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에 있다. 전국에 잇다] 남해 독일마을

김윤관 2026. 3. 16. 2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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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독 광부·간호사의 생활사와 이국적 풍치가 결합된 전국 유일의 관광지
남해에 가면 독일마을이 있다. 남해군 삼동면 물건리 언덕 위, 바다와 숲이 맞닿은 자리에 붉은 지붕의 주택들이 모여 있다. 하얀 벽과 정원, 담장이 이어지는 풍경은 이국적이지만, 이곳이 단순한 '테마형 공간'이 아니라는 점에서 다른 관광지와 구분된다.

남해 독일마을이 주목받는 이유는 경관 자체보다 그 배경에 있다. 이 마을은 1960~70년대 독일로 건너가 광산과 병원 현장에서 노동하며 살아갔던 파독 광부·간호사들의 생활사, 그리고 은퇴 이후 고향으로 돌아와 정착한 과정이 그대로 남아 있는 공간이다. 이러한 정체성은 독일마을을 단순한 이국적 관광지를 넘어, 한국 현대사의 한 장면을 품은 장소로 만든다.
 
남해 독일마을 전경.


◇귀향의 필요에서 출발한 정착 공간

1960~70년대 한국 사회는 일자리와 소득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정부 주도로 이뤄진 파독 근로자 모집에는 광부와 간호사 지원자가 몰렸고, 대학 졸업자도 적지 않았다. 독일행은 개인의 선택이라기보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한 현실적인 결정에 가까웠다.

광부들은 매일 수백 미터 지하 막장에서 석탄을 캐며 장시간 노동을 이어갔고, 간호사들은 언어와 의료 시스템이 전혀 다른 병원 현장에서 교대근무와 야간근무를 감내해야 했다. 이들이 독일에서 벌어들인 임금은 대부분 국내 가족에게 송금됐고, 그 외화와 독일 차관은 국가 경제개발과 산업화 자금의 한 축이 됐다.

은퇴 시기가 다가오자 또 다른 문제가 남았다. 수십 년을 독일에서 살았지만 노후를 보내기에는 여전히 타국이었고, 그렇다고 곧바로 돌아가 정착할 고향의 거처도 마땅치 않았다. 이 과정에서 남해군은 삼동면 물건리·봉화리 일대 9만㎡ 부지를 귀국 정착 후보지로 제안했다. 바다 조망과 숲이 어우러진 입지는 오랜 타국 생활을 마친 이들에게 삶의 기반을 다시 꾸릴 수 있는 장소로 받아들여졌다.

2002년부터 파독 광부와 간호사들은 독일에서 직접 건축자재를 들여와 전통 독일 양식의 주택을 짓기 시작했다. 현재 40여 가구가 실제로 거주하며 마을의 일상을 이어가고 있다. 관광객의 방문이 늘었지만, 이곳의 기본 성격은 지금도 '주거 공간'에 놓여 있다.
 
남해 독일마을 전경.


◇파독 생활사, 전시와 증언으로 이어지다

남해 독일마을의 또 다른 특징은 파독의 역사가 공간 속에 구체적으로 기록돼 있다는 점이다. 마을 한편에 자리한 파독전시관에는 김포공항 출국 장면을 재현한 공간을 비롯해 광산 작업 도구와 간호 현장에서 사용했던 의료기기, 사진과 기록물이 전시돼 있다.

특히 파독 출신 주민들이 직접 해설사로 나서 자신이 사용했던 장비와 당시의 생활상을 설명하는 점이 주목된다. 막장에서 착암기를 다뤘던 경험, 언어가 통하지 않는 병동에서 근무하던 당시의 상황이 개인의 증언을 통해 전달된다. 전시는 과거를 미화하지도, 축소하지도 않는다. 노동 환경과 생활 조건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며, 파독의 의미를 관람객이 체감하도록 돕는다.

이로써 독일마을은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 한국 현대사의 한 단면을 현장에서 확인할 수 있는 장소로 기능한다. 파독 광부·간호사들의 생활사는 여기서 기록으로 남고, 관광객에게는 이해와 학습의 대상이 된다.
 
남해 독일마을 파독전시관 리모델링 준공식.
남해 독일마을 파독전시관.


◇이국적 풍치와 축제, 관광자원으로 확장되다

독일마을의 독일식 건축은 연출된 외형이 아니다. 주택의 구조와 재료, 정원과 담장은 파독 교민들이 독일에서 경험한 주거 환경과 생활 방식을 반영한 결과다. 이국적인 풍경은 자연스럽게 관광 요소로 작용했고, 드라마·영화·예능 프로그램 촬영이 이어지며 전국적인 인지도를 얻었다.

여기에 독일 옥토버페스트를 남해식으로 재구성한 독일마을 맥주축제가 더해지면서 관광자원은 더욱 확장됐다. 이 축제는 2018년 문화체육관광부 지정 문화관광축제로 선정된 데 이어, 2023년에는 '지역문화 매력 100선(로컬100선)'에 이름을 올리며 콘텐츠 경쟁력을 공식적으로 인정받았다.
 
남해 독일마을 맥주축제 현장.
남해 독일마을 맥주축제 현장.


최근 열린 제13회 독일마을 맥주축제에는 사흘간 5만5000여 명이 방문했다. 플리마켓과 체험 프로그램, 수제맥주 경연대회, 주민 참여형 먹거리 부스 등은 축제를 '보는 행사'에서 '함께 참여하는 행사'로 성장시켰다. 축제 공간 확장과 교통·주차 운영 개선도 방문객 만족도를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또한 마을호텔 운영 모델을 통해 숙소·카페·식당을 하나의 관광 체계로 묶으며 체류형 관광을 유도하고 있다. 이로 인해 독일마을은 단순히 둘러보고 떠나는 곳이 아니라, 머물며 소비가 이뤄지는 관광지로 자리 잡고 있다.

남해 독일마을은 이국적인 풍경 위에 이야기를 덧입힌 관광지가 아니다. 파독 광부와 간호사들이 독일에서 겪었던 노동과 생활, 그리고 귀향 이후의 선택이 공간과 건축, 전시와 축제라는 형태로 이어지며 관광자원이 됐다.

그래서 '남해에 가면 독일마을이 있다'는 말은 이제 이렇게 이해된다. 이국적인 풍경을 만나는 동시에, 바다 건너간 한 세대의 삶과 그 의미를 현장에서 확인할 수 있다는 뜻으로.
김윤관기자 kyk@gnnews.co.kr, 취재도움·사진=남해군

 
남해 독일마을 전경.

 
 
남해 독일마을 맥주축제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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