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verseas Trip] 멕시코 여행① 열정을 거침없이 사랑하라 ... 강렬한 태양을 닮은 도시, 과달라하라

2026. 3. 16.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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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여행의 첫 도시, 과달라하라는 중서부 해발 1,550미터에 위치한 멕시코 제2의 도시다. 블루아가베를 사용해 만드는 테킬라의 본고장으로 유명하다. 전통과 현대의 요소가 적절히 조화를 이루는 매력적인 광장, 화려한 성당, 웅장한 신고전주의 건축물로 둘러싸인 도심의 거리를 산책하며 이와 함께 그 이면에 숨은 날것 그대로의 풍경을 마주했다.
평온해 보이는 과달라하라 도심 거리
마약 조직의 분노…전 세계가 주목하는 그 도시

한 달 전, 과달라하라를 여행할 때만 해도 도시의 규모에 비해 외국인 관광객에게 비교적 덜 알려진 숨은 관광도시에 불과했는데, 최근 보도되는 멕시코 관련 뉴스에는 ‘과달라하라’가 헤드라인을 장식 중이다. 마약 단속에 따른 멕시코 정부의 군사 작전, 그 결과 ‘할리스코 신세대 카르텔(JNG)’ 조직의 수장이 사살되었다는 소식이 전 세계를 들썩이게 하고 있다. 자신의 수장을 죽인 정부에 강력 항의하는 갱단들의 소요 사태가 할리스코주의 주도인 과달라하라를 넘어 멕시코 전역으로 번지기도 했다. 이에 셰인바움 멕시코 대통령은 해군 함정 투입, 군 추가 투입 등 특단의 조치를 내세워 “시민의 안전을 반드시 보장하겠다”고 선언하며 일상으로의 복귀를 추진하고 나섰다.

시민의 안전 보장도 물론 중요하지만, 셰인바움 대통령이 기자회견을 자처하며 자신의 의지를 전 세계에 강력히 피력한 데에는 과달라하라가 오는 6월 열리는 북중미 월드컵 16개 개최도시 중 한 곳이라는 사실이 있다.

(좌) 북중미 월드컵 개최일까지의 D-Day를 알리는 전광판 (우) 인상적인 조형물이 설치된 도심 공원
이번 카르텔 수장 사살 폭력 사태가 벌어지기 전까지 과달라하라는 ‘홍명보호 베이스캠프’로 국내에 알려진 도시다. 대한민국 축구대표팀의 본선 1, 2차전이 과달라하라에 위치한 에스타디오 아크론 스타디움에서 열린다. 그러니 셰인바움 대통령이 선언한 시민의 안전 보장은 나아가 월드컵을 위해 방문하는 전 세계 축구 팬들의 안전 보장을 의미한다. 과달라하라 도심 대광장 한쪽에는 월드컵 개최일까지 남은 일수와 시간을 알리는 전광판이 세워져 있다.

이를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느라 분주했던 시민들의 일상 풍경, 곁에서 보는 것만으로 설렘이 느껴지는 사람들의 환한 얼굴과 그 표정이 과달라하라 여행을 기억하는 인상적인 순간 중 하나로 남아 있다. 연일 뉴스에서 보도되는 과달라하라의 현주소는 긍정보단 부정적인 면에 가까운 형국이지만, 과달라하라를 여행한 내 기억 장치는 이에 반기를 든다.

과달라하라 중심가 전경
과달라하라에서 사랑 앞에 ‘늦은’ 나이는 없다

멕시코 여행은 생에 처음이었다. 넓디 넓은 태평양을 건너 머나먼 멕시코 땅에 발을 들인 뒤 과달라하라 공항에서 버스를 타고 도심으로 이동하는 동안 난데없이 로맨틱 드라마가 펼쳐졌다. 앞 좌석에 앉은 커플의 진한 스킨십은 한두 번에 끝나지 않았고, 더 놀라운 건 주변 현지인들은 이들을 신경조차 쓰지 않는 분위기였다. 과연 열정의 나라, 멕시코답다. 사랑만큼은 열정적으로 하는 멕시코 사람들.

