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도 건축기행] 두 채의 박공지붕 빈자의 미학…‘빈민의 아버지’ 삶 대변

광주일보 2026. 3. 16. 2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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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고성 제정구 커뮤니티센터]
도시빈민 권리 보호 위해 일평생 헌신
제정구 선생의 고향에 건립한 기념관
승효상·엄기훈 건축가 공동 설계
붉은 금속 외관, 인위적 마감·치장 거부
척박한 환경 속 굳건했던 삶의 궤적 투영
고성군 대가면 대가연꽃테마공원에 위치한 제정구 커뮤니티센터는 단순한 집 형태의 박공지붕 건물 두 채를 병렬로 배치해 거대한 공공건축 대신 마을 규모에 맞는 친근한 공간 구조를 구현했다.
경남 고성군 대가면 대가연꽃테마공원. 굽이치는 대가저수지의 잔잔한 물결과 수변의 생태가 어우러진 이곳 한편에, 주변의 푸른 자연과 선명한 대비를 이루면서도 기묘하게 조화로운 붉은빛의 철제 건물 두 채가 서 있다. 수면 위로 붉은 박공지붕의 실루엣이 비치는 풍경은 건축물이 자연을 온전히 품어내는 듯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흥미로운 점은 이곳이 단순한 건물이 아니라 점진적으로 자라나는 ‘숲’으로 기획되었다는 것이다. 본래 나무가 부족했던 공원 부지에 비교적 생장이 빠른 백합나무 100여그루를 심어 작은 숲을 조성했다. 건물이 살아 변하면서 점차 이곳이 울창한 숲으로 성장하기를 바라는 판단이 담겼다. 승효상 건축가는 이를 두고 “제정구 선생의 집이 아니라 제정구 선생의 숲을 설계했다고 해도 된다”고 표현했다.

이곳은 평생을 철거민과 도시 빈민의 권리 보호를 위해 헌신하며 ‘빈민의 아버지’로 불렸던 고(故) 제정구 선생(1944~1999)을 기리는 공간, ‘제정구 커뮤니티센터(이하 기념관)’다. 선생의 고향인 고성에 자리 잡은 이 공간은 일반적인 위인들의 기념관이 띠는 거대한 위용을 철저히 배제했다. 스스로를 한없이 낮추고 비워내는 건축적 문법을 통해 선생의 삶의 철학을 물리적 공간에 구현해 냈다.

제정구 커뮤니티센터 전시실 내부는 회색과 검은색,나무색 세가지의 단순한 색감으로만 구성되어 있다.
◇ ‘빈민의 아버지’와 ‘빈자의 미학’의 만남= 기념관 건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제정구 선생의 삶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1944년 고성에서 태어난 선생은 1970년대 청계천 판자촌을 시작으로 양평동, 묵동 등지에서 빈민 운동에 투신했다. 1986년 정일우(존 데일리) 신부와 함께 아시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막사이사이상’을 공동 수상했으며, 이후 제14·15대 국회의원으로 현실 정치에 참여해 소외된 이들의 목소리를 대변했다. 그가 평생을 관통하며 강조한 가치는 “가짐 없는 큰 자유”였다.

이러한 선생의 철학을 공간으로 빚어낸 이는 ‘빈자의 미학’을 주창해 온 승효상 건축가다. 가난한 이들의 삶의 공간에서 발견한 연대와 나눔의 가치를 건축의 핵심으로 삼아온 건축가에게, 제정구 선생의 삶은 곧 자신의 철학과 맞닿아 있었다. 공동 설계자인 엄기훈 건축가와 ㈜세움건축의 시공이 더해져, 이 공간은 한 인물을 우상화하는 거대한 덩어리가 아닌, 지역 주민들이 교류하는 ‘커뮤니티센터’라는 이름으로 2021년 문을 열었다. 연면적 449㎡, 지상 1층 규모로 건립되었으며 총사업비 25억 원이 투입됐다.

◇ 대가저수지를 품은 두 채의 박공지붕과 ‘정자’가 있는 마당= 가장 두드러지는 건축적 특징은 공간의 분할이다. 웅장함을 과시하는 대신, 가장 원초적이고 단순한 집의 형태인 박공지붕 건물 두 채를 나란히 배치했다. 선생이 천착했던 인간 내면의 존엄성을 기억하기 위해, 가장 근본적인 형태의 건축이어야 한다고 여긴 결과다. 두 채의 건물 내부는 전시실, 교육실(강의실), 강당, 북카페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두 건물을 분리함으로써 그 사이로 대가저수지의 풍경이 마치 액자 속 그림처럼 들어오게 되며, 이는 전보다 풍경을 더욱 아름답게 보이도록 만드는 건축적 장치다.

건물 사이에는 자연스럽게 ‘비워진 마당’과 ‘골목길’이 생겨났다. 이는 선생이 평생 호흡했던 판자촌의 골목길, 그리고 빈민들의 끈끈한 공동체적 연대를 은유한다. 특히 마당 한가운데에는 사람들을 늘 환대했던 선생의 성품을 기려 누구나 앉아 쉴 수 있는 ‘정자’를 배치해 모든 이들이 선생과 함께 머무는 듯한 느낌을 주도록 설계했다. 거대한 정문을 통과해 엄숙하게 전시실로 향하는 것이 아니라, 두 건물 사이의 골목을 자유롭게 오가며 모이고 흩어지는 작은 마을이 된 것이다.

