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톤 넘는 꼬막 껍데기 위엔 생명을 다한 잔여의 감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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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각 따각 뿌디딕 뿌디딕.'
바닥을 허옇게 뒤덮은 1톤 넘는 꼬막 껍데기들이 합창하듯 울림 소리를 낸다.
경기 수원 화성행궁 앞 실험공간 유즈에서 지난 12일부터 열리고 있는 김재남 작가의 근작전 '잔여의 정치학'의 주인공은 전남 여수 여자만 섬들에 퇴적된 자연산 꼬막 껍데기들과 밤하늘 별자리의 네거티브 형상을 떠올리게 하는 목탄 가루의 흔적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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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각 따각… 뿌디딕 뿌디딕….’
바닥을 허옇게 뒤덮은 1톤 넘는 꼬막 껍데기들이 합창하듯 울림 소리를 낸다. 꼬막 위를 걷는 발길에 밟히면서 나오는 마찰음이다. 소리를 들으며 거닐다가 시선을 벽면에 걸린 목탄 가루 그림들로 옮긴다. 목화로 만든 판화용 커튼지 위로 목탄 덩어리를 술술 뿌려 별이나 성운처럼 확산되는 이미지를 만든 평면 드로잉 작업들이다.
경기 수원 화성행궁 앞 실험공간 유즈에서 지난 12일부터 열리고 있는 김재남 작가의 근작전 ‘잔여의 정치학’의 주인공은 전남 여수 여자만 섬들에 퇴적된 자연산 꼬막 껍데기들과 밤하늘 별자리의 네거티브 형상을 떠올리게 하는 목탄 가루의 흔적들이다. 전시 공간 바닥을 채운 꼬막들은 처음에는 그저 허연 가루층처럼 보이지만, 직접 올라가 다각거리는 촉감과 소리를 느끼면서 비로소 우리 삶과 함께하는 생태적 물질임을 실감하게 된다. 꼬막의 물질성을 체험하는 과정이 벽면의 목탄 가루 드로잉을 보는 시선으로 전이되고, 자연스럽게 물질이 스스로 남긴 시간의 흔적을 공간에 드러내는 독특한 풍경을 인식하게 되는 전시 얼개가 색다르고 흥미롭다.

김 작가가 전시에 가져온 핵심 개념은 ‘잔여’다. 죽고 남은 것이나 소외된 부분을 뜻하는 현실의 ‘잔여’를 어떻게 지금 전시장에서 생생하게 감각으로 표출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고 한다. 고민 끝에 떠올린 건 고향 여수의 개펄과 해변에서 여성들이 종일 고달프게 캐내어 가족의 생계를 지탱하던 꼬막들. 이 꼬막들이 생명을 다한 뒤 껍질만 남은 채 퇴적된 광경을 연상했고, 꼬막 껍데기들을 전시장에 가져오려고 직접 고향의 섬들을 뒤져 수집했다고 했다. 19세기 미국 면화농장 흑인 노동자들의 애환을 상징하는 코튼지에 나무들의 주검 일부인 목탄을 써서 만든 드로잉 또한 이런 맥락에서 잔여의 의미를 다르게 표상한 작업들이다.
‘정치학’을 제목에 포함시킨 데서 짐작되듯 이 전시는 이미지 소비만을 좇는 지금의 디지털 시각문화가 소외시킨 것들에 대한 관심을 깔고 있다. 몸을 젖혀놓고 눈의 가독성만 강박하는 21세기 현대미술의 감각 질서에 염증을 느낀 작가는 꼬막더미를 비롯한 모든 출품작들을 ‘숨돌림’으로 번역되는 독일 단어이자 홀로코스트를 겪은 루마니아 출신 유대인 작가 파울 첼란(1920~1970)의 시집 제목인 ‘아템벤데’(Atemwende)로 명명했다. 호흡을 위해 들이마시고 내쉬는 사이의 숨 돌리는 순간을 기존 삶의 질서를 벗어나는 전환의 계기로 낯설게 받아들였던 첼란의 성찰을 꼬막과 목탄, 소금의 물질성을 부각시킨 작업들로 형상화한 셈이라고 할 수 있겠다. 28일까지.

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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