커플은 외관상 중년을 넘긴 나이쯤으로 보였는데, 만약 한국의 공항 리무진버스 안에서 중년 커플이 이런 드라마를 찍고 있다면 열정이 아니라 교육을 못 받은 사람 취급을 받을 게 뻔하다. 뉴스에 소개되는 건 당연지사고. 이들의 로맨틱 드라마는 나로선 수요 없는 공급과도 같았는데, 어쨌든 이들 커플로 하여금 낯선 여행을 시작했다는 사실을 체감할 수 있었다.

(좌) 도시의 랜드마크인 16~17세기에 건축된 과달라하라 대성당 (우) 스페인 르네상스 스타일로 디자인된 과달라하라 대성당 내부 전경
참고로 한국과 멕시코의 시차는 15시간이다. 다시 말해 낮과 밤이 완전히 뒤바뀐 시간, 여행을 시작하기에 앞서 시차 적응에 부단히 열정을 쏟아야 한다는 얘기다. 과달라하라는 멕시코에서 두 번째로 규모가 큰 제2의 도시다. 1531년 바스크 정복자에 의해 설립된 아열대 도시 과달라하라는 풍부한 역사를 자랑하며 역경을 이겨낸 강인함과 문화적 다양성을 보여주는 곳이다. 전통적이면서도 현대적인 도시로도 일컬어지는 과달라하라는 1970년대부터 시작된 공공 정책을 통해 세계적 IT기업을 유치하는데 성공해 도시 발전에 기틀을 마련한 바 있으며, 이와 더불어 세계적으로 알려진 멕시코의 전통적 상징을 담고 있는 대표적인 도시로 손꼽힌다.

그중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광활한 아가베 밭이 펼쳐져 있는 테킬라 마을과 멕시코의 민속음악인 마리아치는 할리스코에서 최초로 시작되어 멕시코 전역으로 뻗어 나가 꽃을 피웠다. 매력적인 광장, 화려한 성당, 웅장한 신고전주의 건축물로 둘러싸인 도심의 거리는 과달라하라 여행의 골자를 이룬다.

(위) 과달라하라의 역사와 전설이 깃든 신전, 로스 도스 템플로스 (아래) 형형색색 화려하게 불을 밝힌 도심의 거리
낮보다 밤이 아름다운 도시, 형형색색 화려하게 불을 밝힌 도심의 거리는 평일, 주말 할 것 없이 매일 밤이 축제의 현장이다. 공항버스에서 봤던 중년 커플의 진한 스킨십은 그저 시작에 불과했다는 듯 거리 곳곳, 공공장소 가리지 않고 로맨틱 드라마 방영이 한창이다. 평소 나름 개방적인 사고를 가졌다고 생각했는데 열정에 사로잡힌 사람들을 보니 그 생각에 자꾸만 물음표가 뜬다.

한국인에게 ‘열정’은 자신이 세운 목표를 이루려는 노력과 의지에 가까운 단어라면, 이곳 사람들에게 ‘열정’은 ‘사랑’의 동의어처럼 보인다. 타인의 시선을 전혀 생각하지 않는 멕시코 사람들의 정신과 사고, 그것을 관찰하는 것만으로 여행의 이유가 분명해지는 기분이다. 연령에 상관없이 열정적인 사랑을 나누는 멕시코 사람들은 아무리 보고 또 봐도 영 적응이 쉽지 않다. 아무래도 시차 적응보다 ‘이 적응’이 선행되어야 할 것 같다.

화산토에서 자라난 오리지널 테킬라의 맛과 향

(좌) 테킬라 통 모양의 차량을 타고 투어를 즐기는 관광객들 (우) 테킬라 칵테일을 담는 술잔
‘멕시코의 술’ 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두 가지는 증류주인 테킬라와 라거 맥주인 코로나다. ‘테킬라’의 명칭이 술에 붙여지는 일반적인 이름으로 여겼는데, 이번 과달라하라 여행을 준비하면서 ‘테킬라’라는 마을의 존재와 이곳 지역의 이름을 따서 명칭이 붙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됐다. 과달라하라에서 북서쪽으로 약 65킬로미터 떨어진 할리스코 고원에 테킬라 마을이 자리한다.

과달라하라 도심에서 차로 2시간가량 소요되는, 거리상 당일치기 여행으로 계획하기 딱 좋은 코스다. 현지 여행사에서 운영하는 테킬라 투어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도 좋지만, 타인들에게 방해받지 않은 채 홀로 유유히 마을을 둘러볼 계획으로 시외버스를 이용해 테킬라 마을로 향했다.