입구에는 바른 세상을 향한 염원을 기리는 ‘묵상을 위한 탑(기도소)’이 세워져 있다.
◇ 시간이 빚어내는 외장재, 스스로를 보호하는 ‘내후성 강판’= 기념관 외관을 감싸고 있는 붉은 금속 재료는 승효상 건축가의 시그니처 재료이기도 한 ‘내후성 강판(코르텐강)’이다. 대기에 노출된 초기에는 붉은 녹이 슬지만, 약 5년의 시간이 지나면 표면에 형성된 녹이 치밀하고 단단한 산화 피막으로 변모해 내부의 철을 영구적으로 보호한다.

인위적인 마감이나 치장을 거부하고 자연의 비바람을 맞으며 스스로 단단해지는 이 재료는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굳건했던 선생의 삶을 닮았다. 10년, 20년의 세월이 흐르며 표면이 짙은 암적색으로 변해가는 과정은 건축물이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느껴지게 하며, 결국 이 암적색의 외벽은 주변 숲과 동화되어 선생을 기억하는 묵직한 장치로 남게 된다.

◇ 노출 콘크리트와 세 가지 색채로 비워낸 내부 공간= 내부 공간 역시 철저히 비움과 절제의 미덕을 따른다. 전시실, 교육실, 북카페 등의 내부는 화려한 인테리어를 배제하고 ‘회색(노출 콘크리트 벽과 바닥)’, ‘검은색(노출된 설비)’, ‘나무색(목재 가구)’이라는 단 세 가지의 단순한 색감으로만 구성되었다.

특히 소박한 박공지붕의 원초적인 느낌을 내부에서도 온전히 유지하기 위해 일반적인 전시관에 쓰이는 흡음재마저 과감히 덜어냈으며, 화장실 환기 배관이나 조명 트랙 등 필수적인 설비는 천장에 매립하지 않고 검은색으로 마감해 결합하는 방식을 택했다. 빛과 그림자의 짙은 대비 속에서 전시된 선생의 유품과 사진 기록물들은 불필요한 장식이 제거된 이 건조한 공간 속에서 더욱 묵직한 울림을 전한다.

외벽은 붉은 금속 재료로 마감해 척박한 현실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았던 제정구 선생의 삶이 겹쳐 보이게 만들었다.
◇ 대중 곁으로 다가선 조형물과 묵상의 탑= 건축물과 어우러진 조형물들 또한 주목할 만하다. 임옥상 미술가가 제작한 제정구 선생의 동상들은 높은 단상 위에서 방문객을 내려다보는 권위적인 모습이 아니라 일상적인 모습으로 빚어졌다. 환대하는 모습, 깊은 사색에 잠긴 모습, 기도하는 모습 등 다채로운 형태의 동상이 공간 곳곳에서 방문객을 맞이하고 있다. 당초 4점의 동상이 설치되었으나, 현재 1점은 선생의 생가로 이전되어 3점만이 커뮤니티센터를 지키고 있다.

입구 마당 가까이에는 바른 세상을 향한 염원을 기리는 ‘묵상을 위한 탑(기도소)’이 세워져 있다. 흥미로운 취재 뒷이야기는 동상의 위치 변화다. 당초 이 탑 내부에 안치되었던 기도하는 모습의 동상은 현재 탑 바깥으로 나와 탑 앞에 자리 잡고 있다. 좁고 폐쇄적인 탑 안에 두기보다는, 더 많은 방문객이 선생의 동상을 일상적으로 마주하고 교감하는 것이 공간의 취지에 부합한다는 판단에 따른 결정이다. 우상화를 경계하고 늘 대중과 호흡하고자 했던 선생의 뜻이 현장의 공간 운영에도 고스란히 반영된 셈이다.

◇ 건축적 성취와 공공성의 인정= 제정구 커뮤니티센터의 이러한 건축적, 철학적 성취는 2021년 ‘한국건축문화대상’ 사회공공부문 대상(대통령상) 수상으로 이어졌다. 심사위원단은 이 건축물이 비움과 낮춤을 통해 이 시대 건축의 공공성과 사회적 역할이 무엇인지 명확히 보여주는 훌륭한 사례라고 극찬했다.

거대한 기념비는 결국 그 안의 인물을 박제하고 일상과 분리시키기 마련이다. 하지만 제정구 커뮤니티센터는 권위와 장식을 벗어던진 소박한 건물을 통해 인물의 삶을 현재 진행형의 가치로 되살려냈다. 현재 이곳은 문화 행사나 교육의 장으로 꾸준히 활용되며, 선생이 강조했던 공동체적 연대를 묵묵히 실천하고 있다. 스스로 붉게 녹슬며 백합나무 숲과 함께 성장해 가는 이 공간은, 그 자체로 ‘가짐 없는 큰 자유’라는 메시지를 던지며 물신주의에 사로잡힌 현대인들에게 내면의 존엄성을 일깨우고 오늘도 발걸음하는 이들에게 평등한 쉼자리를 내어주고 있다.

/박준영 기자·사진=김승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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