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9년 묶인 ‘금가분리’ 푼다…전통금융사 지분투자부터 허용 가닥
2017년 시작 그림자 규제 9년만에 손질
원화 스테이블코인 은행 참여 가닥
2단계 입법 후속과제, 이란 전쟁에 미뤄져

14일 금융당국과 관련 업계 취재를 종합하면 금융당국은 디지털자산기본법 2단계 입법 추진과 발맞춰 은행·증권사 등 전통 금융사의 가상자산 시장 진입을 단계적으로 허용해 나가기로 정책 방향을 잡았다.
이 과정에서 금융시장으로의 리스크 전이 우려가 상대적으로 적은 가상자산 사업자에 대한 ‘지분투자’를 최우선으로 개방하는 쪽에 무게를 두고 있다.
특히 가상자산을 직접 수탁(커스터디)하거나 자기자본으로 운용하는 방식보다는, 블록체인 인프라 기업이나 수탁사 등에 대한 지분투자를 먼저 허용하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금융회사가 가상자산 투자를 할 때 가상자산의 불안정성이 금융 시장에 전이되지 않아야 한다”며 “지분투자는 그런 위험과의 연관성이 적어 가장 완화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다만 업계에서 기대하는 전통 금융사의 수탁업 진출이나 자기자본으로 직접 가상자산을 보유·운용하는 등 여러 금가분리 완화 정책 중 특정 완화책이 가장 먼저 시행된다는 확정적 지침이 있는 것은 아니며, 여러 완화 방안이 함께 추진될 가능성도 열어두고 있다.
국내 디지털 자산 시장에 존재하는 대표적인 ‘그림자 규제’ 사례인 금가분리는 지난 2017년 범정부 가상자산 대책 발표 이후 9년간 명시적인 근거 법령 없이 행정지도 형태로 유지되며 전통 금융기관의 가상자산 보유, 매입, 지분투자 등을 엄격히 금지해 왔다. 사실상 금가분리 해소는 복잡한 법 개정 절차 없이도 당국의 정책적 의지만으로 당장 실행이 가능한 사안이다.
이 때문에 JP모건, 블랙록, 비자 등 글로벌 주요국 금융기관들이 앞다퉈 스테이블코인 발행·유통 플랫폼 인수나 실물자산 토큰화(RWA) 등 가상자산 관련 사업 진출에 나서는 상황에서 국내 금융권만 ‘그림자 규제’에 갇혀 뒤처지고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정부는 앞서 지난해 2월 발표한 ‘법인의 가상자산시장 참여 로드맵’을 통해 작년 하반기 이후 금융회사를 제외한 상장법인, 전문투자자로 등록한 법인 등 약 3500개 법인의 가상자산 매매를 허용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문제는 상장법인 등의 대규모 자금이 가상자산 시장에 유입될 예정인 반면, 상장법인 등의 가상자산 매매, 위탁운용, NFT 등 블록체인 연계사업을 지원하기 위한 전통 금융사들의 수탁·블록체인 인프라 시장 진출은 ‘금가분리’로 인해 가로막혀 있었다는 점이다. 특히 은행권의 최대 관심사인 ‘원화 스테이블코인’ 사업이 본격화되기 위해서도 금가분리 완화는 필수적이다.
다른 금융당국 관계자는 “디지털자산기본법 상에 스테이블 코인 발행 등에 있어 은행이 참여하기로 이미 방향을 잡고 있다”며 2단계 입법 내에서 은행권의 구체적인 역할이 명시될 것임을 시사했다.
다만 해당 관계자는 “당장은 디지털자산기본법 2단계 입법이 우선”이라며 “법안이 확정돼야 시장에 추가적인 내용을 공개할 수 있다”고 신중한 입장을 고수했다.
향후 디지털자산기본법 체제가 완비되더라도 은행이나 증권사가 직접 사업자 라이선스를 취득해 가상자산사업을 영위하는 것은 금지될 가능성이 높다.
이와 관련해 또 다른 금융당국 관계자는 “금융회사 본체가 직접 가상자산 사업을 영위하는 것은 여전히 시스템 리스크 측면에서 위험하다고 판단하고 있다”며 “다만 자회사를 통한 사업 진출이나 지분 투자 자체를 막지는 않을 방침이며, 우회 진출을 하더라도 당국 입장에서 규제할 수 있는 수단이 많아 건전성 관리에 대한 걱정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금융당국의 청사진이 실제 정책으로 구현되기까지는 넘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 무엇보다 금가분리 완화 정책의 속도를 결정지을 정부와 여당의 상황이 녹록지 않다.
앞서 민주당 디지털자산 특위(TF)는 지난 5일 금융위 당정협의회를 통해 여당안과 정부안을 절충한 통합안을 확정하고, 3월 중 TF가 대표발의할 방침이었지만 이란 전쟁과 호르무즈 해협 일대서 불거진 지정학적 위기 고조로 인해 기약 없이 미뤄지고 있다.
시장에서는 은행이 블록체인 핀테크 기업에 원활하게 출자할 수 있도록 금융지주회사법 개정도 함께 맞물려 돌아가야 실효성 있는 금가분리 완화가 이뤄질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해 4월 금융지주회사가 자회사가 아닌 핀테크 기업에 출자할 수 있는 한도를 5%에서 15%로 대폭 확대하는 금융지주회사법 개정안이 입법예고된 상태다.
그동안 금융지주회사는 다른 회사를 자회사로 지배하기 위해 50%(상장법인 30%) 이상의 지분을 확보하거나, 자회사가 아닐 경우 5% 이하의 지분만 보유해야 하는 경직된 출자 규제에 묶여 있었다. 이로 인해 유망 기업과의 전략적 파트너십 구축이 어렵다는 지적이 제기되어 왔다.
향후 금융지주회사법 개정안이 시행되면 금융지주회사는 경영권 인수 부담 없이도 적정 규모의 지분 투자를 통한 가상자산 시장 참여가 가능해질 전망이다.
가상자산 업계 관계자는 “현재 글로벌 금융시장은 웹3 기술력을 근간으로 기존 전통 금융권과의 융합이 빠르게 일어나는 추세”라며 “법이 통과되고 이번 로드맵에 따른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이 제시되면, 선도적인 대형 금융그룹이나 은행·증권사들을 중심으로 가상자산 인프라 기업에 대한 대규모 M&A 등 전략적 투자가 단행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시장에서는 당국의 단계별 로드맵이 향후 더 구체적인 형태로 가시화될 경우 국내 금융 생태계 판도에 지각변동이 일어날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디지털 자산 비즈니스 및 RWA 펀드 토큰화 등에 꾸준히 관심을 보여온 대형 증권사들과 수탁 시장 진출을 엿보던 시중 은행들이 가장 먼저 주도권 확보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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