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종묘…유네스코 “3월까지 서울시 영향평가 확답 없으면 위원회 상정”

김현경 2026. 3. 16.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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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의 경우시 세계유산 취소 가능성도
‘매장유산법’ 위반한 SH공사는 고발 조치
3자 논의 제안…사업시행인가 중단 촉구
허민 국가유산청장이 16일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열린 ‘세운4구역 내 사업시행인가 대응’ 언론 설명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국가유산청]

[헤럴드경제=김현경 기자]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서울 종묘 앞 세운4구역 재개발을 둘러싼 정부와 서울시의 갈등이 계속되는 가운데, 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가 이달 안에 세계유산영향평가(HIA)를 받겠다는 서울시의 확답이 없을 경우 종묘에 지위에 대해 논의할 수 있다고 통보했다. 서울시는 HIA를 거부하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 종묘의 세계유산 취소 우려가 제기된다.

국가유산청은 16일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세운4구역 내 사업시행인가 대응’ 언론 설명회를 열고, 지난 14일 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로부터 종묘와 관련해 강력한 입장 표명이 담긴 서한을 받았다고 밝혔다.

유네스코는 서한에서 “서울시가 유네스코의 두 차례의 권고에도 불구하고 세운지구 개발을 강행할 경우 종묘의 세계유산 지위에 매우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서울시가 현재 추진 중인 세운4구역의 개발 인허가 절차에 앞서 세계유산영향평가를 받겠다는 입장 확인 서한을 3월 말까지 회신하지 않을 경우, 세계유산센터는 종묘를 오는 7월 부산에서 열리는 제48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 ‘보존 의제’로 상정하거나 공식 현장 실사를 진행할 수 있다”고 전했다.

이번 서한은 유네스코가 세운4구역과 관련해 보낸 세 번째 공문이다. 앞서 두 건의 서한은 서울시가 세계유산영향평가를 받아야 한다는 권고의 성격이었지만, 이번에는 확답과 함께 위원회 안건 상정까지 언급하며 가장 엄중하고 구체적인 서한을 보냈다.

허민 국가유산청장은 “유네스코는 국내 다수의 제3자 정보 제공을 통해 종묘 앞 개발 상황에 대한 다양한 우려를 전달받았음을 알렸으며, 현재 서울시가 추진 중인 세운4구역의 개발 인허가 절차를 밟기 전에 세계유산영향평가를 반드시 선행할 것을 재차 강조했다”며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인을 매료시키는 K-헤리티지 축제의 장이 될 제48차 세계유산위원회가 자칫 종묘의 세계유산 지위 상실 여부를 논의하는 논란의 장이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매우 우려된다. 의장국으로서 세계유산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하는 부끄러운 모습을 전 세계에 보이게 될까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한국은 그동안 세계유산 협약 이행 모범국으로 평가돼 왔다. 하지만 현재 종묘에 대해 세계가 우려를 갖고 지켜보고 있고,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종묘가 보존 의제로 상정돼 위험에 처한 유산으로 평가될 경우 세계유산에서 해제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유네스코의 지속적인 세계유산영향평가 권고에도 서울시는 이를 거부하고 있다. 이길배 국가유산청 유산정책국장은 “서울시로부터 유네스코 서한에 대한 답을 받기는 했으나 관련된 답변이 아니었고, 영향평가를 받지 않겠다는 내용이었다. 관련 내용을 유네스코에 전달했다”고 밝혔다.

국가유산청과 서울시 간의 예비조정회의는 몇 차례 개최했으나 다음 단계로 나아가지 못했고, 현재 추후 날짜 합의가 안 된 채 답보 상태다.

