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악마 vs 악의축”…미·이란, 70년 적대의 역사
1979년 이슬람 혁명·미 대사관 인질 사태로 관계 단절
핵 갈등·대리전 거치며 누적된 긴장 결국 전쟁으로
[이데일리 임유경 기자] 이란 전쟁은 단순히 최근 중동 정세의 산물이 아니라 수십 년에 걸쳐 누적된 미국과 이란의 적대 관계의 결과라는 평가가 나온다. 양국은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 서로를 ‘악’으로 규정하며 군사 충돌과 대리전, 제재를 반복해 왔고, 이런 긴장의 축적이 결국 이번 전쟁으로 폭발했다는 분석이다.
15일(현지시간) 미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미국과 이란 정부는 서로를 ‘악’으로 규정해 왔고, 그 악순환이 결국 현재의 전쟁으로 이어졌다”며, 역사적 관점에서 이번 전쟁의 배경을 조명했다.
NYT는 이란 전쟁의 목표에 대해 계속 말을 바꾸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도 이번 전쟁을 역사적 원한의 귀결로 규정하는 데 있어서는 비교적 일관된 태도를 보여왔다고 짚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28일 전쟁 관련 첫 연설에서 “47년 동안 이란 정권은 ‘미국에 죽음을’이라고 외치며 미국과 우리 군, 그리고 여러 나라의 무고한 사람들을 겨냥한 유혈 캠페인을 벌여왔다”며 “이 위협을 끝낼 때가 됐다”고 말했다.

지금의 적대 관계가 처음부터 존재했던 것은 아니다. 이란은 1979년 이슬람 혁명 이전까지 미국의 대표적인 중동 동맹국이었다. 팔라비 왕조 시절 이란은 냉전 기간 소련을 견제하는 미국의 전략 파트너로 자리 잡았고, 대규모 미국 무기를 구매하며 긴밀한 군사 협력을 이어갔다. 이스라엘과도 사실상 협력 관계를 유지하는 등 친서방 노선을 취했다.
하지만 이면에는 갈등의 씨앗도 있었다. 1953년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쿠데타를 지원해 석유 산업 국유화를 추진하던 모하마드 모사데그 총리를 축출하고 친미 성향의 모하마드 레자 팔라비 국왕의 권력을 강화하면서 이란 사회에 반미 정서가 싹트기 시작했다.
양국이 사실상 서로를 영구적 위협으로 인식한 계기는 1979년 이슬람 혁명이었다. 혁명 세력은 미국의 확고한 동맹이었던 팔라비 국왕을 축출했다. 같은 해 미국이 치료 목적이라며 해외로 도피했던 팔라비 국왕의 입국을 허용하자 반미 시위가 격화됐다. 혁명 세력을 지지하는 학생들이 테헤란 미 대사관을 점거해 외교관 52명을 444일 동안 인질로 억류했다. 이 사건은 양국의 관계를 더 악화시켰다. 이란이 외교 관례를 무시한 채 인질 사태를 지속하자 미국은 이란을 ‘불량국가’로 규정했다. 이후 이란은 미국을 ‘대악마(Great Satan)’로 규정하며 반미 노선을 국가 정체성의 핵심으로 삼았다.
1980~2000년대 중동 곳곳서 군사 충돌·테러
1980년대에는 중동 전역에서 양국 간 긴장이 군사 충돌로 이어졌다. 1983년 레바논 베이루트의 미 해병대 막사에서 트럭 폭탄 테러가 발생해 미군 241명이 사망했다. 미국은 이란이 지원한 무장조직 헤즈볼라의 소행으로 보고 있다.
이란-이라크 전쟁(1980~1988년) 동안 미국은 이라크를 지원했고, 페르시아만에서는 유조선 호위 작전을 벌였다. 1988년에는 미 군함이 이란 민간 여객기를 오인 격추해 탑승자 290명이 모두 사망하는 사건도 발생했다. 이 사건은 지금까지도 이란에 깊은 상처로 남았다.
1990년대에도 충돌은 이어졌다. 이란이 지원하는 무장 조직들은 이스라엘과 미국의 이해관계를 공격하며 영향력을 확대했다. 1996년 사우디아라비아 다란의 미 공군 숙소가 폭탄 공격을 받아 미군 19명이 사망했다.

같은 해 이란의 비밀 핵 개발 프로그램이 드러나면서 미국과 서방은 강력한 경제 제재를 가하기 시작했다. 이후 미국과 이스라엘은 사이버 공격 등 다양한 방식으로 이란의 핵 개발을 저지하려 했다.
핵 문제 중심으로 갈등 격화…결국 전면전
양국 갈등은 2010년대 들어 핵 문제를 중심으로 다시 격화됐다. 2015년 이란은 핵 농축 프로그램을 제한하는 국제 협정을 체결했지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2018년 미국을 협정에서 탈퇴시키면서 긴장이 다시 높아졌다.
2020년에는 미군 드론 공격으로 이란 혁명수비대(IRGC) 쿠드스군 사령관 카셈 솔레이마니가 사망하면서 갈등이 공개적으로 폭발했다.
2023년 10월 이란의 동맹인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공격하면서 시작된 가자 전쟁은 2025년 6월 12일간의 충돌로 확대됐다. 당시 미국과 이스라엘 전투기가 테헤란을 폭격해 최소 20명의 이란 군 지휘관이 사망했고, 핵 시설도 공격받았다. 이란은 미사일로 이스라엘을 공격했다. 이후 협상 시도는 실패했고 결국 양국은 전면전에 돌입했다.
수십 년 동안 미국은 이란 내 온건 세력이 등장해 긴장 완화에 나설 가능성을 기대해 왔다. 그러나 약 37년간 권력을 유지하다 2월 28일 이스라엘 공습으로 사망한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와 이란 혁명수비대는 줄곧 강경한 반미 노선을 유지해 왔다.
워싱턴 싱크탱크 카네기국제평화기금의 이란 전문가인 카림 사자드푸르는 이란 정치 구조 자체가 화해를 어렵게 만든다고 지적한다. 그는 “미국과 관계 개선을 원하는 세력은 실제로 정책을 실행할 힘이 없고, 반대로 권력을 가진 세력은 미국과 화해할 의지가 없다”고 분석했다.
임유경 (yklim01@edaily.co.kr)
Copyright © 이데일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호르무즈 호위 연합 발표에…전투함 파견 딜레마 빠진 한국
- ‘아파트 3채’ 황현희 “부동산은 불패…세금 올려도 버틸 것”
- 코스피 하단 최악은 '0000'…증권가 "역사적 저평가" 한 목소리
- 대웅제약 ‘톡신 기술 해제 로비’ 논란…항소심·산업부 결정 변수로
- ‘골든’ 무대 실컷 즐겨놓고… '케데헌' 수상소감 강제중단 논란
- 최고가격제에도 값 올렸네…‘배짱’ 주유소 200곳 넘어
- 주담대 이자 7% 눈앞, 영끌족 어쩌나…커지는 대출금리 공포
- “해로하면 연금 깎인다?”…기초연금 ‘부부 감액’ 손질 나선 정부(종합)
- 벌써 19번째…제주 해안서 차(茶) 봉지 마약 또 발견
- 이보다 더 참혹할 순 없다...'안양토막살인' 정성현[그해 오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