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년의 흔적을 피워 올리는 마임이스트 유진규의 ‘꽃’

언어를 초월한 몸짓 예술을 통해 인간과 자연, 삶의 순환을 표현하며 깊은 울림을 선사할 한국 마임의 상징, 유진규 마임이스트 초청 공연이 제주에서 열린다.
세이레아트센터는 오는 31일 오후 7시 30분 세이레아트센터(서광로 182-6, 지하 1층)에서 마임 인생 54년을 맞은 유진규 마임이스트 초청 공연 '사라지며 피어나다: 꽃'을 연다.
주최 측은 "나이 든 예술가에게 꽃은 역설적인 존재다. 마치 촛불이 꺼지기 직전에 빛을 발하듯 유진규는 꽃을 잡는다"라며 "그의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생화는 시대의 비극에 희생된 아름다운 생명의 상징이었다"고 소개한다.
유진규의 '꽃'은 한평생 무대에서 시간을 살아낸 예술가가 그동안의 모든 작업이 몸에 남긴 '습(習)'을 어떻게 마지막으로 마주하는가에 대한 탐구다. 그의 오랜 작업들은 몸의 조직을 구성하는 기억으로 남는다.
주최 측은 이번 공연에 대해 "그 기억을 다시 펼쳐 보이는 회고나 총정리가 아니"라면서 "사라짐을 통해 어떻게 새로운 형태가 생겨나는가? 몸이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남기는가? 예술가의 존재는 마지막 순간 어떤 모습으로 피어나는가? 를 질문한다"라고 설명했다.
어둠과 빛, 몸과 움직임, 침묵의 미학을 통해 삶과 예술, 있음과 없음, 생김과 사라짐에 관해 이야기하며 남기기 위한 창작이 아니라 남지 않는 것들이 피어나는 과정을 바라보는 작업이라고 부연했다.
유진규는 생의 끝자락에서 몸속에 남아 있는 시간의 흔적을 피워 올린다. 그의 몸에는 수십 년 동안 무대에서 지나온 빛과 어둠의 결이 켜켜이 쌓여 있다. 지나간 작품들의 흔적은 더 이상 과거의 기억이 아니라 몸을 구성하는 층위가 되어 살아 움직인다.
무대 위에서 그는 더 이상 무엇을 '표현'하려 하지 않는다. 소리를 비워내고, 움직임을 줄이며, 몸의 기억이 스스로 형태를 만들도록 허용한다. 빛과 어둠이 교차하는 그 사이에서 몸은 사라지듯 피어오르고, 피어오르듯 사라진다.
주최 측은 "50여 년 만들어온 자신만의 시간과 공간으로 관객을 부른다. 때로 막히고 헤매게 할 것"이라며 "마침내 그는 모두를 남겨두고 조용히 사라진다. 남는 것은 각자 자신이다. 침묵 속에서 피어나는 생김과 사라짐, 비움과 채움, 있음과 없음의 순간들. '꽃'은 한 인간이 몸으로 걸어온 예술의 시간이며, 사라짐을 통해 피어나는 존재의 몸짓"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