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억짜리 가짜 명품에 '오픈런'… 가방 아닌 '우월감 콤플렉스'를 판다

2026. 3. 17. 0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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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정신과 의사의 코멘터리]
<25> 드라마 '레이디 두아'의 사라 킴
편집자주
정신건강의학과 김지용, 오동훈, 허규형 전문의가 영화나 드라마 속 캐릭터들의 심리를 분석하며 우리의 마음도 진단합니다.
넷플릭스 시리즈 '레이디 두아'에서 사라 킴(신혜선)이 지하 공장에서 만들어진 원가 18만 원짜리 부두아백을 흡족하게 바라보는 장면. 넷플릭스 제공

"명품의 가치가 원가로 결정되는건 아니에요. 헤리티지를 좋아한다, 아이덴티티를 좋아한다? 다 개소리죠. 사람들이 좇는 건 명품이 아니라 명품이 주는 사회적 지위니깐요. 전 우월감이라는 부가가치를 판매했고 그에 따른 합리적 가격을 책정한 겁니다."

불법 체류 외국인 노동자들이 만든 핸드백을 가짜 브랜드 '부두아'의 명품으로 둔갑시켜 판매하는 사라 킴은 이렇게 당당한 태도를 보인다. 이 근본 없는 브랜드의 1억 원짜리 백을 구매하기 위해 매장 앞 길게 줄 선 사람들로부터 오는 당당함인데, 드라마 속 과한 설정만은 아니다. 이미 20년 전 우리나라에서 실제로 비슷한 사기극이 있었고, 또 일어난다 해도 별로 놀랄 일이 아니다. 우리나라는 1인당 명품 소비액 세계 1위의 명품 공화국이니까. 최근 흥행한 넷플릭스 시리즈 '레이디 두아'는 우월감 콤플렉스에 명품에 빠진 우리나라의 모습을 재밌고 아프게 꼬집는다.


명품이 ‘등급’이 되는 사회

넷플릭스 '레이디 두아'에서 주인공 사라 킴이 만든 가짜 명품 브랜드 '부두아' 매장에 핸드백이 진열돼 있다. 넷플릭스

명품을 통해 과시하고 우월감을 느끼며, 타인을 무시하는 모습은 드라마 속 이야기만이 아니라, 실제 우리 사회의 단상이다. 언젠가부터 모든 것을 더 노골적으로 줄 세우고 등급을 매기는 사회가 되었다. 오랜 시간에 걸쳐 발달해 온 덕에 성공의 경로와 정의가 다양한 서구 사회와 달리, 압축 성장의 역사 속에 다양한 가치관이 자리 잡을 시간이 없었던 우리나라는 명문대, 대기업·전문직, 서울 아파트라는 단 하나의 트랙밖에 없다. 전 국민이 같은 트랙 위에 있다 보니 등수, 연봉, 평수 같은 객관적 지표가 사람의 가치를 매기는 효율적 도구가 되어버렸다. 이 지표들을 드러내 놓고 다닐 수 없으니, 그럴 때 명품은 매우 효과적인 도구가 된다. 패딩, 가방, 시계, 자동차 등 눈에 보이는 도구를 통해 나의 등급을 확인하고 과시하며 우월감을 느낀다.

명품을 좋아하는 것이 꼭 나쁜 것은 아니고, 어느 정도 당연하다.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는 것이 사회적 동물인 사람의 기본 특성이니까. 열심히 사는 원동력으로 삼기도, 노력한 스스로에게 주는 의미 있는 선물이 되기도 한다. "어떻게 가방 하나, 옷 하나에 그 돈을 써?"라고 말하는 사람도 많지만, 꽤나 합리적 도구가 되기도 한다. 특히 남들에게 어떻게 보이는지가 매우 중요한 우리 나라에서는. 이게 건강한 자존감이 아니란 사실은 누구나 알지만, 미친 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그 미친 분위기에 어느 정도 맞추는 것이 필요하고 도움될 때도 있으니까.

