 신뢰 구조 필요"


정치권에서도 지분 제한 조항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김상훈 국민의힘 주식·디지털자산 밸류업 특별위원장은 지난 9일 국회 '디지털자산업 발전 방안' 세미나에서 "대주주 지분 제한은 위헌 소지가 있는 사후 규제"라며 "정부가 규제 일변도 정책을 유지하다 갑자기 지분 제한 카드를 꺼내 들면서 업계 혼란을 키우고 있다"고 비판했다.

민병덕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국회 토론회에서 "대주주 지분 제한이 시장 신뢰 확보를 위한 장치인지 과도한 통제인지 냉정하게 따져봐야 한다"며 "혁신 산업에 필요한 것은 통제의 틀이 아니라 신뢰의 구조"라고 말했다. 그는 "대주주 적격성 심사와 이해상충 방지, 내부통제 의무, 사고 발생 시 책임 구조를 통해 시장 신뢰를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업계 관계자는 "미국은 창업자의 리더십을 보장하며 산업 성장을 지원하는 반면 한국은 기계적인 지분 제한으로 사유 재산 처분을 요구하고 있다"며 "글로벌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으려면 규제 중심이 아닌 산업 진흥 중심의 입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염윤경 기자 yunky23@sidae.com

Copyright © 동행미디어 시대 & sidae.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