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광 발전소 20만개 시대…전력망 '현재형 해법' 가상발전소
⑤[인터뷰] 준중앙급전 최대 참여 기업, 해줌 노서영 VPP 본부장
[편집자주] 기후변화 대응를 비롯해 에너지안보와 인공지능(AI) 고도화 등 다양한 변수가 에너지 생산·이용·소비의 모든 과정을 급속도로 변화시키고 있다. 머니투데이가 이같은 변화가 지속가능하게 이뤄지려면 무엇이 필요할지 다양한 주제를 통해 제시해본다.

전력망이 바뀌고 있다. 과거에는 석탄·가스 같은 대형 발전소 몇 곳에서 만든 전기를 송전망을 통해 보내는 구조였다면, 이제는 전국 곳곳의 태양광과 풍력, 에너지저장장치(ESS)까지 전력망에 연결되는 시대가 됐다. 전기를 만드는 설비가 커다란 발전소 몇 개에서 수많은 소규모 자원으로 흩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 변화의 한가운데 있는 개념이 가상발전소(VPP·Virtual Power Plant)다. 여러 지역에 흩어져 있는 소규모 태양광·풍력 발전소나 전기차, ESS 같은 자원을 하나로 묶어 마치 하나의 발전소처럼 운영하는 방식이다. 전력거래소나 전력망 운영자가 수십만 개의 작은 자원을 일일이 관리하기 어려운 만큼, 이를 대신 모아 연결하고 조정하는 중간 플랫폼이 필요해졌고 그 역할을 VPP가 맡는다.
VPP는 2024년 제주에서 재생에너지 실시간 입찰 시장이 도입된 데 이어 이번 달 호남 지역에 준중앙급전 제도가 시행되면서 전력 시스템에서 역할을 키우고 있다. 머니투데이는 지난 10일 준중앙급전 참여 물량 470메가와트(MW) 가운데 233MW 규모로 가장 많은 자원을 확보한 해줌의 노서영 VPP 본부장을 만나 분산에너지 확대 속에서 달라지고 있는 전력 시스템과 VPP의 역할에 대해 들었다.

이 가운데 VPP는 이런 다양한 자원을 한데 모아 실제 전력시장과 연결하는 역할을 맡는다. 노 본부장은 "전국에 태양광 발전소가 약 20만개, 설비용량으로는 약 30GW에 이르는데, 이 중 거의 대부분이 1MW 이하 소규모 설비"라며 "전력거래소가 이 수많은 발전소를 하나하나 직접 관리하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VPP 사업자는 이런 자원들을 모집해 권역별로 묶고, 발전량을 예측해 계획을 제출하고, 필요할 때는 출력을 조정한다"며 "쉽게 말해 흩어져 있는 발전소들을 모아 하나의 가상발전소를 만드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역할은 최근 시작된 재생에너지 준중앙급전 제도에서 더 분명해졌다. 준중앙급전은 재생에너지를 단순히 전기만 생산하는 설비가 아니라, 전력망 상황에 따라 출력을 조절하는 자원으로 편입하는 제도다. 호남처럼 재생에너지 비중이 높은 지역에서 발전량 예측과 출력제어가 가능한 자원을 골라 전력망 운영에 참여시키는 방식이다.
재생에너지 정책이 처음에는 발전량을 예측하는 단계에서 시작해, 이후에는 예측과 제어, 나아가 예측·제어·입찰까지 하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제주에서 운영 중인 재생에너지 실시간시장이 최종 단계에 가깝다면, 호남 준중앙급전은 그 직전 단계인 '예측하고 제어하는 능력'을 먼저 요구하는 과도기적 제도인 셈이다.
과거 태양광 발전사업은 좋은 입지를 확보하고 설비 원가를 낮춰 오랫동안 안정적 수익을 얻는 구조에 가까웠으나 이제는 발전만 잘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발전량을 얼마나 잘 예측하고 얼마나 빠르게 제어할 수 있는지가 중요해지고 있는 것이다. 노 본부장은 "재생에너지 발전사업자에게는 새로운 수익 기회가 생기는 동시에 계통 운영에 협조해야 하는 책임과 의무도 함께 생기고 있다"고 말했다.

노 본부장은 "송전망이나 초고압직류송전(HVDC) 같은 대형 인프라는 장기간에 걸쳐 추진해야 하는 과제"라며 "그 사이 지금 당장 재생에너지의 이용 효율과 수용성을 높이는 현실적 수단으로 VPP가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VPP가 전력망과 분산자원을 이어주는 플랫폼이자 생산과 소비를 더 잘 연결하는 가교 역할을 맡을 수 있다는 뜻이다.
다만 시장이 본격적으로 성장하려면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고도 강조했다. 노 본부장은 "사업자 입장에서는 수익성 보다 제도가 언제 도입되고 어떤 기술 요건이 필요하며 정산 구조가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 불확실성이 더 큰 리스크"라 했다. 그는 "기존 전력시장은 대형 중앙급전 발전기를 중심으로 설계돼 있었지만 VPP는 수많은 소규모 자원과 중개사업자가 함께 움직이는 구조"라며 "전력거래소와 한전, 사업자 사이에 VPP 사업 특성에 맞는 운영 체계와 소통 구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권다희 기자 dawn27@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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