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있는 ‘동네 목욕탕’ 사라지기 전에 기록해야죠”

한겨레 2026. 3. 16.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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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 ‘전국 목욕탕 탐방’ 펴낸 직장인 김성진씨
직장인 김성진씨는 지난 8년간 전국 목욕탕을 두루 탐방한 기록 ‘전국 목욕탕 탐방’을 펴냈다. 사진 김성진씨 제공

한때 동네마다 높은 굴뚝을 가진 공중목욕탕이 하나씩 있었다. 목욕탕 주인은 으레 동네에서 가장 잘 나가는 자영업자였고, 목욕탕은 이웃들이 소식을 나누는 마을의 사랑방 구실을 했다. 아파트의 보급으로 샤워 문화가 확산하고 대형 찜질방이 등장하면서 동네 목욕탕은 점차 설 자리를 잃게 됐다.

자칭 ‘목욕탕 탐방가’인 직장인 김성진씨는 주말이면 지역을 옮겨 다니며 오래된 목욕탕에 몸을 담그고, 그 동네의 국밥을 먹는 일과를 실천해왔다. 지금까지 다녀온 국내 목욕탕은 200곳 이상으로, 목욕탕 탐방은 단순한 취미를 넘어 그의 삶의 일부가 됐다. 2017년부터 블로그에 기록해온 전국의 목욕탕 탐방 후기를 바탕으로 최근 ‘전국 목욕탕 탐방’(베르단디)을 펴낸 그를 지난 11일 인터뷰했다.

40년 전 입욕권 여전히 쓰는 곳부터
국립공원 한눈에 보는 노천탕까지
58곳 엄선한 국내 유일 ‘목욕탕 도감’
“사우나-냉탕 오가는 목욕법 추천”

목욕 문화가 발달한 부산에서 태어난 그에게 어린 시절부터 공중목욕탕은 신나는 놀이터였다. “보통 어린 시절에는 울면서 부모님에게 때를 밀리고, 때를 불리기 위해 억지로 뜨거운 탕에 들어가야 하는 일이 많잖아요. 저는 아버지가 바쁘셔서 초등학생 때부터 남동생과 둘이서 목욕탕에 다녀서 그럴 일이 없었어요(웃음). 동생과 탕에서 놀다가 또 친구를 만나면 친구들과 노느라 즐거웠던 기억뿐이에요.”

대학 시절에도 술을 많이 마신 다음날이면 친구들과 함께 목욕탕에 가는 걸로 ‘해장’을 했지만, 목욕탕은 그에게 평범한 일상이자 습관이었을 뿐이었다. 그가 목욕탕에 남다른 관심을 갖고 탐방을 시작한 계기는 40대 초반 직장의 연수 유학으로 일본 교토에 2년간 살게 되면서였다. “어느 날 교토 소식지에 다양한 목욕탕을 소개하는 특집 기사가 실렸더라고요. 앵무새가 손님을 맞이하는 목욕탕도 있고, 명승지 풍경의 타일 벽화를 갖춘 목욕탕, 여관용 목욕탕을 개조한 목욕탕 등 재미있는 곳이 많았어요. 목욕탕을 찾아다니면서 글을 쓰는 사람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됐죠. 그때부터 집 근처가 아닌 새로운 목욕탕을 찾아다니기 시작했어요.”

귀국한 뒤에도 목욕탕 탐방을 이어가던 그는 유명한 목욕탕이 많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기록을 남겨야겠다는 생각에 블로그에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블로그를 눈여겨본 출판사의 제안으로 ‘팔도의 58탕을 담은 국내 유일 목욕탕 도감’이라는 부제를 달고 세상에 나온 ‘전국 목욕탕 탐방’은 서울부터 제주까지 목욕탕들이 두루 담겼다. 40년 전에 인쇄한 입욕권을 여전히 쓰고 있는 약수탕(서울), 영화와 드라마에 자주 등장했던 구덕탕(부산), 전통 한옥으로 지어진 왕림탕(경주), 가야산 국립공원이 한눈에 보이는 노천탕이 있는 백두산천지온천(거창) 등 당장이라도 목욕 가방을 들고 방문하고 싶은 목욕탕이 가득하다

그가 방문한 200여곳의 목욕탕 중 58곳을 고른 기준을 물었다. “기본적으로는 청결입니다. 책을 보고 찾아갈 독자들이 있을 테니까요. 그 다음 기준은 ‘이야기’입니다. 시설이 아무리 좋아도 이야기가 없는 목욕탕이 있고, 시설은 조금 낡았지만 공간이 말을 걸어오는 목욕탕이 있어요. 그런 곳들을 골랐죠.”

