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픈 하정우표 블랙코미디, 황당한데 어째서 공감이 갈까('건물주')

정덕현 칼럼니스트 2026. 3. 16.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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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서 건물주 되는 법’, 하정우표 블랙코미디에 빠져드는 이유

[엔터미디어=정덕현의 네모난 세상] 건물주. 대한민국에서 이 지칭은 '주님'으로까지 불린다. '건물주님'. 인터넷에 '건물주'라고 치면 누가 시가 수백억의 건물주가 됐다는 기사들이 줄줄이 나온다. 보통의 서민들로서는 상상도 못할 가격이니, 모두의 로망처럼 이 단어가 불릴 수밖에. 하지만 그건 여유 있는 부자들이 건물주가 될 때나 해당 되는 이야기지, 여기 기수종(하정우) 같은 서민의 이야기는 아니다. 빚더미에 올라 겨우 세윤빌딩을 사긴 했지만 매달 이자를 감당하느라 갖가지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는.

tvN 토일드라마 <대한민국에서 건물주 되는 법>은 바로 그 기수종이 재개발이 될 때까지 존버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다 범죄에까지 휘말리게 되는 사건을 그린 블랙코미디다. 주변에서는 '건물주님'으로 불리지만, 자전거로 배달 알바를 하고, 자기 건물 관리인으로 임대인의 막힌 화장실을 손수 뚫어주는 기수종의 대비되는 모습에서 이 블랙코미디가 주는 웃픈 웃음이 피어난다.

모두 아내와 청각장애가 있는 딸의 행복과 미래를 위해 그 '무리한 건물주의 길'을 선택한 것이지만, 바로 그 선택이 가정의 평화마저 깨는 부메랑으로 돌아온다. 장애가 있는 딸의 유학을 위해 마련해 놓은 돈도 당장 갚아야 할 이자로 다 날려버리고, 돈을 마련하기 위해 이리저리 뛰다 보니 가정에도 소홀하게 되어 아내는 남편의 외도를 의심하고 이혼까지 생각하게 된다.

게다가 재개발로 돈을 벌려는 외국계 자본(사실상 사채업자다)이 들어오면서 동네의 건물주들이 모두 위기에 처한다. 잔혹한 폭력 앞에 대부분은 건물을 헐값에 넘기고, 심지어는 살해된다. 기수종 역시 그 위협 앞에서 어떻게든 빨리 돈을 마련해야 할 처지가 됐다. 그 급박한 상황이 맞물리면서, 친구 민활성(김준한)이 자신의 아내 전이경(크리스탈)을 납치해 몸값을 요구하는 범죄에 가담하게 된다.

존버하기 위해 기수종이 어쩔 수 없이 선택하게 되는 일들이 계속 예상과 달리 틀어지면서 갈수록 점입가경의 늪으로 빠져드는 것이 이 블랙코미디가 보여주는 재미다. 예를 들어 민활성이 꼬드겨 하게 된 납치극은 전이경의 엄마 전양자(김금순)의 만만찮은 대응으로 경찰이 개입하면서 사건이 커진다. 여기에 남편의 외도를 의심해 뒤따라온 김선(임수정) 역시 이 사건을 보게 되면서 하게 될 선택이 기수종에게 어떤 가시밭길을 만들지 궁금해진다.

어찌 보면 기수종이 민활성과 하는 이 납치극은 범죄다. 그런데 기수종이 이런 일까지 선택하게 되는 일련의 과정들을 보면서 시청자들은 묘하게도 이 범죄자의 편에 서서 위기에 처할 때마다 가슴을 졸이며 보게 된다. 범죄가 들통날 위기에 처할 때마다 제발 들키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들게 하는 것. 이 기묘한 감정은 어떻게 가능해진 걸까.

그건 이 인물이 어떻게든 '건물주'가 되기 위해 존버하는 그 마음이 너무나 이해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에서 살아남기 위해 어떻게든 건물을 사수하려는 마음은 부동산이 사실상 빈부는 물론이고 삶의 지위까지 가르는 우리네 현실에서 너무나 공감되는 서민 정서가 아닌가. 물론 여기에는 범죄 스릴러가 아닌 블랙코미디로 톤 앤 매너를 갖춘 드라마의 장치가 들어있다. 심은경의 섬뜩한 첫 악역 연기로 등장만으로도 범죄스릴러의 살벌함이 묻어나는 요나 같은 인물이 등장하긴 하지만, 기수종과 민활성이 벌이는 어설픈 범죄는 상황만 봐도 피식피식 웃음이 피어난다.

예를 들어 기수종의 건물이 자작 납치극의 장소가 되는 상황도 그렇다. 얼마나 세입자가 들어오지 않는 건물이면 납치극의 장소가 된단 말인가. 그것은 허울만 있는 기수종이 처한 비극이지만 드라마는 그를 적당한 거리를 두고 바라보게 함으로써 이를 희극으로 바꾼다. 다소 황당하고 웃기지만 오죽하면 저런 선택을 할까 싶은 짠한 감정을 갖게 만든다.

그러면서 <대한민국에서 건물주 되는 법>이라는 제목에 대한 해답이 그 짠하디짠한 존버의 과정을 통해 그려진다. 그 해답은 아마도 땅부자 전양자를 엄마로 둔 전이경처럼 부자로 태어나는 것밖에 없지 않을까. 발을 종종대며 이러 뛰고 저리 뛰는 기수종을 보면서 시청자들은 어떻게든 그가 존버해 건물을 지키기를 바라지만,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걸 이미 알고 있다.

하정우의 범죄까지도 오가는 짠한 고군분투가 시청자들을 공감시키는 데는 이러한 현실적인 정서가 만들어내는 밑그림이 깔려 있다. 과연 그는 끝까지 건물을 지켜낼 수 있을까. 건물을 지켜낸다 해도 그토록 건물주가 되려 했던 진짜 이유인 가정을 지켜낼 수 있을까.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는 하정우의 존버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갈지 자못 궁금해지는 이유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gmail.com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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