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는 폭력, 오누이는 용기… 우리 옛이야기, 세계가 알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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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집 나갔던 자식이 살아 돌아온 것만으로도 부모 입장에선 기쁜 일인데, 크게 성공해서 돌아왔다니 얼마나 기뻐요."
이달 초 아동 도서 분야에서 세계적 권위를 지닌 이탈리아 볼로냐 라가치상 특별 부문(우화&옛이야기) 대상을 탄 이억배(66) 작가의 감격 어린 말이다.
"1년 365일 온도는 20도 안팎으로 유지합니다. 더 중요한 건 습도예요. 50%가 넘으면 종이에 곰팡이가 슬거든요." 30년 된 '오누이 이야기' 원화도 이곳에 잠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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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그림책 1세대 이억배 '오누이 이야기'

"어릴 때 집 나갔던 자식이 살아 돌아온 것만으로도 부모 입장에선 기쁜 일인데, 크게 성공해서 돌아왔다니 얼마나 기뻐요."
이달 초 아동 도서 분야에서 세계적 권위를 지닌 이탈리아 볼로냐 라가치상 특별 부문(우화&옛이야기) 대상을 탄 이억배(66) 작가의 감격 어린 말이다. 30년 전 '자식 같은 그림'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기에 오늘의 영광이 가능했다. 수상작 '오누이 이야기'는 1996년 전집 중 한 권 '해와 달이 된 오누이'로 선보였던 그림을 새로운 짜임과 장정에 담아 2020년 다시 펴낸 그림책. 첫 출간 당시 출판사는 그림에 대한 그의 저작권 일체를 넘기라고 요구했다.
이 작가는 "출판사가 저작권 양도 계약을 통해 원화까지 가져 가는 게 관행이었지만, 나는 내 그림을 돌려주지 않으면 작업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버텼다"고 했다. 이어 "본능적으로 자식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어미의 심정이었던 것 같다"며 "덕분에 작품이 다시 부활해 이런 상까지 타게 됐다"며 웃었다.

13일 경기 안성시 그의 작업실을 찾았다. 그는 제일 먼저 수장고 문을 열어젖혔다. 서늘한 공기가 훅 끼쳤다. "1년 365일 온도는 20도 안팎으로 유지합니다. 더 중요한 건 습도예요. 50%가 넘으면 종이에 곰팡이가 슬거든요." 30년 된 '오누이 이야기' 원화도 이곳에 잠들어 있다. 그는 "전셋집을 전전하며 원화를 이고 지고 다니는 게 보통 골치 아픈 일이 아니었다"고 했다. 그는 1998년 도시 생활을 정리했다. 천식을 앓던 어린 자녀 둘과 '셋째'인 작품에 숨을 틔워주기 위해서였다.


이 작가는 국내 창작그림책의 성장을 일궈 온 1세대 작가다. 1986년 홍익대 조소과를 졸업한 후 경기 수원·안양에서 민중미술운동을 했다. 30대 초반 그림책 세계를 처음 접하고 '예술적 충격'을 받은 그는 1995년 첫 창작그림책 '솔이의 추석이야기'를 펴냈다. 이듬해 작업한 '해와 달이 된 오누이'는 초등학교 1학년 때 이복동 선생님이 들려주던 이야기를 숨죽이며 듣던 어린 시절 기억에서 비롯했다. 시골 마당 멍석에 누워 바라보던 검푸른 밤하늘 빛깔을 청색으로 그려냈고, 민화의 결을 살려 구불텅한 고목과 호랑이 털 한 올 한 올까지 섬세하게 표현했다.
'오누이 이야기'는 원화를 그대로 담으면서도 글을 새로 쓰고 현대적 요소를 덧입혀 완전히 새롭게 태어났다. 원화의 실제 크기를 고려해 일반 그림책보다 크고 세로로 긴 판형을 택했다.

무엇보다 '국민 옛이야기'로 오랜 세월 사랑받아 온 비결은 따로 있다고 작가는 말한다. 이야기 속 오누이는 이 땅에 살고 있는 어린이를, 호랑이는 폭력을 상징한다. "어른에게는 어린이를 폭력으로부터 보호할 책무가 있지만, 어린이 스스로도 폭력 앞에서 굴복하지 않고 자신을 지킬 용기를 가져야 한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어요. 지금까지 구전될 수 있었던 건 바로 이런 사상적 배경 덕분이죠. 재미만으로는 안 되거든요."
이번 수상을 계기로 '오누이 이야기'가 더 많은 독자에게 닿기를 바란다. "'오누이 이야기'는 내가 봐도 참 마음에 들어요. 전 세계 어린이들에게도 알려지면 좋겠습니다."

2년 전 어깨 회전근개 수술을 받은 후 지난 한 해 크게 앓았다는 그는 올해 출간을 목표로 새 그림책 '뱀에 물린 공룡 대장'(가제) 작업에 한창이다. '한 장 한 장 그림책' 이후 4년 만의 신작. "강연에서 만난 한 초등학생이 '요즘 왜 그림책 안 그려요?' 묻더라고요. 내 작업을 독자들이 '지켜보고 있다'는 게 굉장히 큰 격려가 됩니다."
권영은 기자 you@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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