‘바가지탕’ 대신 ‘이벤트탕’ 늘어나고
코로나19 뒤 1인 세신샵 많이 생겨
“수질보다 세신사·바리스타 중요시”

목욕탕의 구조는 시대에 따라 달라졌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세신사들이 많지 않아 ‘바가지탕’이 있는 곳이 흔했다. 바가지탕은 탕 주변에 둘러앉아 때를 밀면서 바로 물을 퍼서 쓸 수 있도록 미지근한 물이 담긴 탕인데, 지금은 거의 사라졌다. 또 예전에는 온탕과 열탕, 냉탕 정도만 있는 단순한 구조가 많았지만, 2000년대 이후 지어진 목욕탕은 미온탕, 쑥탕이나 녹차탕, 노천탕 같은 이벤트탕을 많이 갖추고 있다. “미온탕은 우리 체온과 비슷한 36∼37도 정도 온도의 물로, 엄마 배 속에 있던 기억이 떠오를 정도로 편안한 탕입니다. 한번 들어가면 나오기 힘들 정도죠. 제가 가장 선호하는 건 노천탕인데, 물기 머금은 피부가 바람을 맞을 때 느낌이 참 좋아요. 코로나19 이후에는 1인 세신샵도 많이 생겼어요. 공중목욕탕 이용을 꺼리는 사람들을 위해 작은 욕조와 세신 공간만 갖추고 때를 밀어주는 곳입니다.”

목욕탕의 역할도 변하고 있다. “예전에는 씻으러 가는 곳이었지만 지금은 웰니스 공간에 가깝습니다. 요즘 젊은 층 사이에서는 ‘사우나 런’이라는 문화도 있어요. 함께 5㎞ 정도 달리기를 한 뒤 목욕탕에 가서 사우나와 냉탕을 오가며 몸을 풀죠. 예전에는 목욕탕의 수질이 좋은지를 따졌다면, 요즘은 몸을 잘 풀어주는 세신사가 있는지, 목욕탕 바리스타가 커피를 잘 만드는지 등이 중요한 선택 요소예요.”

‘전국 목욕탕 탐방’은 ‘팔도의 58탕을 담은 국내 유일 목욕탕 도감’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사진 김성진씨 제공

목욕탕 전문가의 목욕법이 궁금했다. “처음에는 온탕, 열탕, 냉탕 순으로 들어가 가볍게 몸을 풀어준 뒤 사우나와 냉탕을 오가는 것을 3세트 반복합니다. 일본에서 2019년 방영된 ‘사도’(사우나의 도)라는 드라마가 히트를 치면서 일본 젊은 층 사이에서 사우나 열풍이 불었어요. 이 드라마에서 소개된 목욕법인데, 따라 해보니 정말 좋더라고요. 이렇게 사우나와 냉탕을 오가다 보면 ‘러너스 하이’처럼 ‘사우나 하이’를 느낄 때도 있습니다.”

그는 가족들과 여행을 가서도 꼭 여행지의 동네 목욕탕을 찾는다. “아침 일찍 일어나 6시쯤 목욕탕에서 목욕하고 7∼8시에 문을 여는 국밥집에서 국밥을 한 그릇 먹은 뒤 로스터리 카페를 찾아서 커피를 한잔 마시고 숙소로 돌아와요. 그리고 가족들을 깨워서 관광을 시작하죠. 보통 동네 목욕탕은 주택가 골목에 있기 때문에 진짜 동네 구경을 할 수 있거든요. 유명 관광지를 다니는 것과는 다른 특별한 재미가 있습니다.”

앞으로도 그는 목욕탕 이야기를 계속 기록할 계획이다. “언젠가는 우리나라 목욕탕에 대한 대중적인 역사책을 쓰고 싶어요. 목욕탕에 다니다 보니 궁금한 것들이 많이 생겨서 관련 자료들을 조금씩 모으고 있거든요. 어느 정도 쌓이면 시도해보려고 합니다.”

김아리 객원기자 a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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