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카 벽마저 허문 케데헌…K컬처 새 역사 썼다
골든 글로브·그래미 어워즈 이어
세계 대중문화상 잇단 석권 쾌거
이재 “지금 모두가 우리노래 불러”
전통무용 어우러진 골든으로 화답
‘원 배틀 애프터…’ 작품상 등 6관왕

넷플릭스의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이하 ‘케데헌’)가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장편 애니메이션상과 주제가상 등 2관왕을 차지했다. 골든 글로브, 그래미에 이어 오스카까지 석권하면서 K컬처의 저력을 글로벌 무대에 보여줬다는 평가가 나온다. ‘케데헌’은 한국계 캐나다인인 매기 강 감독이 K팝과 K컬처를 소재로 연출한 작품이다. 한국 전통의 원형을 글로벌 시장에서 소비할 수 있는 형태로 새롭게 해석해 K컬처의 글로벌 지식재산(IP) 가능성을 높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케데헌’은 15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LA) 돌비극장에서 열린 제98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장편 애니메이션상과 주제가상을 받았다. 시상 무대에 오른 매기 강 감독은 “‘저와 닮은 분들’이 주인공인 이런 영화가 나오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려 미안하다”며 “다음 세대는 기다리지 않아도 될 것이다. 이 상을 한국과 전 세계 한국인에게 바친다”라고 울먹이는 목소리로 소감을 밝혔다. ‘케데헌’의 오리지널사운드트랙(OST)의 ‘골든’(Golden)의 작곡가 겸 가창자인 이재는 “이 곡은 성공이 아닌 회복에 관한 노래”라며 “어린 시절 사람들은 K팝을 좋아하는 저를 놀렸지만, 지금은 모두가 우리의 노래를 부른다.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케데헌’의 이 같은 성과는 ‘아카데미 전초전’이라 불리는 골든 글로브 등에서의 잇단 수상으로 이미 예견됐다. 그럼에도 세계적 권위의 영화 시상식에서 디즈니의 ‘주토피아 2’, 픽사 스튜디오의 ‘엘리오’ 등 쟁쟁한 후보를 제치고 작품성을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케데헌’은 지난해 6월 공개된 이후 글로벌 누적 시청 5억회를 넘기며 ‘오징어 게임’ 시리즈를 제치고 역대 넷플릭스 콘텐츠 가운데 최고 흥행을 기록했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지난해 ‘케데헌’ 열풍을 분석한 기사에서 “K팝 걸그룹이 악마 사냥꾼 팀으로 변신하는 애니메이션 영화는 코미디, 액션, 음악, 초자연적 호러 요소를 결합해 감정적인 보상을 주며 재관람할 만한 가치를 크게 만들었다”고 평가했다.
한국어를 가미해 K팝 문법을 충실히 구현한 중독성 있는 노래와 군무도 대중을 매료시켰다. ‘골든’은 K팝 장르 최초로 빌보드 싱글 차트 ‘핫 100’과 영국 오피셜 싱글 차트 ‘톱 100’ 1위를 석권했다. 지난달 열린 그래미 시상식에서는 ‘베스트 송 리튼 포 비주얼 미디어’(시각매체용 최우수 노래) 부문에서 수상하며 K팝 장르 최초의 그래미 수상이라는 역사를 썼다. 극 중 그룹 사자보이즈의 ‘소다 팝’(Soda Pop)에 맞춰 춤을 추는 챌린지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올해 후보 중에 오리지널 한국 작품은 없었지만 K컬처는 ‘케데헌’과 함께 오스카의 또 다른 주인공이 됐다. 전통 무용에 판소리가 어우러진 주제곡 ‘골든’ 무대는 K컬처의 존재감을 전 세계 영화 팬들에게 각인시켰다. 이어 ‘케데헌’ 주인공인 ‘헌트릭스’의 보컬을 맡은 이재, 오드리 누나, 레이 아미가 ‘골든’을 열창하자 리어나도 디캐프리오, 에마 스톤 등 배우들이 응원봉을 흔들며 관람하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윤성은 영화평론가는 “골든글로브, 그래미에 이어 아카데미까지 석권한 것은 우리의 노래와 문화를 소재로 한 작품이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은 데 그치지 않고 작품과 곡의 완성도까지 인정받은 의미 있는 일”이라며 “콘텐츠의 다양성 측면에서도 이 작품이 갖는 의미가 크다”고 평가했다.