유산청은 서울시, 문화체육관광부와 함께하는 3자 조정회의를 제안했으나 서울시는 세운4구역 주민 대표까지 포함하는 4자 협의체를 구성하자는 공문을 보낸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관련 허 청장은 “주민 대표들은 국가와 국가유산청, 관계자들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는데, 소송 당사자와 같이 논의하는 것이 맞지 않다고 봤다. 현재 지역 주민도 있지만 과거 주민들과 시민단체도 있기 때문에 나중에 다 같이 협의하고, 우선은 서울시, 유산청, 문체부가 조정 회의를 할 것을 제안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내년 열리는 제49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서울시는 ‘한양의 수도성곽’에 대한 세계유산 등재를 검토받아야 하는데, 정작 자기 도시에 있는 세계유산에 대한 보호 의지를 보여주지 못하면서 내년 세계유산위원회에 참석해 한양도성의 가치와 보호 노력을 세계에 어떻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라고 지적했다.

서울 세운4구역 매장유산 발굴현장 시추 모습. [국가유산청]

아울러 국가유산청은 이날 세운4구역의 사업시행자인 서울주택도시개발공사(SH공사)를 ‘매장유산법’ 위반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다.

국가유산청은 “SH공사가 국가유산청장의 허가 없이 11곳의 지점에 시추해 세운4구역 매장 유산 유존지역의 현상을 변경한 사실을 11일 적발했다”며 “SH공사를 매장유산 보호 및 조사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16일 혜화경찰서에 고발했다”고 밝혔다.

현행 ‘매장유산법’에 따르면 이미 확인됐거나 발굴 중인 매장유산의 현상을 변경한 자, 매장유산 발굴의 정지나 중지 명령을 위반한 자는 10년 이하의 징역이나 1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세운4구역 도시환경정비사업부지 내 유적 발굴조사는 매장유산 법령에 따라 SH공사의 발굴조사 완료 신고와 국가유산청장으로부터 완료 조치 통보가 이뤄지지 않아 법적으로 아직 발굴 중인 매장유산 유존지역으로 관리되고 있다.

국가유산청은 “지난 13일 세운4구역 매장유산 유존지역 발굴 현장에 대한 현지 조사를 실시한 후 SH공사가 ‘매장유산법’ 제31조 제2항을 위반한 것으로 판단했다”며 “이에 SH공사에게 매장유산 유존지역에 대한 발굴조사가 완료되지 않은 부지 내에서 일체의 현상변경 행위를 중단하도록 했고, 반입된 중장비도 즉각 철수시켰다”고 설명했다.

국가유산청에 따르면 2022∼2024년 일대 부지를 조사한 결과, 조선시대 도로 체계를 엿볼 수 있는 흔적을 비롯해 여러 건물터, 배수로 등이 발견됐다. 마을을 보호하고 침입자를 단속하기 위해 입구에 세운 이문 흔적과 최소 7∼8마리의 소뼈가 묻힌 수혈(구덩이)도 확인됐다.

허 청장은 “발굴조사 완료 조치가 되지도 않은 땅에서 토목공사를 위해 시추를 하는 것은 명백한 현행법 위반이라는 사실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을 SH공사와 감독기관인 서울시가 이러한 행위를 하는 것에 대해 국가유산청장으로서 매우 심각한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다”며 “국가유산을 보호하기 위해 모두가 지키는 절차를 SH공사와 서울시가 이렇게 간단히 무시해도 되는지 실로 유감”이라고 전했다.

특히 유산청은 이번 시추를 두고 서울시가 오는 19일 서울시 정비사업통합심의위원회와 4월 중 사업시행인가를 앞두고 재개발 사업 진행을 위한 포석으로 해석한다.

허 청장은 “시추하려면 유산청에 현상 변경 허가를 받았어야 한다. 바로 건설하려는 조치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 사업시행인가를 위한 흐름 아니겠나 판단한다”고 했다.

국가유산청은 보존과 개발의 균형을 강조하며 지난 2018년 합의 내용의 이행을 재차 촉구했다.

허 청장은 “사업시행인가가 완료되면 되돌리는 데 더 큰 희생이 따를 것이다. 서울시 정비사업통합심의위원회 개최를 보류한다는 전제하에 서울시장, 종로구청장, 국가유산청장 등 3자가 함께 참여하는 논의 테이블을 제안한다”며 “갈등과 오해를 풀고 더 나은 서울시의 미래를 위해 함께 노력해 나갈 것을 진심으로 요청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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