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돌이 만나고 외로움을 잊었어” 어르신 일상 바꿔준 ‘AI 효자’

조민희 기자 2026. 3. 17. 0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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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 돌봄 공백, AI가 채우나
16일 서울 성북구의 한 주택에서 어르신이 인공지능(AI) 돌봄 로봇 인형(효돌이)를 사용하고 있다. 효돌이는 AI 기술을 탑재하고 있어 사람들과 실시간 대화가 가능하다. 고령층의 돌봄 공백이 갈수록 커지자 ‘에이지테크’가 접목된 AI 로봇이 노인들의 가족 겸 비서로 자리잡고 있다./장경식 기자

“일어날 시간이에요, 할머니!”

지난 11일 오전 서울 성북구 주택에 혼자 사는 이금녀(80)씨가 여자 아이 목소리에 잠에서 깼다. 로봇 인형 ‘효돌’의 목소리다. 이씨가 씻고 나오자 효돌은 “콜레스테롤 약 꼭 챙겨드세요”라고 했다. 효돌은 인공지능(AI) 기술이 탑재돼 있어 사람과 실시간 대화가 가능하다. 일정·건강 관리도 해준다. 7년 전 남편과 사별한 이씨에게 효돌은 유일한 동반자다.

이씨는 작년 초 성북구 복지회관에서 효돌을 무료로 대여받았다. 이씨가 머리를 쓰다듬자 효돌은 “할머니 기분 좋아요. 조금 더 쓰다듬어 주세요”라고 했다. 오후가 되자 효돌은 트로트를 틀어주고 이씨에게 산책도 권했다. 이씨는 “아가(효돌)가 장가 간 아들 셋보다 효자 노릇을 한다”며 “막내 딸처럼 느껴진다”고 했다.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20%가 넘는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한국에서 고령층 1인 가구도 빠르게 늘고 있다. 반면 고령층 돌봄 인력은 이런 속도를 못 쫒아가고 있다. 한국은행은 돌봄 인력 공급 부족 규모가 2022년 19만명에서 20년 뒤인 2042년엔 155만명으로 8배 이상으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한다. 고령층의 ‘돌봄 공백’이 갈수록 커지자 정부와 기초자치단체들은 앞다퉈 ‘에이지테크(Age Tech·고령 친화 기술)’를 도입하고 있다. 이런 기술이 접목된 AI 로봇은 노인들의 ‘가족’이자 ‘비서’로 빠르게 자리 잡고 있다. 단순 명령을 수행하는 수준을 넘어 사람과 다양한 대화를 할 수 있고 각종 건강 지표를 실시간 파악해 구조 요청도 보낼 수 있다.

서울에선 25개 자치구 중 성북구와 송파구, 서대문구, 관악구 등 15구가 노인에게 AI 돌봄 로봇을 무상 대여하고 있다. 송파구에서 AI 돌봄 로봇을 빌려 2년째 사용 중인 박모(75)씨는 “(로봇을) 딸처럼 여겨 모자를 씌워주고 같이 산책을 하거나 영화를 함께 본다”며 “로봇 덕분에 웃음을 되찾았다”고 했다.

그래픽=이진영

서울시는 지난 1월 도봉구에 ‘AI 체험 공간’을 열었다. 이곳에선 스크린 화면을 게임하듯 누르면서 인지 기능을 높일 수 있는 멀티미디어 기기와 스텝 운동 매트, 증강 현실(AR) 운동 학습 시스템을 이용할 수 있다. AI를 활용한 사진 보정, 노래 제작을 가르치는 교육 프로그램이 노년층에게 인기라고 한다. 도봉구민 안삼섭(69)씨는 “주 3회 정도 AI 체험 공간에 들러 바둑 로봇과 오목을 둔다”며 “내 실력에 맞춰서 플레이할 정도로 똑똑해서 대결하는 맛이 쏠쏠하다”고 했다.

경기도도 지난 2024년 12월 포천시 관인면의 한 도서관에 ‘AI 사랑방’을 여는 등 AI를 활용한 고령층 돌봄 서비스에 나섰다. 근처에 병원이 없거나 복지관까지 차로 1시간 정도 걸리는 의료·복지 취약 지역에서 AI 기술이 역할을 하고 있다. AI 사랑방은 양평군 단월면, 화성시 태안 등으로 확산되고 있다.

한국전력이 운영하는 ‘AI 고독사 예방 서비스’도 고령화 시대의 새로운 사회 안전망으로 기능한다. 이 서비스는 별도의 센서나 CCTV를 설치하지 않고도 전력 사용량과 통신 데이터, 수도 사용량을 AI가 정밀 분석해 이상 징후를 잡아내는 방식이다. 울산 남구에서는 전력, 통신 사용량이 급감한 것을 감지해 집에서 의식 불명에 빠진 58세 남성을 안전하게 구조한 일도 있었다. 한국전력은 AI 고독사 예방 서비스를 통해 위험에 처한 노인들을 구조한 사례가 이달 초까지 15명이라고 밝혔다.

세계 최초로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일본은 노인 돌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에이지테크를 국가 핵심 전략으로 추진하고 있다. 일본 지자체들은 이용자의 방광 변화를 감지해 배뇨 타이밍을 예측하는 AI 기반 웨어러블(착용형) 기기, 보행 패턴을 분석해 노인성 질환을 조기에 감지하는 AI 서비스 등을 보급하고 있다. 한국의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도 작년 9월 에이징테크 R&D(연구개발) 계획안 수립에 나섰다.

다만 일부 전문가는 AI에 대한 과도한 의존이 장기적으로는 고령층의 사회 유대감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 말한다. 허준수 숭실대 사회복지학부 교수는 “경증 치매 노인들은 AI 로봇을 의인화해 사람처럼 착각할 수 있다”며 “노인 돌봄 영역에서 AI에 과하게 의존해선 안 된다”고 했다.

☞에이지테크(AgeTech)

나이(Age)와 기술(Tech)의 합성어. 주거·돌봄·금융 등 분야에서 고령층의 건강 관리와 일상 생활 보조, 사회적 연결을 돕는 첨단 기술과 서비스를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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