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에서 화가로…박신양의 전시장엔 ‘광대’가 있다

김민제 기자 2026. 3. 16.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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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문화회관서 두번째 개인전 ‘박신양의 전시쑈: 제4의 벽’
지난 12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박신양의 전시쑈: 제4의 벽’에서 배우에서 화가로 변신한 박신양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최현수 기자 emd@hani.co.kr

지난 12일 찾은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미술관, 배우에서 화가로 변신한 박신양의 두번째 개인전 ‘박신양의 전시쑈: 제4의 벽’이 관람객들을 맞고 있었다. 적막한 가운데 관람객들의 속삭임만이 들려오는 다른 전시장과는 달리, 익숙한 노래가 배경음악으로 깔렸다. 그림들은 흰 벽이 아니라 초록색 페인트를 거칠게 칠한 벽에 걸려 있어 마치 작업실 같다. 더 특이한 건 전시장을 돌아다니는 배우들이다. 서커스 광대 분장을 하고 그림 옆에 앉아 있거나, 알아듣기 어려운 혼잣말을 하거나, 다른 배우들과 무리 지어 전시장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이런 연극적 요소 때문에 그림은 주인공이 되었다가 다시 배경이 되었다가를 반복한다.

박신양은 배우로 왕성하게 활동하다 6년 전 촬영한 작품을 마지막으로 무대나 카메라 앞이 아닌 캔버스 앞으로 자리를 옮겼다.10년 전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그는 요즘 화가이자 작가로 더욱 왕성하게 활동 중이다. 지난 6일 두번째 개인전(5월10일까지)을 개막했고, ‘당나귀’ ‘자화상’ ‘투우사’ ‘사과’ 등 대표작과 함께 자신의 작품 세계를 솔직하고 투박한 언어로 담아낸 책 ‘감정의 발견’(민음사)도 출간했다. 한겨레와의 인터뷰를 위해 세종문화회관을 찾은 이날도 박신양은 미술관 대기실과 전시장을 바쁘게 오가며 관람객들의 반응을 살피고 있었다.

지난 12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박신양의 전시쑈: 제4의 벽’에서 박신양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최현수 기자 emd@hani.co.kr

“많은 분들이 ‘나는 미술을, 예술을 잘 모르지만…’ 하면서 미술과 예술에 대한 얘기를 시작하는데요. 뭔가 잘못됐다고 생각합니다.” 박신양은 전시에 배우를 등장시키며 연극적 요소를 가미한 이유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번 전시는 전시가 이뤄지는 공간이 화가의 작업실이고, 화가가 자리를 비운 사이 작업실의 정령들이 깨어난다는 설정으로 기획됐다. 광대로 분장한 배우들이 연기하는 것이 바로 작업실의 정령이다.

“제 전시를 봤을 때 그림과 연극적 요소, 그리고 공간적 확대가 함께 합쳐진 이미지로 남겨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어요. 관객분들이 연극적 요소를 통해 그림과 미술에 접근하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마음이었고요. 왜냐하면 미술에 대해 얘기하는 것보다 연극에 대해 얘기하는 게 훨씬 쉬울 수 있으니까요.”

지난 12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박신양의 전시쑈: 제4의 벽’에서 박신양이 ‘작업실의 정령’을 연기하는 배우들과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최현수 기자 emd@hani.co.kr

이처럼 전시와 연극을 결합한 시도에는 ‘제4의 벽’에 대한 그의 고민도 담겨 있다. 연극에서 무대와 객석을 가르는 가상의 벽이자 작품 속 상상의 세계와 현실이 만나는 지점을 의미하는 ‘제4의 벽’은 그가 배우 시절부터 집중한 주제이기도 하다. 2023년 연 첫번째 개인전 제목 역시 ‘박신양: 제4의 벽’이었던 이유다.

“작가 입장에서는 ‘제4의 벽’이 고정되지 않고 가변적이길 바랍니다. 2023년 전시장은 (관람객들이) 위층에서 제가 작업하는 것을 내려다보는 구조였어요. 그래서 ‘제4의 벽’이 천장이었죠. (이번 전시에는 배우, 관객, 그림이 있는데) 관객은 배우의 퍼포먼스를 보며 상상에 빠질 수도 있고, 반대로 그림 보는 것을 방해하는 현실로 느낄 수도 있어요.” 관객이 배우의 퍼포먼스에 집중하느냐, 혹은 그림에 집중하느냐에 따라 ‘제4의 벽’이 유동적으로 달라진다는 의미다.

박신양이 자신의 그림 ‘사과 18’을 설명하고 있다. 민음사 제공

박신양에게 전시가 어려움 없이 즐길 수 있는 것이라면, 그림은 파는 것이 아니라 보는 것이다. ‘그림을 판다’고 전제하는 순간 논의 주제가 금세 가격으로 바뀌기에 그는 현재 그림을 팔지 않고 있다고 한다. “어떻게 하면 많은 사람들에게 그림을 보여줄 수 있을지, 그러기 위해 전시는 어떤 형태가 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하고 있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그림을 소장하고 싶어 하는 요구도 많다는 걸 알게 됐어요. 이 두가지 요구를 모두 만족시키는 방법은 무엇일까 처절하게 고민하고 있습니다. 다만 여전히 원화에 대해서는 당분간 판매 계획이 없습니다. 가능하면 영원히 안 팔고 싶어요. 저도 이 생각이 언제까지 유지될지 궁금합니다. 그림을 팔지 않고 작업을 지속한다는 건 작가에게 쉽지 않은 도전이니까요.”

배우와 화가로서의 삶을 모두 경험한 그는 연기와 그림 모두 그럴듯해 보일 수 있지만 고통스러운 과정이라고 강조했다. 배우로 살 때에는 자신을 인간 박신양이 아닌 캐릭터로 대하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면, 화가가 된 뒤로는 그런 문제에선 어느 정도 벗어났지만 또 다른 어려움에 직면해야 했다. “그림에는 더 큰 문제가 있더라고요. 자기에 대한 완전한 해부와 해석을 요구당하는 것이 그것이죠. 그냥 뒤로하거나 모른 척하고 싶은 질문들 앞에 직면해야 하는 것이요.” 그럼에도 그런 과정을 통해 탄생한 그림에는 사람들의 허위와 가식을 걷어내는 위력이 있다고 그는 믿는다. “그림은 마술같이 사람을 겹겹이 둘러싼 채로 굳어져버린 껍데기를 걷어냅니다.”

박신양의 ‘당나귀’ 연작과 그 앞에 앉아 있는 배우의 모습. 민음사 제공

영화 ‘약속’ ‘달마야 놀자’ ‘범죄의 재구성’ ‘박수건달’, 드라마 ‘파리의 연인’ ‘바람의 화원’ ‘싸인’ ‘쩐의 전쟁’ 등에서 강렬한 연기를 펼친 만큼 그의 배우 복귀를 기대하는 이들도 많다. 다시 배우 박신양의 모습을 볼 수 있을까? 박신양은 “좋은 시나리오가 있다면 고려할 것”이라는 짧은 대답으로 가능성을 열어뒀다.

김민제 기자 summ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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