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년째 표류’ 차별금지법 재발의…지지 목소리 낸 기독교인들

“기독교 정신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가 사랑과 공의(공평하고 의로운 도리)입니다. 늘 사회적 약자·소수자들의 편에 서시고 그들을 위해 이 땅에서 살다 돌아가신 분이 예수님이거든요. 차별금지법이 추구하는 평등의 가치가 예수님의 가르침과 다르지 않다는 뜻입니다.”
‘차별과 혐오 없는 평등세상을 바라는 그리스도인 네트워크’(평등세상네트워크)에서 집행위원을 맡은 이동환 영광제일감리교회 담임목사는 16일 한겨레에 이같이 말했다. 22대 국회에서 최근 차별금지법 발의가 잇따르자 보수 대형 교단을 중심으로 반대 움직임이 거세지는 가운데, 교계에선 이에 맞서 기독교 본연의 가치를 내세우며 법 제정을 촉구하는 찬성론도 조금씩 고개를 들고 있다. 지난해 350여명의 후원을 받아 제작된 ‘기독교인을 위한 차별금지법 안내서’가 최근 피디에프(PDF) 파일로 재발간됐고, 지난달 27일엔 국회 소통관에서 평등세상네트워크와 기독여민회, 예수회인권연대연구센터 등이 ‘차별금지법을 지지하는 기독교인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이 차별금지법을 지지하는 목소리를 낸 배경에는 차별금지법이 발의될 때마다 보수 개신교계가 강하게 맞서면서 도입이 무산된 역사가 있다. 차별금지법은 2007년 처음 발의된 뒤 19년을 표류하고 있다. 그동안 국회에 제출된 차별금지법안이 10여건에 이르지만 보수 개신교계의 극렬한 반대와 이들의 표를 의식한 정치권의 소극적인 태도 탓에 매번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자동 폐기됐다. 22대 국회 들어서는 지난 1월 손솔 진보당 의원이 처음으로 법안을 대표 발의했고, 지난달에는 정춘생 조국혁신당 의원이 대표 발의했다. 이에 ‘거룩한방파제 통합국민대회 준비위원회’는 지난 10일 서울 종로구 한국기독교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차별금지법 반대 운동은 보편적 가치와 도덕을 지키려는 제2의 3·1운동과 같은 애국 운동”이라며 오는 28일 차별금지법에 반대하는 대규모 대회를 열겠다고 밝혔다.
보수 개신교계는 차별금지법이 도입되면 동성애를 비판하는 것만으로도 처벌받는 등 신앙의 자유가 침해될 수 있고,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이 차별금지 사유에 포함돼 남녀 질서와 가정을 파괴할 위험이 있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평등세상네트워크와 차별금지법제정연대는 ‘기독교인을 위한 차별금지법 안내서’에서 이런 주장이 혐오를 기반으로 한 가짜뉴스라고 반박한다. 이 안내서에는 이와 관련해 “차별금지법은 직장, 학교, 공공기관 등 필수적인 생활 영역에서 차별이 금지돼야 한다는 취지를 담고 있다”며 “차별금지법안에는 딱 하나 처벌(벌칙) 조항이 있는데, 차별 피해자에게 ‘불이익 조치’로 보복했을 때 차별 행위자에게 벌금을 부과하는 규정이다. 보수 개신교계가 이 조항을 왜곡해 ‘동성애 발언만 해도 형사처벌 받는다’는 주장을 해왔다”고 설명돼 있다. 또 ‘차별금지법이 동성애를 조장·확산하는 법’이란 주장 에 대해선 “차별금지법은 성적 지향과 성별정체성을 이유로 한 차별을 금지한 법이지, 타인에게 이를 강요하는 법이 아니다. 늘어나는 것은 성소수자 인구가 아니라 성소수자라는 사실을 드러내는 당사자들의 용기일 것”이라고 짚었다.
기독교계 전체가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지만 교인들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는 찬성이 반대를 앞지르는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이 2022년 개신교인 1천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차별금지법 제정에 찬성한 응답자가 42.4%로 반대(31.5%)보다 10%포인트 이상 많은 것으로 집계됐다. 판단을 유보한 응답자는 26.1%였다. 이동환 목사는 “교단 정책을 결정하는 자리는 주로 60대 이상 남성 목사나 장로로 채워진다”며 “그러다 보니 청년·여성 등의 의견이 충분히 반영되기 어려운 구조”라고 말했다. 그는 “다만 개신교에선 교단의 의결사항이라 해도 개개인이 무분별하게 추종하진 않는다. 외려 찬반 의견을 가진 사람보다 관망하는 이들이 더 많다고 느낀다”고 덧붙였다.
차별금지법 지지의 신학적 정당성을 역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류순권 한국교회인권센터 소장은 “복음은 정죄의 언어가 아니라 환대의 언어이고, 배제의 질서가 아니라 함께 살게 하는 길”이라며 “신앙은 사람을 살리는 길이어야지, 누군가를 낙인찍고 밀어내는 명분이 되어서는 안 된다. 국회 역시 더 이상 평등의 요청을 미뤄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박고은 기자 eu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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