하지만 문제는 우월감 콤플렉스에 빠진 경우다. 이들은 우월감에 병적으로 집착하는데, 어떤 노력을 해서 어떤 명품을 구해도 항상 누군가 위에 또 있기에 계속해서 우월감을 느끼는 것은 불가능하다. 수개월을 기다려 온 명품백을 받는 순간 바로 뒤에 전시되어 있는, 자신은 가질 수 없는 더 화려한 스페셜 오더 핸드백에 눈길을 빼앗기는 드라마 속 정여진처럼. 그래서 명품 구매로는 최고로 우월해질 수 없다고 판단한 사라 킴은 새로운 길을 창조한다. 현실에 존재하는 방법으로는 불가능했기에, 환상과 거짓으로 성을 쌓는다. 극소수의 유럽 왕족들에게만 판매된다는 특별한 명품 브랜드 부두아를 만들어 한국 최고의 부자 앞에서도 결국 갑의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이렇게까지 우월감에 집착하는 심리는 대체 어디서 비롯되는 걸까?


열등감이 불러낸 '우월감 콤플렉스'

넷플릭스 '레이디 두아'에서 뷰티 브랜드 ‘녹스’의 대표 정여진(박보경)은 상류사회에서 밀려나지 않으려 발버둥 친다. 넷플릭스 제공

"타인보다 우월한 것처럼 행동하는 모든 사람의 이면에는, 그것을 감추기 위해 특별한 노력이 필요한 열등감이 숨겨져 있다고 의심해 볼 수 있다." 과거 정신과 의사 알프레드 아들러는 우월감과 열등감은 동전의 양면처럼 같은 존재라고 보았다. 열등감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니고, 인간 모두에게 생애 초기부터 존재하는 감정이다. 걸을 수도, 말할 수도 없는 자신에 비해 유창하게 대화하며 뛰어다니는 이들은 얼마나 전능해 보일까. 자라나면서 무엇을 하든 어디에 가든 나보다 우월한 사람들을 보게 된다. 그걸 따라잡기 위해 발현되는 힘이 발달의 근원이며, 우월성 추구가 인간의 기본 욕구다. 이렇듯 열등감과 우월감은 자연스럽고 건강한 감정이지만, 지나친 열등감은 그것을 가리기 위한 우월감 콤플렉스로 이어지게 된다.

유독 명품에, 명품을 통해 우월해지는 것에 집착하는 우리나라의 특성 역시 그 안에 숨겨져 있을 거대한 열등감 콤플렉스의 정체를 추측하게 한다. 이는 개인의 문제라기보다는 역사적, 사회 문화적 배경들이 합쳐진 결과다. 식민지배와 전쟁, 빈곤을 겪은 후 불과 반세기 만에 선진국으로 도약한 압축 성장의 역사에 기인한다. 국가적 열등감과 무력감을 극복하기 위해 전 국민이 우월성 추구에 매달려 왔다. 과정보다는 결과, 협력보다는 경쟁에서의 승리가 미덕인 시대 속에 '1등이 아니면 의미 없다'는 인식이 뼛속 깊이 새겨졌고, 세대를 이어가며 성공 강박으로 변질됐다. 경제적 성취는 이루었으나 그 부작용으로 콤플렉스를 갖게 됐다.

우월감 콤플렉스 소유자들은 세상을 위아래의 수직적 구조로 인식한다. 남보다 위에 서지 않으면 무시당한다는 두려움이 있다. 안 그래도 수직적 관계를 강조하는 전통적 유교 문화의 배경 위에 자본주의까지 합쳐지며 현대판 신분제가 만들어졌다. 어떻게든 내가 윗등급 사람임을 입증하려는 동시에 다른 사람들을 깎아내린다. 내가 우월해 보일 수만 있다면, 무시받지 않을 수만 있다면 그 브랜드가 가짜인지 진짜인지, 진품인지 모조품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어떤 사람인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떤 사람으로 보이는지가 중요한 것"이라는 사라 킴의 말은 이 사회를 관통하는 불편한 진실이다.


