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판 아마존' 꿈꾸는 정용진 … 러트닉도 "전폭 지원"
유통사업 정체에 AI 승부수
신세계, 용지·인프라 건설
리플렉션AI, 운영·SW 개발
美정부 'AI 수출' 첫번째 사례
정용진 "AI가 미래 성장동력"

"한국의 아마존 모델을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신세계그룹이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사업에 뛰어들겠다고 선언하자 유통업계 등에서 이 같은 목소리가 나온다. 새로운 사업 모델로 이커머스와 함께 AI·데이터센터 사업 등을 벌이고 있는 아마존을 지향하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다.
신세계는 16일(현지시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테크기업 '리플렉션AI'와 손잡고 최소 10조원 이상 대규모 자본이 투입되는 250㎿급 AI 데이터센터를 구축하겠다고 선언했다. 이 같은 규모는 일반 데이터센터 대비 6배가 넘고 국내에서 추진되고 있는 사업 중에는 최대다. 신세계는 정확한 투자 규모를 공개하지 않았으나 10조~20조원이 들어갈 것으로 업계에서는 보고 있다. 데이터센터에는 엔비디아 그래픽처리장치(GPU)가 탑재될 예정이다. 두 회사는 연내 합작법인(JV)을 세워 사업을 추진한다.
이번 파트너십은 미국 정부의 'AI 수출 프로그램' 첫 번째 사례로 한미 기술동맹의 상징적 의미를 더했다. 양사의 양해각서(MOU) 체결식이 열린 곳은 같은 날 미국 상무부가 샌프란시스코에 문을 연 '국가 AI 센터'다.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부 장관은 "사업의 성공적인 진행을 위해 적극 협력하겠다"고 밝혔다.
리플렉션AI는 구글 딥마인드 출신 미샤 라스킨 최고경영자(CEO)와 알파고 개발 주역으로 꼽히는 이오아니스 안토노글루 최고기술책임자(CTO) 등이 설립한 회사로 '오픈 웨이트 AI 모델'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오픈 웨이트 모델은 AI의 핵심 수치값을 공개해 사용자가 목적에 맞게 고치고 조정할 수 있는 방식이다. 오픈AI의 챗GPT나 구글의 제미나이, 앤스로픽의 클로드와 같은 폐쇄형 모델보다 통제권이 높아 국가나 기업이 자국 데이터와 규제 환경에 맞춰 바꾸기 쉽다는 게 장점으로 꼽힌다.
기업가치 80억달러(약 12조원) 정도로 평가받는 리플렉션AI는 지난해 엔비디아 등에서 20억달러(약 3조원)를 투자받았고 이에 따라 GPU도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정용진 신세계 회장은 "AI 없는 미래 산업은 생존 불가능하게 될 것"이라며 "이번 프로젝트는 신세계의 미래 성장 기반에 토대가 되는 것은 물론 국내 산업 전반의 AI 생태계 고도화에도 기여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라스킨 CEO는 "한국은 세계적인 정보기술(IT) 강국으로 미국의 강력한 동맹"이라며 "신세계와 함께 우리는 한국이 주체적으로 진화시켜나갈 수 있는 AI 인프라를 창출할 것"이라고 소개했다.
신세계는 용지 확보와 인프라 건설을 맡고 리플렉션AI는 데이터센터 운영과 관련된 소프트웨어 개발을 담당하기로 했다. 구체적인 데이터센터 용지는 아직 미정이지만 전력 수요 등을 감안할 때 수도권보다 지방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다.
양사가 만드는 데이터센터는 클라우드 서비스를 비롯해 사용자 맞춤형 AI 솔루션까지 제공할 수 있는 '풀스택 AI 팩토리'다. 풀스택 AI는 AI에 필요한 인프라부터 기술과 소프트웨어까지 한꺼번에 제공하는 서비스다. 고객사에 AI를 즉시 가동할 수 있는 모든 환경을 통째로 제공한다. 단순히 인프라나 플랫폼만 제공하고 고객사가 직접 설계해야 하는 기존 데이터센터 사업과 차별화된다. 신세계 관계자는 "이번 협력이 한국의 데이터 주권을 지키는 '소버린 AI' 구축을 위한 핵심 기반이 되도록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지난 수십 년간 백화점과 마트 등 전통적 유통사업에 주력해온 신세계는 이번 사업으로 AI 클라우드 시장으로 영역을 전격 확장하며 디지털 전환에 승부수를 던진 것으로 풀이된다. 내수 부진 등으로 국내 유통업 매출이 정체된 상황에서 AI와 IT 인프라를 새 성장동력으로 구축하겠다는 전략이다.
데이터센터는 기업 등이 서버를 설치할 인프라를 빌려줘 임대료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 신세계가 추진하는 '풀스택 AI 팩토리'는 임대료에 더해 AI 기술료와 운영 수익까지 챙기는 모델이다. 이와 함께 IT사업에서 키운 기술력을 바탕으로 현재 네이버 등이 앞서가고 있는 AI 쇼핑 에이전트에서도 경쟁력을 끌어올리겠다는 계산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유통업에 전념해온 신세계그룹 매출은 2023년 40조6044억원에서 작년 40조9781억원으로 거의 답보 상태다. 유통업만으로는 성장 여력이 제한되는 상황에서 그룹이 보유한 오프라인 거점과 상거래 데이터, 고객 접점을 AI와 결합하면 새로운 사업을 창출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온라인몰에서 고객 취향에 맞는 상품을 선별하고 결제부터 배송까지 전 과정을 책임지는 'AI 에이전트' 서비스를 선보일 수 있다. 또한 상품 발주·운송·배송 등 유통 전반 운영 시스템을 AI로 자동화하고 효율화함으로써 수익 구조를 근본적으로 개선하는 'AI 기반 유통 혁신'도 가능하다. 신세계 관계자는 "그룹 차원에서 AI를 새로운 미래 성장동력으로 키우겠다"며 "오랜 유통 업력을 통해 국내에서 가장 많은 고객 접점 인프라와 데이터를 보유하고 있는데, 여기에 AI 역량이 결합되면 '차별화된 커머스를 제공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리콘밸리 원호섭 특파원 / 서울 이선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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