테킬라 지역의 화산토에서 자라는 블루아가베
과달라하라 도심 터미널을 빠져나온 버스가 약 30여 분 달렸을까. 인적 드문 외곽 지역에 들어서자 저만치 뾰족하게 날이 선 무성한 아가베 나무가 차창 밖을 수놓았다. 멕시코 전역에서 자생하는 다육식물인 아가베는 날카로운 가장자리 톱니와 매우 날이 선 끝가시를 가지고 있으며 내부가 섬유질로 채워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마야 문명 전부터 원주민의 음식과 치료제로 널리 사용된 아가베는 오늘날 주로 시럽과 테킬라의 원료로 쓰인다. 특히 인공 감미료나 설탕 대신 요리에 첨가하는 아가베 시럽은 최근 들어 건강한 천연당이라는 인식이 자리잡으며 인기를 얻는 추세다. 흔히 아가베로 만든 멕시코 증류주를 테킬라라고 칭하는데,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메스칼과 테킬라의 관계성이다. 일단 ‘메스칼’은 아가베를 사용해 멕시코 전역에서 생산되는 증류주를 일컫는 명칭이다. 전체 생산량을 감안하면 메스칼의 70% 이상이 테킬라 마을이 위치한 할리스코주가 아닌 멕시코 남부도시인 오아하카주에서 만들어진다.

(위) 테킬라 마을 중심부 전경, (아래) 멕시코산 오크통에서 숙성시킨 최초의 테킬라를 선보인 마에스트로 증류소
그도 그럴 것이 테킬라 마을에서 생산되는 증류주는 메스칼과 전혀 다른 아가베 품종을 주재료로 만들기 때문이다. 바로 테킬라 마을에서 재배되는 블루아가베가 그것이다. 다시 말해 블루아가베를 사용해 제조한 증류주만이 공식적으로 ‘테킬라’라는 명칭이 붙는다. 그 외에 증류주는 모두 메스칼로 통용된다. 고지대에 위치한 테킬라 지역의 붉은 화산토가 블루아가베 재배의 근간을 이루는 요소로서, 아가베의 크기가 더 크고 향과 맛이 한층 달콤한 질 좋은 환경을 자랑한다. 나아가 이곳의 블루아가베 재배는 멕시코의 고유한 농업 유산이자 지리적 표시 보호를 받는 중요한 자원이기도 하다.

테킬라가 가진 유려한 명성에 비해 테킬라 지역 규모는 작은 시골마을에 지나지 않는다. 천천히 산책하며 둘러보기 알맞은 구조다. 이곳 마을에서 유명한 증류소 중 하나인 1873년 설립된 ‘카사 사우자’를 비롯해 멕시코산 오크통에서 숙성시킨 최초의 테킬라라는 명성이 붙은 ‘마에스트로 브랜드 증류소’ 등지에서 진행되는 테킬라 증류소 투어는 사전 예약이 필수일 정도로 인기가 높은 편이다.

가장 순수한 맛을 선사한다고 알려진 마에스트로 도벨
테킬라 제조 과정을 살피고 다양한 테킬라의 시음 기회를 제공하는 투어 프로그램은 술을 넘어 테킬라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향유하는 경험을 안긴다. 화산토에서 자라난 블루아가베의 독특한 흙 내음과 은은한 단맛, 아가베 특유의 풍미, 여기에 알코올의 강렬함이 적절한 조화를 이루는 테킬라의 맛은 한마디로 정의하기 쉽지 않다.

멕시코 사람들은 이 테킬라의 맛을 ‘순수한 술의 맛’이라 표현한다고 하는데, 그 맛을 음미하다 보면 그들의 말에 동감하지 않을 수 없다. 다른 것이 전혀 섞이지 않은, 욕심을 내려놓은 것 같은 맛과 향, 그렇게 순수 테킬라를 그리고 테킬라 마을을 기억에 담았다.

