쏟아지는 재판소원에 옥석 가리기… '명백성' 어떻게 해석하느냐가 열쇠

정준기 2026. 3. 17. 0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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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안 회부 결정으로 요건 기준 마련해야
"만기친람 않고 헌법 해석상 의미 고민을"
정치인 등 불복성 청구 '각하' 정리될 듯
'위헌법률' 사례, 절차 혼선 등 정리 필요
재판소원 제도를 포함한 '사법개혁 3법' 공포 첫날인 12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민원실에 헌법재판소법 일부개정법률 안내문이 비치돼 있다. 뉴스1

재판소원(법원 재판에 대한 헌법소원) 제도 도입 나흘 만에 헌법재판소로 44건이 접수됐다. 이는 드러난 수치일 뿐이다. '일단 재판소원을 내본다'며 카드를 만지작거리는 이들도 하나둘 등장하고 있다. 사건 폭증을 예상하는 이유다.

제도의 연착륙은 이 같은 사건 무더기에서 재판소원의 취지를 살릴 옥석을 어떻게 가릴지에 달렸다는 평가다. 법조계에선 좀 더 구체적으로 재판소원 청구 요건 중 '위헌·위법의 명백성'에 대한 해석을 핵심으로 꼽는다. 문제는 헌법적으로 의미 있는 사건을 선정하면서도 '자의적인 사건 선별'이라는 비판은 피해야 하는 고차방정식이라는 점에 있다.

16일 헌법재판소에 따르면, 전날까지 헌재에는 하루 평균 10건 이상의 재판소원 사건이 접수됐다. 주말에도 7건이 들어올 만큼, 꾸준하다. 헌재에 접수되는 사건이 연간 2,000~3,000건 수준이란 점을 감안하면, 재판소원이 기존 전체 사건을 뛰어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접수된 사건 중에는 '법원이 무죄추정의 원칙을 어겼다'며 형사처벌 확정 사안에 불복하는 청구가 있었다. 사실상 법원의 사실 인정 과정을 다시 살펴 달라는 주장이다. 당선무효형을 받은 양문석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정치인들이 재판소원 가능성을 시사하는 사례도 있었다.

헌재는 이 같은 형태의 재판소원 청구가 폭증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헌법소원을 법원의 확정 판결에 대한 단순 불복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경우 소송 비용의 증가, 헌재의 업무 과부하 등의 부작용도 만만치가 않다. 강제동원 피해자 등을 대리하는 임재성 변호사는 "희망고문이 되지 않도록 엄격한 요건을 제시하고, 소송 당사자들이 재판소원은 쉽지 않다는 것을 인식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헌재 역시 접수된 사건들을 검토하면서 요건을 고민 중이다. 관련한 내부 발표회도 20일 준비돼 있다. 핵심은 재판소원 청구 사유 중 '3호'(법원의 재판이 헌법과 법률을 위반함으로써 기본권을 침해한 것이 명백한 경우)다. 재판소원 청구 대부분이 이 항목을 근거로 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중요한 건 청구 요건 중 '명백한 경우'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다. 문제는 시간이다. 조문이 추상적인 내용인 만큼, 각하 또는 본안 회부 결정을 쌓아가면서 해석을 만들어가야 하는 상황이다. 헌재의 재량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기도 하다. 헌법연구관 출신 김진한 변호사는 "독일 헌재의 경우 모든 기본권 침해를 구제해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사건 부담이 늘었고, 사건 수를 조절하려고 사전심사에서 형식적 적법 요건 판단에 치중하는 왜곡된 길을 가게 됐다"고 지적했다. 그는 "모든 사안을 다루려 하기보다 헌법 해석상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사건 위주로 심리할 수 있도록 명백성을 판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 와중에 자의적이거나 정치적 판단을 한다는 의심도 피해야 한다.

정치인 등 권력자들이 불복 수단으로 재판소원을 이용할 것이란 우려를 불식시키는 것도 중요하다. 물론 단순 당선무효형 불복 목적으로 청구하는 재판소원은 곧바로 각하될 것이라면서 혼선이 빚어질 가능성은 낮다는 게 중론이다. 헌재 또한 향후 실제 사례를 통해 이 같은 원칙을 확고히 할 예정이다.

다만 빈틈은 여전히 있다. 보궐선거 여부 결정 기한 직전에 당선무효형이 확정되고, 당사자가 재판소원과 가처분 신청을 동시에 내는 사례 등이다. 이 경우 헌재는 단기간에 당선무효 효력을 정지 혹은 소멸시킬지 결정해야 하는 만큼, 정치권 공방 한가운데에 놓일 위험이 있다. 복수의 전·현직 헌재 관계자들은 '집중심리 등 체계적 대응' 또는 '정치적 사건은 원칙적 각하' 등을 제안한다.

'법률 자체가 위헌인 경우' 재판소원이 가능한지도 쟁점이다. 재판 과정에서 위헌법률심판제청 신청 및 헌법소원을 거칠 수 있는데, 이런 조치 없이 재판소원을 청구하면 보충성 원칙에 위배되는지 뚜렷한 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마침 관련 사건이 접수된 상태여서, 조만간 헌재의 사전심사를 통해 원칙과 기준이 정해질 가능성이 있다. 더불어 재판취소 이후 절차 역시 아직 불투명한 상태다. 헌재는 헌재가 취소한 해당 심급으로 사건이 돌아간다고 해석하지만, 법원은 아직 구체적인 절차를 확정하지 않았다.

정준기 기자 jo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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