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쉰들러 ISDS '만장일치 승소'…법무부 "규제권 정당성 선례 확보"

스위스의 승강기 업체 쉰들러 홀딩 아게(Schindler Holding AG)가 한국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국제투자분쟁(ISDS)에서 정부가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 중재판정부의 '만장일치 승소'를 이끌어냈다. 법무부는 3월 16일 "정부 규제권한 행사의 정당성을 밝힐 수 있는 선례를 확립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PCA 중재판정부는 지난 14일 쉰들러가 제기한 사건에서 한국의 전부 승소 판정을 선고했다.
쉰들러 ISDS 사건은 2013~2015년 현대엘리베이터 유상증자 과정에서 공정거래위원회,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등 한국 정부기관이 조사·감독 의무를 게을리 해 현대엘리베이터 2대 주주인 쉰들러가 손해를 봤다며 제기한 사건이다.
쉰들러 측은 최초 청구액으로 약 4900억 원, 최종 심리 단계에서는 약 3250억 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그러나 중재판정부는 한국 정부의 주장을 인용해 쉰들러 측의 주장을 전부 기각했다. 이번 판결로 정부는 천문학적인 배상금 지급 책임을 면했을 뿐만 아니라, 지출한 소송 비용 약 96억 원까지 환수할 수 있게 됐다.
이번 판정을 두고 쉰들러 측이 취소소송을 제기할 가능성도 있다. 쉰들러 사건을 맡아온 양준열(사법연수원 43기) 검사는 "취소소송은 쉰들러 측에 달린 것이라 (소송을) 제기할 지 예측하는 게 어렵다. 그러나 중재판정부의 판정문이 워낙 상세하고 당사자들의 주장을 명쾌하게 판단했기에, 현재로서는 취소소송을 제기할 만한 사유가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한국 정부의 현대그룹 경영권 비호 vs 주주 간 사적 분쟁, 정부 조치는 적법
쉰들러 측은 한국 정부가 현대그룹 회장의 정치적 영향력을 고려해 의도적으로 경영권을 보호하고, 외국 투자자인 쉰들러를 고의로 차별 대우했다고 주장했다.
쉰들러는 현대엘리베이터가 경영권 방어를 위해 파생상품 계약을 체결하고, 이를 유지하기 위해 2013년부터 2015년까지 불필요한 유상증자를 단행했다고 주장했다. 또한 2016년에는 현대엘리베이터 경영진에게 콜옵션을 헐값에 양도하는 등 위법적인 행위가 있었다고 강조했다.
이 과정에서 쉰들러는 공정거래위원회,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에 수차례 민원과 신고를 제기했으나, 이들 기관이 적절한 조사를 하지 않아 투자협정상 의무를 위반했다고 주장했다.
금감원이 현대엘리베이터의 유상증자 신고서를 실질적으로 심사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허위 기재를 묵인하고 그대로 수리했다는 것이 쉰들러 측의 주장이었다.
정부는 본건의 본질이 쉰들러와 현대그룹 회장 사이 경영권 분쟁일 뿐이며, 그 불만을 국가책임으로 돌리려는 쉰들러의 시도는 부당함을 강조했다.
정부는 기관의 조치가 국내 법령과 관행을 준수한 근거를 입증했다. 금감원은 자본시장법상 공시주의 원칙에 따라 형식적 심사를 적법하게 수행했으며, 공정위 역시 15개월간의 면밀한 포렌식 조사 끝에 공정거래법 위반이 없다고 판단했음을 입증했다.
정부는 쉰들러 측의 '대기업 편들기'나 '외국인 투자자 차별' 주장이 추측에 불과함을 밝혔으며, 투자협정상 '충분한 보호 및 안전(FPS)' 의무는 '물리적 보호'를 의미하는 것임을 분명히 했다.
쉰들러의 주장대로 법적 보호가 포함되더라도, 쉰들러는 이미 한국 법원에서 주주대표소송 등을 통해 충분한 법적 구제를 받았음을 증명했다.
중재판정부는 우리 정부의 주장을 전적으로 받아들였다. 판정부는 규제당국의 조치가 자의적이거나 차별적이었다는 쉰들러의 주장을 모두 기각했으며, 정부가 악의를 품고 권한을 남용했다는 객관적 증거가 전혀 없다고 판단했다.
또 투자협정 상 '충분한 보호 및 안전' 의무는 투자에 대한 '물리적 보호'에 국한되는 것이며, '법적 보호'까지 확대되지 않는다고 봤다. 설사 '법적 보호'까지 포함된다고 가정하더라도, 쉰들러는 이미 한국에서 주주대표소송 등을 통해 충분한 법적 보호를 받았으므로, 한국 정부가 투자자 보호 의무를 이행했다고 판단했다.
중재판정부, 쉰들러 주장 모두 기각…한국 정부 '완벽한' 승리
중재판정부는 쉰들러 측이 제기한 공정공평대우 충분한 보호의무 등 주요 쟁점을 비롯해 쉰들러의 주가 하락·파생상품계약 유지비용·콜옵션 양도 손해 등 세 가지 주장 전부를 기각했다. 또 정부가 주장한 '패소자 비용 부담 원칙'에 따라, 쉰들러 측에 우리 정부의 소송비용 약 96억 원(선고일 환율 기준) 및 그 지급 시까지의 이자를 지급할 것도 명했다.
조아라(38기) 국제투자분쟁과장은 "한국의 공정위, 금융위, 금감원의 조치가 외국인 투자자에게 자의적 차별적이거나 악의적이지 않으며 권한 남용 없는 정당한 법 집행이라고 판단했다. 향후 유사 사건에서도 정부 규제권한 행사의 정당성을 밝힐 수 있는 선례를 확립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판정은 대한민국 정부가 ISDS 사건 중 중재절차 본안 심리 단계에서 '전부 승소'를 거둔 역대 두 번째 사례다. 지난 2024년 6월 중국 투자자 ISDS 사건 승소에 이어, 정부의 전문적인 ISDS 대응 역량을 다시 한번 입증한 성과로 평가된다.
법무부는 "본 판정은 국가가 공익 목적으로 비차별적으로 수행한 합리적 규제 권한의 행사는 국제법적으로도 존중받아야 한다는 국가의 규제권 존중 원칙을 확인했다는 점에서 국제법적 의의가 크다"고 밝혔다.
이어 "외국 투자자가 사적인 분쟁을 국제법상 국가책임으로 전가하는 방식으로 정부를 끌어들여 천문학적 배상금을 받으려는 시도를 차단함으로써, 향후 유사 사건에서 중요한 선례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