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초록색 제철 재료를 찾아볼까”

한겨레 2026. 3. 16.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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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 계절 감수성 키우기
절기 교육은 암기가 아닌 일상 속 경험
가장 쉽고 강력한 교육은 식탁에서 시작
재래시장이나 로컬 푸드 직매장 가보길
절기에 맞는 음식 만들어먹는 것도 방법
입춘에는 ‘입춘대길’ 한자를 프린트해서 색칠해보는 등 절기에 맞는 활동으로 일상을 더 풍요롭게 만들어볼 수 있다. 박은아 기자

‘제철 코어'가 유행이다. 그 계절에 나는 음식을 찾아 먹고, 한철 피는 꽃을 보러 일부러 길을 나서고, 24기 절기에 맞는 활동을 즐기는 삶의 방식을 뜻한다. 2030 젊은 세대 사이에서 번진 이 유행은 사실 아이들에게 더 절실하다. 사계절 내내 딸기가 팔리는 마트, 날씨와 무관하게 돌아가는 실내 생활 속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계절의 변화를 몸이 아닌 머리로 배우기 쉽다. 제철과 절기를 직접 맛보고 피부로 느끼는 경험이 더욱 필요한 이유다. 아이의 계절 감수성을 깨우는 일상 속 절기 교육 노하우를 소개한다.

맛으로 배우는 계절의 감각

가장 쉽고 강력한 절기 교육은 식탁에서 시작된다. 대형 마트보다는 재래시장이나 로컬 푸드 직매장을 아이와 함께 찾아가 보자. 봄에는 쌉싸름한 냉이와 달래 향을 코끝으로 맡아보고, 여름에는 짙은 초록빛 청매실을 손으로 만져보는 경험 자체가 살아 있는 공부다.

시장에 가면 단순히 장을 보는 데 그치지 말고, 아이에게 작은 미션을 주어보자. “오늘은 노란색 제철 재료를 찾아보자”처럼 색깔로 미션을 내거나, 처음 보는 채소 이름을 상인 어르신께 직접 여쭤보게 하는 식이다. 낯선 어른과 나누는 짧은 대화 속에서 아이는 제철 음식에 대한 생생한 정보와 함께 함께 사회적 경험까지 자연스럽게 얻을 수 있다.

절기에 맞는 음식을 식탁에 올리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정월대보름에는 오곡밥과 나물을 함께 먹으며 부럼을 깨물어보고, 동지에는 팥죽을 끓이며 “오늘이 일 년 중 밤이 가장 긴 날이래, 왜 그럴까?”라며 대화를 해보는 식이다. 거창한 설명이 없어도 밥상 앞에서 나누는 짧은 대화 한 마디가 절기를 오래도록 기억하게 만드는 가장 자연스러운 교육이다.

요리 과정에 아이를 함께 참여시키는 것도 좋다. 봄에는 딸기 꼭지를 따며 잼을 만들거나 봄동 비빔밥을 만들고, 여름에는 수박을 잘라 화채를 만들고, 가을에는 감을 깎아 처마에 걸어둔 후 곶감이 되어가는 과정을 관찰해보자. 겨울에는 온 가족이 둘러앉아 김장을 하거나 팥을 불려 팥죽을 끓여보자. 계절마다 달라지는 맛과 활동으로 자연스럽게 계절의 감각을 일깨울 수 있다.

제철 식재료로 요리를 만들어먹는 경험을 가장 좋은 제철 교육이다. 박은아 기자
제철 식재료로 요리를 만들어먹는 경험을 가장 좋은 제철 교육이다. 박은아 기자

일상에서 재미있게 즐기는 절기 활동

절기는 농경 사회의 기준이었지만, 현대 아이들에게는 흥미로운 계절 놀이의 기준이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봄의 시작을 의미하는 입춘(2월4일)에는 한 해의 길운을 바라는 ‘입춘대길’(立春大吉)을 한자로 쓰거나 색칠해 집에 붙이는 활동을 해볼 수 있다. 다가오는 곡우(4월20일)는 봄비가 내려 백곡을 살찌우는 절기다. 본격적인 농사철이 시작되는 곡우에는 화분에 씨앗을 심고 씨앗 성장 일지를 시작해보자. 어떤 씨앗을 심었는지, 물을 언제 얼마나 주었는지 그림으로 기록해볼 수 있다.

