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론 경쟁, 때론 연대… 미술로 대화 나눈 韓日의 역사

요코하마/허윤희 기자 2026. 3. 17. 0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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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요코하마미술관
한·일 미술 교류 80년 특별전
1970년대 한일 미술 교류를 소개한 3부 전시장 벽에 한국 작가 이우환의 ‘점으로부터’와 ‘선으로부터’, 일본 작가 사이토 요시시게의 ‘작품 4′와 ‘반대칭 대각선 No. 1, No. 2′(왼쪽부터)이 나란히 걸려 있다. 오른쪽 바닥에는 일본 작가 에비즈카 고이치의 설치 작품 ‘조응-1977년 7월 대구의 여운’이 놓였다. /국립현대미술관

1986년 10월 5일, 백남준은 서울과 뉴욕, 도쿄를 연결하는 두 번째 위성 생중계 쇼 ‘바이바이 키플링’을 발표했다. “동양은 동양이고 서양은 서양이니, 그 둘은 절대 만나지 못하리라”고 했던 영국 소설가 러디어드 키플링의 말을 반박하며 만든 작품이다. 한국의 전통 북춤과 장구 공연이 박진감 넘치게 지나가고, 서울 아시안게임에서 일본 마라토너 다케유키 니카야마가 선두로 달리는 모습을 극적으로 보여준다. 일본 음악가 사카모토 류이치가 뉴욕 진행자와 건배를 들고, 미국 팝 아티스트 키스 해링, 일본 패션 디자이너 이세이 미야케, 건축가 이소자키 아라타가 등장하는 장면이 현란하게 움직인다.

기술 미디어를 이용해 지역과 시대를 초월한 소통과 통합을 꿈꿨던 백남준의 이 명작이 지금 일본 가나가와현 요코하마미술관에 나와 있다. 요코하마미술관이 한국 국립현대미술관과 함께 3년간 준비한 특별전 ‘항상 옆에 있으니까, 일본과 한국 미술 80년’ 전시장에서다. 1945년 광복 이후 현재까지 80년 넘게 이어온 한일 미술 교류의 여정을 곽인식, 박서보, 이우환, 이불, 히라타 미노루, 다카마츠 지로 등 양국 작가 50여 명(팀)의 주요 작품 160여 점과 아카이브로 선보인다. 일본 현지에서 한국 현대 미술과의 교류를 조명한 최초의 전시회다.

요코하마미술관 2부 전시장에서 백남준의 1986년작 '바이바이 키플링'이 상영되고 있다. 가토 켄 촬영. /요코하마미술관 제공

전시는 재일 조선인 작가들의 작품에서 출발한다. 광복 이후 일본 사회에서 자리 잡아야 했던 재일 조선인의 시선을 첫 섹션에 비중 있게 펼쳤다. 1960년 북한으로 이주한 이후 행적이 알려지지 않은 조양규의 ‘밀폐된 창고’(1957)는 재일 조선인이 마주한 노동 환경과 현실을 드러낸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히비노 민용 요코하마미술관 주임학예원은 “한국과 일본의 ‘사이’에 있는 이들은 민족, 공동체, 국가의 틀에서 벗어나 미술을 이해하는 관점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다”며 “그들의 작품을 통해 한일 미술사를 새로 쓰고 싶었다”고 했다.

조양규, '밀폐된 창고'(1957). 캔버스에 유화 물감, 162×130.5cm, 도쿄국립근대미술관 소장. /국립현대미술관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 이전부터 양국 작가는 서로 교류하며 영향을 주고받아왔다. ‘미디어 아티스트의 아버지’ 백남준이 대표적이다. 1950년대 도쿄대에서 미학·미술사학을 전공한 백남준은 독일에서 첫 개인전을 마치고 일본으로 돌아가 전위 예술가들과 교류하며 실험을 이어갔다. 그는 아베 슈야 등 일본 기술자들과 협업해 컬러TV와 전자 장치를 연구했고, 이듬해 첫 전자로봇 작품 ‘K-456’을 완성한다. 백남준이 일본 전위 예술가들과 부딪히며 만들었던 실험적 작품, 플럭서스 공연, 행위 예술 그룹 하이 레드 센터의 퍼포먼스 등이 기록과 작품으로 전시됐다.

하이 레드 센터, '인체전개도사진(백남준)'. 1964, 사진, 26.7×28.8cm, 개인 소장 ©Genpei Akasegawa, Courtesy of SCAI THE BATHHOUSE /국립현대미술관

1965년 국교 정상화 이후엔 양국 미술 교류가 본격적으로 확장됐다. 단색화와 모노하(もの派)로 대표되는 양국 작가들의 관심사가 교차한 시기다. 모노하는 사물을 있는 그대로 놓아두는 것을 통해 사물과 공간, 위치, 상황, 관계 등에 접근하는 예술로, 이우환은 일본 모노하 작가들과 문제의식을 공유하며 사물과 상황을 바라보는 방식을 이론적으로 확장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당시 일본에 소개된 박서보의 ‘유전질’, 서승원의 ‘동시성’, 이우환의 ‘점으로부터’ ‘선으로부터’ 연작, 1970년대 대구현대미술제에 출품했던 일본 작가들의 작품 등 양국 교류의 궤적을 살펴볼 수 있다.

다나카 고키, '다치기 쉬운 역사들(로드 무비)'. 2018, 영상 설치, 가변크기, 개인 소장. /국립현대미술관

1990년대에는 젊은 작가들의 왕래가 활발해지면서 교류의 방식도 달라진다. 일본 작가 나카무라 마사토는 1987년 한국 여행 중 전시를 둘러보다 이불, 최정화, 고낙범 등이 결성한 ‘뮤지엄’ 그룹의 전시를 접하고 직접 그룹전에 참여했다. 이후 그는 1992년 도쿄예대 동창 무라카미 다카시를 한국으로 초대해 ‘나카무라와 무라카미전’을 열었다. 당시의 출품작과 나카무라가 촬영한 서울과 도쿄의 사진들도 흥미롭게 펼쳐진다.

요코하마미술관 외관. /국립현대미술관

전시장엔 유독 젊은 관객들이 많았다. 히비노 주임은 “BTS 리더 RM이 좋아하는 작가를 보러 왔다가 역사에 대한 무지에서 충격을 받았다는 관객들, 한·일 간에 이렇게 지속적인 미술 교류가 있었다는 걸 처음 알고 놀랐다는 반응도 많다”며 “K컬처를 사랑하는 일본의 10대, 20대가 더 나은 한일 관계의 미래를 만들어주리란 희망을 느낀다”고 했다.

요코하마미술관 전시는 22일까지. 이후 5월 14일부터 9월 27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으로 전시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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