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생각이 나겠지” 노래처럼 패티 김과 이별… 작곡가 길옥윤
1995년 3월 17일 68세

1960년 5월 재일교포 예능인단 12명이 고국을 찾았다. 작곡가 길옥윤(1927~1995)은 그중 핵심 멤버로 소개됐다.
“길옥윤과 그의 ‘동경(東京) 스윙·오케스트라’라고 불리우는 재일교포 예능인들은 악장(樂長)인 길옥윤씨를 주체로 한 오인조로 편성된 ‘콤보·뺀드’와 5명의 가수진 및 코메디안을 겸한 2명의 사회자 등을 그 멤버로 하고 있다.”(1960년 5월 28일자 석간 4면)

길옥윤이란 이름은 일본 활동명 ‘요시야 준(吉屋潤)’을 우리 발음대로 읽은 것이다. 본명은 최치정(아명 최종수)이다. 평북 영변에서 태어난 길옥윤은 1946년 5월 미8군에서 재즈 색소포니스트로 데뷔했다. 1949년 서울대 치의학과를 졸업하고 이듬해 일본으로 건너가 본격 음악 활동을 시작했다. 주요 활동 무대가 일본이었던 까닭에 1960년대에는 ‘재일교포 작곡가’로 소개됐다.
“한국 최초의 재즈 리사이틀이 29일부터 사흘동안 시민회관에서 열린다. 재일교포 작곡가 길옥윤(38)의 귀국 기념 공연인데 잼세션(총등장 연주)이라는 새 스타일.”(1966년 4월 26일 자 조간 5면)

길옥윤은 1966년 국내 공연에서 가수 패티 김과 처음 만나 사랑을 키우고 그해 전격 약혼식을 올렸다. 미국에 거주하는 패티 김은 귀국 공연에서 길옥윤을 만났다.
“재일 교포 재즈 작곡가이며 테너 색소폰 플레이어 길옥윤과 재즈 싱거 패티 김이 7일 낮 2시 30분 반도호텔 다이너스티룸에서 약혼식을 올린다. 길옥윤은 약 5개월 전 일본서 귀국했고, 패티 김 역시 넉 달 전 미국으로부터 돌아와 국내 연예계서 활약 중에 있다. 패티는 10일 미국으로 떠나 약 1년 후에 귀국할 것인데 결혼식은 그때 가서 정할 예정.”(1966년 6월 7일 자 조간 5면)

둘은 여섯 달 후인 1966년 12월 10일 서울 워커힐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공화당 의장 김종필이 주례, ‘후라이보이’ 곽규석이 사회였다. 국내 인기 연예인 등 하객 600여 명이 참석한 성대한 결혼식이었다.
두 사람의 혼인 생활 기간은 음악 활동에서도 황금기였다. 길옥윤이 작곡하고 패티김이 부른 노래는 대중의 큰 사랑을 받았다. ‘4월이 가면’ ‘그대 없이는 못 살아’ ‘서울의 찬가’ ‘사랑이란 두 글자’ ‘이별’ 등이 잇달아 히트했지만 1973년 9월 ‘성격 차이’로 이혼에 합의했다.

“젊은층, 늙은층 할 것 없이 좋아하던 목소리의 주인공 패티김(본명 김혜자)이 5일 작곡가이자 색서폰 주자인 길옥윤(본명 최치정)과 합의 이혼하고 기자회견을 했다. ‘4월이 가면’ ‘서울의 찬가’ ‘사랑이란 두 글자’ 등의 많은 히트곡을 냈던 패티는 최근 길씨가 미국에서 작곡해 보낸 ‘이별’을 불러 크게 히트하자 주위에선 이들이 곧 노래 제목처럼 될 것 같다는 소식이 끊이지 않았었다.”(1973년 9월 6일 자 조간 8면)
길옥윤은 이후 패티김을 대신할 신인 가수 발굴에 나섰다. 1973년 이숙과 지은아를 새 가수로 내세웠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1975년 ‘당신은 모르실 거야’로 데뷔한 혜은이는 ‘진짜 진짜 좋아해’ ‘당신만을 사랑해’ ‘감수광’ ‘제3한강교’ ‘새벽비’ 등 길옥윤이 작곡한 노래를 잇달아 히트시키며 ‘길옥윤-혜은이 전성시대’를 열었다.

“작곡가 길옥윤(52)은 행운아다. 그가 스타로 만든 패티김이나 혜은이만큼 그의 이름도 일반에게 널리 알려졌기 때문이다. 팬들은 ‘서울의 찬가’ ‘이별’ ‘사랑하는 마리아’를 부른 패티와 함께 길옥윤을 생각하고, ‘당신만을 사랑해’나 ‘감수광’의 혜은이와 길씨를 컴비로 알고 있다.”(1979년 1월 21일 자 조간 5면)
길옥윤은 패티김과 결별한 후 20년 만인 1994년 6월 다시 한 무대에 섰다. 일본에서 골수암 수술을 받고 투병하다가 휠체어를 타고 무대에 올랐다.

“현실은 때로 허구보다 더 극적이다. SBS TV가 19일 밤 9시 50분부터 90분간 생방송으로 마련한 ‘길옥윤 이별 콘서트’가 그랬다. 골수암 수술을 받고 일본서 투병 중인 작곡가 길옥윤(67). 그는 이 무대에서 그의 곡을 가장 잘 소화해 냈던 가수이자 한때 아내이기도 했던 패티 김을 만났다. 21년간의 긴 이별 뒤에 찾아온 둘의 만남은 그러나 너무 짧았다. (중략)
이혼 후 공석에서 길씨의 노래를 거의 부르지 않았던 패티 김은 이날 길씨로부터 처음 받은 곡인 ‘4월이 가면’에서부터 마지막 작품이 된 동경가요제 동상 수상곡 ‘사랑은 영원히’까지 모두 5곡을 열창했다. 패티 김은 길옥윤에게 “데뷔곡 ‘4월이 가면’이 길 선생님의 프로포즈였나요”라고 물을 만큼 다정하게 대했다. 길옥윤도 패티 김에게 “비록 짧은 만남이었지만 내 노래를 가장 잘 불러준 가수” “훌륭하게 정상을 지켜줘서 고맙다” “역시 오랜 친구가 최고”라며, 패티 김을 치켜세워 주었다.
피날레로 패티 김이 ‘이별’을 부를 때 그의 눈동자는 충혈되어 있었다. ‘바다 건너 두 마음은 멀어졌지만….’ 66년 2월 일본과 미국에서 각각 귀국, 처음 만났던 두 사람은 공연이 끝난 다음 날인 20일 그 시절처럼 일본과 미국으로 따로 떠났다. 서로 사랑하고, 때론 원망하면서 지내온 지난 세월들이 묻혀지는 순간이기도 했다.”(1994년 6월 21일 자 16면)

길옥윤은 ‘이별 콘서트’ 9개월 후인 1995년 3월 17일 세상을 떠났다. 마지막 병상에서 구술한 회고록 ‘이제는 색소폰을 불 수 없다’가 별세 직전 출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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