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미 내려놓고 돌아가다”…원행대종사 영결식 엄수
- 사부대중 합장 속 ‘오대산의 표상’ 의 마지막 길 배웅
16일 평창 오대산 월정사 화엄루에서 자광당 원행대종사 영결식이 전국에서 모인 스님과 신도, 인연을 맺은 각계 인사 등 2,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조계종 원로회의장으로 엄수됐다. 이른 아침부터 영결식장을 찾은 사부대중은 합장한 채 고개를 숙였고, 슬픔과 숙연함 속에서 ‘오대산의 표상’이었던 스님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했다.
명종이 다섯번 울리고 삼귀의례가 이어지자 영결법요, 행장 소개, 영결사와 법어, 추도사, 헌화 순으로 법요가 진행됐다. 국악인 강권순의 구음이 산중 공기를 길게 흔들었고, 월정사 연꽃합창단의 노래가 뒤따르며 영결식장은 한층 숙연해졌다.

조계종 원로회의 의장 자광스님은 영결사에서 “대종사께서는 조계종 10·27법난 피해자 대표를 맡아 다른 피해자들의 마음속 상처를 치유하는 한편, 피해를 알리는 데 최선을 다하셨다”며 “부디 속환사바(速還娑婆)하시어 미욱한 중생들에게 이 세상이 한바탕 부질없는 꿈임을 일깨워주소서”라고 강조했다.
추도에 나선 조계종 총무원장 진우스님은 “나눔과 소통을 위한 하심(下心)의 삶은 많은 사람들에게 따뜻한 의지처가 되었다”며 “혹여 아직 이루지 못한 원력이 남아 있다면 속환사바(速還娑婆)하시어 그 뜻을 다시 이루시기를 간절히 발원한다”고 말했다.
퇴우 정념 월정사 주지스님은 “스님께서 가신 그곳에도 분명 누런 해가 돋고 흰 달이 뜰 것이다. 스님의 미소처럼 따뜻한 해가 우리를 비추고, 스님의 계행처럼 맑은 달이 우리의 앞길을 밝혀 줄 것”이라며 “스님께서 남기신 ‘멍청이’라는 이름의 고귀한 지혜를 잊지 않겠다” 다짐했다.

지난 12일 월정사에서 원적한 원행대종사는 법랍 57년, 세수 85세였다. 전남 신안에서 태어나 젊은 시절 염불 소리에 이끌려 서울에서 오대산까지 6박7일을 걸어 입산했다. 은사 만화스님과 탄허스님의 가르침 아래 수행의 길을 걸었고, 한암·탄허·만화로 이어지는 오대산 법맥을 잇는 수행자로 살아왔다.
월정사 원주와 재무, 총무, 부주지 등 주요 소임을 맡았고 동해 삼화사와 원주 구룡사 주지를 지냈다. 해인사 장주로 팔만대장경판을 지키는 소임을 맡았으며, 원주교도소를 중심으로 20년 넘게 재소자 교화에 힘쓰며 수행자의 자비를 실천했다. 1980년 10·27 불교법난 때 강제 연행과 고문을 겪었지만 이후에도 법난 진상 규명과 피해자 명예 회복에 앞장섰다.
수행과 사회, 산문과 세속의 경계를 가르지 않았던 그의 삶은 늘 대중과 함께하는 불교의 길을 향해 있었다. 문필가로서의 면모도 깊었다. ‘월정사 멍청이’, ‘탄허 대선사 시봉 이야기’, ‘만화 희찬 스님 시봉 이야기’ 등을 펴내며 오대산 법맥의 정신을 기록했고, 칼럼과 강연을 통해 불교의 가르침을 대중의 언어로 풀어냈다.

이날 영결식에서 많은 이들의 마음에 오래 남은 것은 스님이 남긴 ‘열반송’이었다.
“밭갈이 마치고 오대산 고개에 호미 던져두니
전나무 숲 파도 소리는 여전히 법문을 설하네
지는 잎 뿌리로 돌아가 다시 거름이 되나니
빈승이 오늘 아주 떠난다고 말하지 마라.”
스님은 자신의 마지막을 그렇게 말했다. 삶의 밭갈이를 마치고 잠시 호미를 내려놓을 뿐, 숲의 바람과 법음은 계속된다는 뜻이었다. 영결식이 끝난 뒤 법구는 월정사 다비장으로 이운됐다. 사부대중의 염불이 잦아들고 집전의 낮은 목소리가 울리자 연화대 위로 불길이 천천히 올랐다. 연기가 하늘로 번지자 일부 문도들은 고개를 들지 못한 채 한참을 합장했다.
낙엽이 결국 뿌리로 돌아가 거름이 되듯, 수행자의 삶도 다시 세상의 바탕이 된다는 열반송의 뜻처럼 큰스님은 그렇게 오대산 품으로 스며들었다. 산을 떠난 것이 아니라 산의 바람과 전나무 숲의 법문 속으로 돌아간 셈이었다.
한편 이날 영결식에는 대한불교 조계종 중앙종회의장 주경스님, 교구본사주지협의회장 등운스님, 전국비구니회 회장 광용스님, 고광록 제4교구 신도회장, 박정하 국회의원, 박진오 강원일보 사장,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강원지사 예비후보, 여중협 강원도행정부지사, 임성원 평창부군수 등 사부대중과 지역 인사들이 참석해 스님을 추모했다. 평창 월정사=오석기, 강동휘기자

자광당 원행 대종사 행장(慈光堂 遠行 大宗師 行狀)
1. 개요
◇ 법명: 원행(遠行)
◇ 법호: 자광(慈光)
◇ 출생: 전남 신안군 비금면 광대리 156번지
2. 학력
◇ 서울 선린정보고등학교(舊 선린상고)졸업
◇ 오대산 월정사 승가대학 졸업
◇ 고려대학교 생명환경대학원 수료
3. 경력
◇ 대한불교조계종 제4교구 본사 오대산 월정사 입산
◇ 월정사에서 만화스님을 은사로 탄허스님을 법사로 수계득도
◇ 대전 계룡산 자광사 주지
◇ 가야산 해인사 팔만대장경 장주
◇ 대한불교조계종 제10대 중앙종회 의원
◇ 대한불교조계종 호계원 호계위원
◇ 동해 두타산 삼화사 주지
◇ 원주 치악산 구룡사 주지
◇ 대한불교조계종 제4교구본사 오대산 월정사 부주지
4. 현직
◇ 민주평통 제14~21기 자문위원 (현)
◇ 대한언론인회 고문 (현)
◇ 조계종 10.27 불교법난 피해자 대표 (현)
◇ 대한불교조계종 제4교구본사 오대산 월정사 선덕 (현)
◇ 대한불교조계종 원로회의 의원 (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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