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서 청천백일기 내걸고… 美·日·대만 3도시, 반도체 동맹
“글로벌 공급망 강화” MOU 체결
‘하나의 중국’ 中 압박에도 대만旗
美측 파격 대우… 中, 반발 가능성

지난 12일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의 주 정부 청사에서 ‘반도체 산업, 인재 개발, 연구·개발, 글로벌 공급망 통합을 강화하기 위한 3자 양해각서(MOU)’(이하 3자 MOU) 체결식이 열렸다. 케이티 홉스 애리조나 주지사와 천치마이 대만 가오슝 시장, 다케우치 신기 일본 구마모토현 부지사가 MOU에 서명하는 장면을 화상으로 연결된 기무라 다카시 구마모토현 지사가 지켜봤다.
홉스 지사는 “애리조나는 대만, 일본과 깊고 지속적인 관계를 맺게 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며 “오늘 체결된 협정은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기술을 위한 글로벌 공급망을 형성할 것”이라고 말했다. 천 시장은 “이번 MOU는 세 지역을 넘어 대만·미국·일본을 전략적 동맹으로 결속시켜줄 것”이라고 말했다. 기무라 구마모토현 지사도 “국경을 넘는 산업 협력을 통해 각 지역 경제 발전을 촉진하는 동시에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의 안정성과 회복력을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체결된 3자 MOU는 미국·일본·대만에서 반도체 중심 도시로 육성되고 있는 세 지역이 처음으로 결성한 ‘반도체 연대’로 가오슝의 제안에 구마모토와 애리조나가 호응하며 성사됐다. 가오슝·구마모토가 합동 미국 방문단을 구성해 애리조나를 찾아 체결식이 열렸다. 형식은 지방정부 간 협력이지만 체결식장의 의전 형식을 보면 사실상 미국·일본·대만의 3각 반도체 협력체라는 평가가 나온다. 행사장에는 미국 성조기, 애리조나 주기(州旗), 일본 일장기와 함께 대만의 청천백일만지홍기가 등장했다.
이는 이례적인 장면이다. ‘하나의 중국’을 내세운 중국의 외교 압박으로 인해 국제 행사에 청천백일만지홍기가 등장하는 일은 극히 드물기 때문이다. 미국과 일본은 중국과 수교하면서 대만과의 관계를 비공식적으로 격하했다. 대만은 정부 단위의 교류가 막힌 한계를 극복하고자 ‘지방정부 간 도시 외교’를 우회로로 적극 활용해왔다. 이번 행사도 지자체 간 MOU였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측 의전은 파격적이었다는 평가다.
이번 3자 MOU의 구심점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세계 1위 기업인 대만의 TSMC다. TSMC의 글로벌 공급망을 이루는 핵심 시설들이 이 세 도시에 있다. TSMC의 대만 가오슝 공장은 글로벌 AI(인공지능) 반도체 수요 급증에 발맞춰 2나노(㎚·10억분의 1m) 이하의 초미세 선단 공정의 핵심 기지로 기능하고 있다. 애리조나에는 TSMC가 미국의 ‘반도체 자립’을 위해 1650억달러(약 247조원)를 투자한 초미세 최첨단 공장이 건설되고 있다. 일본 구마모토에도 앞서 건설된 TSMC 자회사 JASM의 1공장에 이어 최근 2공장 건설까지 확정됐다.
3자 MOU를 제안해 성사를 이끈 대만은 최근 미국과 일본에 대한 반도체 기술 유출 사건으로 홍역을 치렀다. 지난해 12월에는 TSMC의 연구개발 부문을 이끌다 돌연 미국 인텔로 이적한 고위 임원에 대해 대만 검찰이 기술 유출 혐의로 자택 압수수색 등 대대적인 수사에 나섰다. 지난해 8월에도 일본 반도체 업체 도쿄일렉트론 등에 대한 기술 유출 혐의로 TSMC 전현직 임원에 대한 구속 수사가 진행됐다.
이처럼 협력과 투자, 그 이면으로 치열한 기술 주도권 싸움이 벌어지는 상황에서 3자 MOU가 체결된 것에 대해 지정학적 상황이 3각 연대를 이끌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대만해협과 남중국해에서 격화하고 있는 미국과 중국의 글로벌 패권 전쟁,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의 ‘대만 유사 발언’으로 인한 중국·일본 관계의 악화 상황으로 인해 반도체 공급망을 매개로 한 3자 협력 필요성이 부상했다는 것이다. ‘협력 선언문’ 성격의 MOU를 계기로 심층적이고 구체적인 협력이 가시화할 경우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에 대한 3자 연대의 장악력이 더욱 커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다만 이는 중국의 강력한 반발을 불러 보복 성격의 대응 조치를 불러올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3자 MOU에 서명한 천 시장은 샌프란시스코로 이동해 16일부터 개최되는 엔비디아의 연례 개발자 콘퍼런스 GTC에도 참석해 대만계인 젠슨 황 CEO와의 회담 성사 가능성이 주목받고 있다. 3선 제한 규정으로 올해가 임기 마지막인 천 시장은 집권 민진당 소속으로 유력한 차기 총통 후보군으로 꼽히는 인물이다. 한편 대만 제1 야당 국민당 소속 차기 총통 후보군 루슈옌 타이중 시장은 현재 보스턴, 뉴욕, 워싱턴 DC 등 동부 지역 도시들을 방문 중이다. 이달 말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주석의 정상 회담을 앞두고 차기 총통 물망에 오르는 대만 주요 도시 시장들이 같은 시기에 미국을 찾은 것 역시 기존 미·대만 관계에 비춰보면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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