물 부족 위기를 통해 바라본 도시의 낯빛

(좌)과달라하라 도심에는 노숙인 수가 상당하다. (우)대광장 인근 좁다란 골목길은 정제되지 않은 과달라하라의 낯빛을 보여준다.
타코 식당에서 어쩌다 과달라하라의 물 부족 위기 이슈가 테이블 위에 올랐다. 사실 이곳에 온 첫날부터 며칠째 샤워를 제대로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샤워를 하긴 하는데 씻다 만 것 같은 찝찝한 느낌이 강하다. 이유는 앞서 말한 물 부족 때문이다. 샤워기 헤드에서 흐르는 물줄기가 가늘다 못해 약간의 과장을 보태면 한방울씩 떨어지는 모양에 가깝다. 한데 욕실 샤워기만의 문제가 아닌, 주방 싱크대나 화장실 세면대에서 흘러나오는 물줄기도 이와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숙소가 배낭여행자를 대상으로 하는 저렴한 숙박시설이라는 점 때문일까 의심했으나 숙소 주인은 과달라하라에서 5성급 호텔이라고 해도 물줄기의 세기는 별반 차이가 없을 거라며 확신에 차서 말을 했다. 그 사실을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할 길이 없으니 그냥 주인의 말에 수긍하고 말았는데, 타코 식당에서 미국인 여행자와 합석을 하게 되면서 뜬금없이 이 도시의 물 부족에 관한 대화를 나누게 된 것이다.

물 부족 위기를 보여주는 식당 화장실 세면대의 물줄기
미국인 여행자가 먼저 “묵고 있는 숙소에 물은 잘 나옵니까?”라고 내게 질문을 던졌다. 속사정을 들어보니 미국인 여행자가 머물고 있는 숙소는 3~4성급 정도 규모로, 어쨌든 배낭여행자 숙소와는 레벨이 달랐다. 그러나 호텔 수준에 걸맞지 않은 물줄기 때문에 그도 꽤나 찝찝함을 느끼고 있는 상황이었다.

과달라하라의 물 부족 위기는 수 년째 이어져온 심각한 도시 문제 중 하나다. 급속한 도시화, 지하수 과다 개발, 여기에 도시 물의 약 60%를 공급하는 차팔라 호수에 대한 과도한 의존으로 인해 심각한 물 위기에 직면해 있다. 또한 노후화된 송수관과 부적절한 처리 시설로 인해 상당한 물 손실과 수질 악화가 발생하고 있다는 점도 물 부족 위기를 가속화하는 배경이다.

멕시코에 왔음을 실감케 한 로컬 식당의 타코
과달라하라를 비롯해 국가 전체가 이런 상황에 처해 있다 보니 ‘고작 며칠 머물다 가는 여행자의 찝찝함이 뭐 대수인가’ 싶다. 어쩌다 등장한 물 부족에 관한 대화는 그렇게 결론에 이르렀다. 멕시코의 다른 도시에 가면 욕실 환경이 달라지지 않을까 내심 기대했지만 이제 그 기대를 내려놓아야 할 것 같다.

‘월드컵 개최도시’라는 과달라하라가 가진 새로운 기대와 설렘, 그러나 그 이면에는 여행지로서 다소 미흡한 얼굴을 내보인다. 화려하게 단장된 도심 대광장을 벗어나 고작 한 블록 지났을 뿐인데 거리의 풍경은 노숙인이 판을 치는 분위기로 채워져 있다. 그리곤 또 한번 한 블록을 건너면 다시금 멋들어진 상점과 식당 등이 들어선 활기찬 거리가 나타난다.

형형색색 화려하게 불을 밝힌 과달라하라 도심 거리
멕시코 제2의 도시라고 하기에는 정제되지 않은 도시의 낯빛이 여행자를 반기고, 이 나라의 열정과 설렘이 뒤섞여 날것 그대로의 현지인의 일상을 살피는 재미는 분명하다. 더불어 극명하게 대조를 이루는 거리의 풍경은 여행자의 피로 또한 가중시킨다. 도시의 기능적 구조는 어찌 보면 가늘고 약한 물줄기와 닮아 있다. 뭔가 개운치 않은 느낌을 지울 수 없지만 그럼에도 과달라하라를 떠날 시간이다.

※멕시코 여행 두 번째 이야기가 다음 편에 이어집니다

[글과 사진 추효정(여행작가)]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1021호(26.03.17)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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