여름에는 하지와 대서가 있다. 하지(6월21일)는 1년 중 낮이 가장 긴 날이다. 이날은 아이와 막대기를 땅에 꽂아 그림자 길이를 측정하고, 아침·낮·저녁으로 기록해 보자. 태양의 위치가 달라지는 것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는 흥미로운 과학 시간을 만들 수 있다. 대서(7월23일)는 가장 더운 시기다. 조상들이 더위를 쫓기 위해 삼계탕을 먹고 냇가에서 발을 담갔던 이야기를 나누며, 아이와 함께 시원한 수박 화채나 오이 냉국 등의 계절 음식을 만들어 먹어보자. 추분(9월23일)에는 해가 지는 시간을 함께 기록하고, 이후 날마다 해지는 시간을 관찰하며 해가 길어지는 걸 경험할 수 있다. 낮과 밤의 균형이 맞춰지는 날이라는 사실이 아이에게 신기한 발견이 된다.

이런 식으로 절기를 챙기는 일은 그 자체로 일상을 좀 더 풍요롭게 만드는 작은 이벤트다. 교육이라는 관점을 벗어나 제철을 즐겁게 챙기는 가족의 활동으로 만든다면, 아이를 기대감과 호기심으로 절기를 기다리며 챙기게 된다.

시장은 다양한 재철 채소와 과일을 만날 수 있는 살아있는 교육 현장이다. 박은아 기자

독서와 기록으로 키우는 계절 감각

절기 마법 표지 이미지
절기 활동에 그림책을 더하면 경험이 언어로 연결된다. ‘절기 마법’(천미진 글, 민승지 그림)은 시골집으로 이사 온 가족의 사계절 이야기를 통해 24절기를 정겹게 풀어낸 그림책이다. 절기가 거창한 개념이 아니라 일상을 더 풍요롭게 만드는 즐거운 리듬이라는 것을 아이의 눈높이에서 알려준다. ‘한눈에 펼쳐보는 24절기 그림책’(지호진 글, 이혁 그림)은 입춘부터 대한까지 24절기를 재미있는 이야기와 그림으로 엮은 책이다. 각 절기 이름에 담긴 뜻과 유래, 그 시기에 나타나는 자연 현상, 조상들이 절기를 농사와 일상에 활용해 온 지혜까지 담겨 있다.

책과 함께 기록을 더하면 계절 감각이 한층 깊어진다. 아이와 함께 동네 산책길을 하나 정해두고, 절기가 바뀔 때마다 같은 장소에서 사진을 찍거나 색깔과 냄새의 변화를 기록해보자. 집 근처에서 마음에 드는 나무 한 그루를 정한 후 1년 내내 지켜보자. 잎이 돋고, 꽃이 피고, 단풍이 들고, 앙상한 가지만 남는 과정을 기록하다 보면 1년 후 그 어떤 과학책보다 생생한 자연 교재가 된다. 글자에 아직 서툰 아이라면 색깔과 모양으로 그려 넣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한눈에 펼쳐보는 24절기 그림책

조금 가볍게 시작하고 싶다면 24절기나 계절별 제철 음식이 담긴 달력을 벽에 걸어두는 것도 좋다. “다음 절기는 뭐야? 그때는 뭐 먹어?” 하고 아이가 먼저 달력을 들여다보기 시작하면 절기 교육은 이미 절반쯤 성공한 셈이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고 싶다면 ‘계절 상자’를 아이와 함께 만들어보자. 계절마다 작은 상자를 하나씩 마련해 그 시기에만 만날 수 있는 자연물을 담아가는 활동이다. 봄 상자에는 눌러 말린 벚꽃 잎이나 새싹 씨앗을, 여름 상자에는 바닷가에서 주운 조개껍데기나 매미 허물을, 가을 상자에는 도토리와 단풍잎을, 겨울 상자에는 말린 귤 껍질을 담는 식이다.

절기 교육은 암기가 아닌 일상 속 경험이다. 절기 이름을 몰라도 괜찮다. “이제 공기에서 봄 냄새가 나는 것 같지 않아?” “지난 달보다 해가 길어졌지?”라는 말 한마디로 시작하는 대화가 아이의 계절 감수성을 깨운다. 한 계절에 하나의 활동을 골라 일상을 조금 더 풍요롭게 만들어보자. 그렇게 1년을 보내고 나면, 어느새 아이는 “이제 곧 여름이 올 것 같아”라고 먼저 말할 수 있는 아이로 자라 있을 것이다.

박은아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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