'화려한 우울' 속 마음을 지키려면

넷플릭스 '레이디 두아'의 사라 킴. 넷플릭스 제공

화려한 우울(Splendid Melancholy). 이 드라마는 오픈런을 위해 명품 매장 앞에 텐트를 치고 밤새 줄 서 있던 사람이 발 밑 하수구 속 동사한 시체를 발견하면서 시작된다. 신원을 추측하게 하는 단서는 발목에 적힌 '화려한 우울'이라는 문신과 화려한 색상의 명품백뿐이었다. 청담동 한가운데서 얼어 죽는 일이라니, 화려한 우울이란 말처럼 모순적이다. 드라마 내내 반복되어 등장하는 문신을 보며, 나는 최근 발표된 한 통계를 보았을 때의 기시감을 느꼈다.

오늘날의 우리나라는 외부에 어떻게 보일까. K컬처로 대표되듯 우리나라는 화려하다. 한국에 살고 있는 것이 꿈만 같다는 외국인 내담자들도 진료실에서 만난다. 한국에 대한 인식이 너무 좋아져 여러모로 외국생활이 편해졌다는 유학생들의 이야기도 듣는다. 하지만 국가데이터연구원에서 발간한 '국민 삶의 질 2025' 보고서는 화려함 속에 숨겨진 불편한 사실들도 보여준다. 소득은 증가되었지만 우울과 걱정 등 부정적 감정은 크게 늘어났고, 안 그래도 세계 1위인 자살률은 더 늘어나고 있다. 사회적 유대감도 약화되었고, 사회적 고립도는 코로나19 이전의 수준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화려한 우울은 오늘날 우리 사회에 새겨진 문신인 셈이다. 화려함과 우울함이라는 어울리지 않는 듯한 단어가 동시에 증가하는 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며, 정신분석적으로 바라볼 때 지극히 당연한 결과다.

어릴 때부터 천편일률적으로 등급을 매기고, 다같이 정해진 방향으로 달리기만을 강요하는 사회 분위기는 열등감 콤플렉스를 키운다. '남에게 어떻게 보일지, 무시받지는 않을지'만을 생각하느라 진짜 내가 누구이고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알아갈 기회를 가지기 힘들다. 에리히 프롬은 "우리가 무기력으로 고통받는 이유는 남들이 바라는 삶을 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어릴 적부터 부모와 사회가 시키는 대로 열심히만 살아오고 노력과 운이 겹쳐 성공까지 거두고, 남들이 바라는 명품들까지 지녔음에도 끝없는 공허함과 무기력에 시달리는 이들을 진료실에서 자주 만난다. 남들의 눈에 화려하게 비치는 가짜 자기만 키워 나가고, 진짜 자기와의 괴리가 커지는 삶은 필연적으로 우울과 불안, 무기력에 빠진다. 이 드라마 속 부유한 등장 인물들의 삶이 한결같이 그러하듯 말이다. 수직적 관계로 가득 찬 세상 속에서 외로움을 느끼고, 뒤로 밀려나고 무시당할까 봐 불안감에 시달리며 살아간다.

자꾸만 남들과 비교하며 열등감과 우월감을 자극하는 이 미친 세상에서 마음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것은 '평범해질 용기'다. 발전을 포기하라는 뜻이냐고, 이미 많이 가진 이들의 위선적 말이라 비난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더 특별해지고 싶은 마음을 포기하라는 것이 아니다. 평범과 특별함은 공존할 수 있다. 비교 대상을 타인이 아닌 '이전의 나'로 삼는 방법을 통해 건강한 우월성 추구가 가능하다. 내게 멋대로 등급을 매기고 줄 세우는 세상의 목소리가 크지만 어쩔 수 없다. 그럼에도 인정의 뿌리가 자신의 내면에 내리는 것이 더 중요하다. 빛나는 방식도, 빛나는 데 걸리는 시간도 사람마다 다 다르니까.

세 정신과 의사의 코멘터리

김지용 연세웰정신건강의학과의원 대표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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