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만 년 시간 품은 초대형 주먹찌르개, 대중과 만나다” 전곡선사박물관 상설전시실 전면 개편 [전시리뷰]

이나경 기자 2026. 3. 16.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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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cm ‘초대형 주먹찌르개’ 최초 공개
위탁받은 24차 발굴 유물, 일반에 순차 공개
5월 특별전 ‘땅속의 땅, 전곡’에서 연구결과 공유
전곡선사박물관은 상설 전시실을 전면 개편하며 길이 42cm에 달하는 ‘초대형 주먹찌르개’를 대중에게 최초로 공개했다. 이나경기자


“지구의 나이를 하루 24시간으로 줄인다면 우리 인류가 등장한 것은 자정이 되기 고작 몇 초 전이다.”

경기문화재단 전곡선사박물관 상설전시실 벽면에 적힌 이 문장은 관람객의 발걸음을 잠시 멈추게 한다. 인류 역사의 99.6%를 차지하는 긴 시간을 우리는 ‘구석기 시대’라고 부른다.

개관 15주년을 맞은 전곡선사박물관이 상설전시실을 전면 개편하고 지난 12일 공개했다. 개편을 통해 길이 42㎝, 무게 약 10㎏에 달하는 ‘초대형 주먹찌르개’를 대중 앞에 처음 선보이고, 구석기에 관한 이야기를 관람객의 눈높이에서 풀어냈다.

전시장 입구에 들어서면 약 700만 년 전 아프리카에서 시작된 인류의 긴 여정이 펼쳐진다. 직립보행의 시작과 도구 사용, 언어와 문화의 탄생까지 이어지는 인류 진화의 흐름이 한눈에 정리돼 있다. 매머드 등 빙하기 동물 모형과 당시 자연환경을 재현한 공간은 마치 구석기 시대로 시간 여행을 떠난 듯한 분위기를 만든다.

전곡선사박물관 상설전시실 구석기 코너를 전면 개편한 모습. 이나경기자


이번 개편은 그동안 상대적으로 약했던 구석기 콘텐츠를 강화하고 노후화된 전시 코너를 새롭게 정비한 것이 특징이다. 설명 글자 크기를 키우고 질문형 콘텐츠를 배치해 어린이부터 어르신까지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실험 고고학 영상과 이야기 형식의 설명도 더해 관람객들이 자연스럽게 구석기 문화를 이해하도록 구성했다.

전시장 한쪽에는 전곡리 유적 발굴 현장을 재현한 공간이 마련돼 있다. 바닥에는 실제 발굴 층위를 연상시키는 전시가 펼쳐지고 주변에는 당시 연구자들이 사용했던 안전모와 곡괭이, 발굴 장비들이 놓여 있다. 석기를 발견한 순간의 흥분이 담긴 학자들의 편지와 기록 영상도 함께 전시돼 수십 년에 걸친 발굴 현장의 시간을 생생하게 전한다.

연천군 전곡리 유적은 1978년 처음 발견된 이후 지금까지 30여 차례의 발굴 조사가 진행된 동아시아 구석기 연구의 중요한 거점이다. 수많은 고고학자와 자연과학 연구자들의 조사와 연구가 축적되면서 오늘의 전곡리 유적이 형성됐다.

1992년 발굴 현장을 당시 도구로 재현한 발굴장에선 최초 발견자 그렉 보웬의 보고서 원본과 학자들의 서신 원본이 함께 전시돼 있다. 이나경기자


전시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전곡리 유적의 토층을 재현한 벽면 뒤편에서 이번 전시의 핵심 유물이 모습을 드러낸다. 성인 팔뚝만 한 크기의 초대형 주먹찌르개다. 살짝 기울어진 채 전시된 모습은 강보에 싸인 어린아이를 떠올리게 한다. 현장엔 이 초대형 석기의 크기를 그대로 재현한 모형물이 비치돼 관람객이 직접 체험할 수 있다.

이 석기는 전곡리 유적 층위 가운데에서도 가장 오래된 최하층에서 출토된 것으로, 현재까지 보고된 구석기 석기 가운데 세계 최대 크기로 추정된다. 전곡리 24차 발굴조사에서 발견된 유물 가운데 하나로,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춘천박물관·겨레문화유산연구원의 협조로 전곡선사박물관에 위탁·기증되면서 지난해 8월 지역의 품으로 유물이 돌아오는 ‘주먹도끼 귀환식’을 거쳐 이번 상설전 개편에서 처음 대중에게 공개됐다.

(우측부터)이한용 전곡선사박물관장과 김소영 학예연구사가 전곡리유적 85-12번지에서 출토된 초대형 주먹찌르개(사진)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이나경기자


이한용 전곡선사박물관장은 “이번 상설전 개편은 전곡리가 축적해 온 방대한 연구 성과를 관람객과 어떻게 나눌 것인지에 대한 고민에서 출발했다”며 “정답을 설명하기보다 관람객이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상상력을 펼칠 수 있는 전시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주먹찌르개 뒤편에는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대표 석기들을 3D 홀로그램으로 구현한 전시와 구석기 일반 상식 코너, 전국 구석기 유적 분포를 보여주는 콘텐츠 등이 다채롭게 이어진다. 또 다른 공간에서는 구석기 시대 장례와 예술을 소개하며 당시 인류가 죽음과 삶을 어떻게 이해했는지 살펴볼 수 있다.

구석기 시대 사람들의 장례 의식과 사후 세계관이 담긴 매장문화 콘텐츠를 벽면에서 살펴볼 수 있다. 이나경기자


거대하고 무거운, 이전의 상식과는 또 다른 모습의 초대형 주먹찌르개가 품은 이야기는 무엇인지, 어떤 목적으로 언제 어떤 방식으로 사용됐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박물관은 “왜, 어떻게 사용했는가”를 밝히기 위해 현재 실험고고학 연구 등을 통해 제작과 사용 방식을 규명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그 연구 성과는 오는 5월 개관 15주년 기념 특별전이자 85-12번지 유적 유물 공개전인 ‘땅속의 땅, 전곡’을 통해 일반에 공개될 예정이다.

이나경 기자 greennforest21@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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