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옥 영향받은 아파트, K건축 최고 발명품"

박태일 기자(ehtwelve@mk.co.kr) 2026. 3. 16.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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英왕립건축사 김호민 폴리머 대표
한옥 마루처럼 뻥뚫린 거실
온돌에 발코니 확장해 사용
일교차와 강풍에 남향 선호
한국인의 DNA 반영한 설계
동대문메리어트호텔 등 설계
EBS '건축탐구 집' 5년 진행
다양한 전원주택 소개해와

성냥갑으로 불리며 도시 미관을 해치는 주범으로 지목돼온 아파트. 한국인 10명 중 6명이 거주하고 최고의 재테크 수단으로 꼽히지만, 정작 '사랑받는 집'으로는 충분히 인정받지 못한다. 그러나 전원주택 260채 이상을 대중에 소개해온 김호민 건축가(52)는 아파트를 "K건축 최고의 발명품"이라고 평가한다. 그는 "반세기 전 도면과 최신 도면을 비교하면 같은 아파트라 보기 어려울 만큼 진화했다"면서 "수천 가구가 모인 대단지에서도 그 안에 사는 사람의 체취와 무드가 더해지며 끊임없이 새롭게 완성되는 주거 공간"이라고 말한다.

김 건축가는 영국 건축사협회(RIBA)에 등록된 영국 왕립건축사로 현재 건축사무소 폴리머(poly.m.ur)의 대표를 맡고 있으며 JW 메리어트 동대문 스퀘어 서울 호텔과 신사동 근린생활시설 '신사블루스' 등 프로젝트를 이끌었다. 또 한국교육방송(EBS)의 '건축탐구 집'을 5년간 진행하며 260여 채의 다양한 전원주택을 소개하는 등 한국인에게 좋은 집이 무엇인지를 탐구해온 건축탐험가다.

김 건축가는 아파트에서 한국 주거문화의 원형을 발견할 수 있다고 귀띔한다. 아파트의 시작은 미국과 독일의 집단 주택을 그대로 들여온 것이었지만, 시대를 거치며 한국적인 집으로 진화했다는 것이다. 김 건축가는 "일단 한옥적인 요소가 많이 가미돼 있다"며 "한옥 마루처럼 사방이 뻥 뚫린 거실이나 중문을 달아 공간을 구분하는 것이 이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또 그는 건넌방·대청·안방을 나란히 배치한 한옥 세 칸 집과 닮은 3베이 구조를 언급하며 "가운데 대청마루가 트여 있어야 안정감을 느끼는 한국인의 DNA를 반영한 설계"라고 덧붙였다.

천편일률적인 일자형 배치를 부른 남향선호사상도 이유 있는 고집이라고 진단했다. 일교차가 극단적이고 산이 많아 바람이 강하게 부는 한국에서는 볕이 깊숙이 들어오는 남향을 선호할 수밖에 없다는 해석이다. 또 김 건축가는 '발코니 확장 면적'을 언급하며 "해외에서는 외부 공간으로 인식하는 발코니를 방처럼 터서 알뜰하게 활용하는 건 한국인뿐"이라고 말했다. 구들장을 놓고 아궁이 잔열까지 효율적으로 활용한 조상님들의 지혜와 닮았다는 해석이다.

"아파트는 60여 년간 최고의 건설사 인재들이 달라붙어 한국인의 생활 방식과 취향을 반영해 만들어온 '팔릴 만한' 상품입니다. 최근에는 각자 휴대폰이나 태블릿을 보며 가볍게 대화를 나누는 공간이 중요해지면서 주방이 거실을 흡수하고 점점 규모가 커지는 추세입니다."

한편 김 건축가는 좋은 집의 중요한 조건으로 건축에 앞서 '터'를 반드시 고려하라고 조언한다. 그는 "풍수지리 차원이 아니라 내가 어디에서 살고 싶은지, 그 장소가 나와 맞는지를 생각해야 한다"며 "대개 한두 번 둘러보고 그 땅에 꽂혀 선택하기 마련이지만 좋은 집터를 찾는 데는 오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좋은 집과 좋은 터는 집단지성의 결과물이자 일종의 인류 문화가 만든 주거 인공지능(AI)과 같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김 건축가는 "아무리 큰 집을 지어도 사람들이 좋아하는 공간은 늘 귀퉁이 구석 일부"라고 설명한다. 그는 "아이들이 숨어 놀던 계단 밑, 햇빛이 오래 머무는 창가처럼 각자가 편안함을 느끼는 장소는 대개 작고 사적인 영역"이라며 "건축 거장 르코르뷔지에도 결국 말년에는 작은 오두막에서 보냈듯, 사람은 자신이 애착을 느끼는 '부분' 속에서 집과 관계를 맺는다"고 말했다. 집이 재테크 수단으로 분류되는 현실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그 안에서도 공간과 나의 관계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다.

"어린 시절 기억 속의 집, 지금 살고 있는 집, 그리고 마음속에 그리는 로망의 집…. 이 속에 우리가 꿈꾸는 집이 숨어 있고 이 세 가지가 겹치면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는 점을 명심하세요."

[박태일 기자 / 사진 김재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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