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도시’ 두바이 근황 “미사일 파편 뒹굴…미국 배신감 크죠” [인터뷰]

정유경 기자 2026. 3. 17.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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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에미리트 10년 거주 교민
“외신 ‘유령도시’ 보도는 과장 같아요
호르무즈 열면 전선만 넓어질까 걱정”
12일 아랍에미리트 두바이 도심에서 경찰관이 드론 잔해를 살펴보고 있다. 두바이는 이날 두 곳에 드론 잔해가 떨어졌다고 보고했다. AFP연합뉴스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 10년째 항공기 조종사로 일하는 ㄱ씨는 “사람들이 걱정하는 것보다는 안전하게 지내고 있다”고 했다. “수시로 (드론 공습을 알리는) 긴급 문자가 오지만, 요격 시스템이 잘 막아내고 있다”는 것이다. 기자와 통화한 14일 아침(현지시각), ㄱ씨는 전날 비행을 마치고 아이들과 두바이 해변을 산책 중이었다. 한국에 계신 어머니가 울며 귀국을 권하고 있어, 안심시키고 싶어 인터뷰에 응했다고 했다.

지난달 28일 미국 공습을 받은 이란이 두바이 공격을 시작했을 때 그는 말레이시아에 비행을 나가 있었다. 노심초사 끝에 일주일 만에 영공이 열려 아내와 아이들이 있는 두바이로 돌아왔다. 그는 “돌아와 보니 밖에서 걱정했던 것만큼은” 심각하지 않다고 느꼈다. 이란의 드론을 거의 요격시키는 등, 두바이 당국이 잘 막아내고 있었다. “긴급 문자가 어떤 게 날아오는지, 뭐가 요격됐는지 일일이 알려준다. 그동안 평화로웠던 곳에서 요격 시스템을 철저히 준비해 둔 것에 놀랐다.”

두바이 주재원들은 전쟁 발발 직후 대부분 귀국했지만, 이곳에 터잡고 사는 교민들은 일터와 집을 두고 떠나기 쉽지 않다. ㄱ씨도 계속 출근 중인데, 조금이라도 위험하면 운항이 중단되기 일쑤다. 16일엔 두바이 공항 인근에서 화재가 나는 바람에 하늘길을 돌다 60㎞ 정도 떨어진 알막툼 공항으로 회항해야 했다.

전쟁 3주째에 접어든 지금 이란의 드론 공습 횟수는 크게 줄었다. “첫날, 둘쨋날엔 (이란이) 드론 300기를 한꺼번에 보내서 난리가 났는데, 어제(15일)는 10기 정도가 왔다. 부르즈 할리파 같은 건물에 드론이 부딪쳤거나 하면 놀랐겠지만, 이젠 사람들도 (요격할 거라고) 정부를 믿고 있다.” 멀리 폭음 소리, 귀를 찢는 듯한 전투기 소리에도 익숙해졌다. 공습 문자가 오면 집에서 머무르고, 잦아들면 “가끔은 평화롭다고 착각할 정도로” 평소와 다름없이 지낸다. 학교는 원래 4월에 하던 봄방학을 당겼다.

ㄱ씨는 두바이가 ‘유령 도시’가 됐다는 외신 보도는 과장이라고 느낀다. “낮에는 평소보다 인적이 적긴 한데, 공습 탓도 있지만 여기가 지금 라마단 기간(2월 중순~3월 중순)이라 그런 것도 있다. 밤이 되면 다시 사람들이 나오기 시작하고, 식당에도 사람이 찬다.” 그럼에도 당국의 철저한 여론 통제 탓에 소셜미디어에 영상 등을 올리는 건 꿈도 못 꾼다. “인구 중 언제라도 이탈할 수 있는 외국인이 90%인 아랍에미리트 특성상, 정부의 최대 목표는 동요를 막는 거다. 요격을 잘 하고 있음에도 (어떻게 외부에 보일지에) 예민한 것 같다.”

11일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의 스카이라인을 배경으로, 노동자들이 벽에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다. 두바이/AFP연합뉴스

위험한 것은 미사일이나 드론을 요격하면서 발생하는 파편이다. 최근 집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금융 지구인 ‘두바이금융센터’의 한 건물 외벽이 요격 파편에 부서졌다. 대다수가 재택 근무 등으로 전환한 까닭에 인명 피해는 없었다.

ㄱ씨는 “공습 문자가 오면 집에 머무를 수 있는 사무직 노동자들보다, 그럼에도 나갈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이 위험에 노출되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보안 요원, 배달 노동자, 건설업 종사자 등 ‘재택 불가능한’ 이들에게, 전쟁의 파편이 튀고 있는 것이다. 16일 에이피(AP) 통신은 이란의 공습으로 중동 국가에서 최소 12명의 민간인이 사망했으며, 희생자 대부분이 인도·파키스탄 등에서 온 이주 노동자였다고 전했다.

지난 14, 16일엔 아랍에미리트의 원유 수출 기지인 푸자이라 항구가 이란의 공격을 받았다. 아랍에미리트 사람들은 공격한 이란은 물론이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이스라엘에 대해서도 분노한다고 했다. “이곳 사람들은 미국이 도와줄 거라 믿고 미국산 무기도 사고, 미군기지 주둔도 허락했지만 위기의 순간에 전혀 도움을 받지 못했다는 데 엄청난 배신감을 느끼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세계에 파병을 요청하는 걸 두고도 두바이 사람들은 “호르무즈 해협을 여는 실질적 효과 없이, 전선만 넓어지는 게 아닐까, ‘긁어 부스럼’이 될까 걱정하고 있다”고 했다.

ㄱ씨는 이번 사태가 무엇보다 장기전으로 이어지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지금은 어떻게 버티지만, 사태가 길어질수록 이곳 경제는 큰 타격을 받는다. 당장 여행, 호텔업은 직격탄을 맞았다. 4월을 넘긴다면 구조조정도 이어질 것으로 본다. 기우제를 지내는 심정으로 사태가 끝나길 간절히 빌고 있다.”

11일 아랍에미리트의 부유층 거주 지역인 두바이 마리나에서 한 남성이 스쿠터를 타고 있다. AFP연합뉴스
11일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의 크릭 하버에서 사람들이 도시 스카이라인과 부르즈 할리가 보이는 가운데 석양을 지켜보고 있다. AP연합뉴스
13일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 주요 관광지 중 하나인 알시프 시장 옆 테라스에 인적이 한산하다. 두바이/AP연합뉴스

정유경 기자 ed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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