한편 이날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는 작품상을 비롯해 감독상(폴 토마스 앤더스), 남우조연상(숀 팬), 각색상, 편집상, 캐스팅 상 등 6관왕을 차지하며 시상식의 주인공이 됐다. 작품을 연출한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은 “훌륭한 후보작들과 동료 감독들과 함께 훌륭한 여정의 일부가 될 수 있어 기쁘다”고 밝혔다. 이 작품은 한때 지하조직 일원으로 활동한 밥 퍼거슨(리어나도 디캐프리오 분)이 위기에 처한 딸 샬린(채이스 인피니티)을 구하기 위해 나서는 추격 액션 블록버스터다. 이민자 등 소수자를 향한 연대와 사랑을 외친 작품은 강경한 이민자 정책을 내세운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를 맞아 주목받았다. 특히 앤더슨 감독 특유의 연출력으로 추격전 장면 등이 호평받았다. ‘데어 윌 비 블러드’, ‘마스터’ 등으로 칸·베를린·베니스 영화제 등 세계 3대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석권했지만, 유독 아카데미와는 인연이 없던 앤더슨 감독은 이날 감독상은 물론 각색상까지 수상하며 오스카 무관의 한을 씻어냈다.

역대 최다인 16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됐던 ‘씨너스: 죄인들’은 남우주연상(마이클 B. 조던), 각본상, 음악상, 촬영상 등 4개 부문을 수상했다. 마이클 B.조던은 무대에 올라 흑인 배우인 덴젤 워싱턴, 윌 스미스, 할리 베리 등의 이름을 차례로 나열하며 “이 자리에 설 수 있었던 것은 저보다 앞서 이 자리에 선 사람들 덕분”이라며 “위인들, 제 선조들, 제 길잡이들 사이에 서게 돼 영광”이라고 말해 박수 갈채를 받았다. 이 외에도 여주 주연상은 ‘햄넷’의 제시 버클리, 여우 조연상은 ‘웨폰’의 에이미 메디건에게 각각 돌아갔다.
한편 이란 전쟁 중에 열린 이번 시상식에서는 전쟁의 종식과 평화, 표현의 자유에 대한 발언들도 쏱아졌다. 유명 방송인이자 시상자인 지미 키멀은 가장 유쾌하면서도 날카로운 정치 풍자로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그는 “아다시피 어떤 국가의 지도자는 언론의 자유를 지지하지 않는다”며 “어느 나라인지는 말할 수 없다. 북한과 CBS만 언급하겠다”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은근히 꼬집었다. 그는 지난해 9월 방송에서 우파 활동가 찰리 커크의 암살 사건과 트럼프 대통령의 반응에 관해 이야기했다가 방송 중단 사태를 겪은 인물이다. 배우 하비에르 바르뎀은 최고의 국제영화 부문 시상자로 나서면서 “전쟁 반대, 팔레스타인에 자유를”이라며 짧지만 강한 목소리를 냈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교육 현장의 모습을 담은 다큐멘터리 부문 상을 받은 ‘푸틴에 반대하는 모든 사람’의 주인공이자 공동 감독인 파벨 탈라킨도 러시아어로 반전(反戰) 메시지를 전했다. “별똥별 대신에 폭탄과 무인기(드론)가 떨어지는 나라들이 있다. 모든 아이의 이름을 걸고 지금 당장 모든 전쟁을 중단하라.”
연승 기자 yeonvic@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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