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돈지간에서 견원지간으로…태광·롯데 갈등 재점화
승기 잡은 롯데, 3월 주총 계기로 이사회 재편 ‘태광 지우기’ 나설 듯
(시사저널=송응철 기자)
롯데홈쇼핑을 둘러싼 '사돈 기업' 태광그룹과 롯데그룹의 갈등이 재점화했다. 태광이 롯데홈쇼핑의 '통행세' 의혹을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하면서다. 그러나 공정위의 조사 불개시 결정에 따라 승리는 롯데 쪽으로 기우는 모양새다. 롯데는 여세를 몰아 이사회 구도를 재편, '태광 지우기'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태광은 "대주주의 횡포"라며 갈등의 불씨를 남겼다.
태광은 최근 롯데홈쇼핑과 롯데쇼핑(롯데백화점) 등 7개 롯데 계열사를 공정위에 신고했다. 이들 회사가 롯데홈쇼핑과 납품업체 사이에서 통행세를 받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롯데쇼핑은 롯데홈쇼핑 최대주주(53.49%)이며, 태광은 태광산업(27.99%)과 대한화섬(10.21%), 티시스(6.78%) 등 계열사를 통해 지분 44.98%를 보유한 2대 주주다.

공정위, 태광 신고 '조사 불개시'
롯데홈쇼핑은 롯데백화점 등 롯데 유통 계열사가 보유한 상품을 온라인몰에서 판매하는 과정에서 제휴수수료를 지급한다. 또 롯데백화점 등에 입점한 매장 임차인들에게 임차수수료도 제공한다. 태광은 롯데홈쇼핑이 납품업체 간 직거래가 가능함에도 2006년부터 거래 단계에 롯데 계열사를 끼워넣어 부당한 이익을 제공해 왔다고 주장했다.
태광그룹 관계자는 "롯데홈쇼핑이 롯데쇼핑의 매출 증대를 위해 직매입 재고 제품을 정상적인 판매수수료 수준보다 낮은 대가만 받고 파는 판매 용역을 제공해 주고 있는 것으로 볼 여지가 크다"며 "롯데케미칼 실적 부진 등으로 자금난을 겪고 있는 롯데 계열사들이 다양한 수법으로 롯데홈쇼핑 보유 자금을 노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롯데홈쇼핑 관계자는 "지난 19년 동안 이사회에서 아무 문제 없이 동의했던 사업 구조를 이제 와서 큰 문제가 되는 것처럼 문제 삼고 있는 배경에 대해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며 "주주사의 정상적 문제 제기에 대해서는 겸허히 수용하고 개선 방향을 찾고 있지만, 회사 이익에 반하는 터무니없는 주장이나 문제 제기에 대해서는 강경하게 대응할 계획"이라고 반박했다.
이번 갈등은 해프닝으로 마무리됐다. 공정위가 이 사건을 심사관 전결로 '심사 절차 종료'로 처리했기 때문이다. 공정위는 신고 내용만으로는 사실관계 확인이 곤란해 법 위반 여부 판단이 불가능하다는 취지로 조사 불개시 결정을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이로써 롯데가 승기를 잡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관건은 롯데홈쇼핑이 3월 주주총회에서 추진 중인 이사 선임 안건이다. 현재 롯데홈쇼핑 이사회는 롯데 측 5명과 태광 측 4명으로 구성돼 있다. 이사 선임은 보통결의 사안인 만큼 과반의 지분을 보유한 롯데쇼핑의 단독 처리가 가능하다. 이 추세대로라면 향후 롯데홈쇼핑 이사회는 롯데 6, 태광 3 구조로 재편된다. 이 경우 특별결의 안건도 롯데의 단독 처리 범위에 들어가게 된다. 롯데홈쇼핑 내 태광의 영향력이 사라지는 셈이다.
업계에서는 향후 롯데홈쇼핑과 롯데 계열사 간 거래가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고 관측한다. 롯데홈쇼핑은 2022년 자금난을 겪던 롯데건설에 5000억원을 지원하려다 태광 측 이사들의 반대로 1000억원으로 축소했다. 롯데 측은 지난해 12월 이사회에서도 올해 내부거래액을 670억원으로 확대하는 안건을 상정했으나, 태광 측 반대로 무산됐다.
롯데홈쇼핑은 2005년 당시 1·2대 주주이던 경방과 아이즈비전의 협약에 따라 이사회를 5대 4로 구성했으며, 2006년 1·2대 주주가 롯데와 태광으로 변경된 이후에도 이런 구도가 유지됐다. 태광그룹 관계자는 "롯데홈쇼핑 주주 간 협약은 견제와 균형을 통해 회사를 올바른 방향으로 키워 나가자는 약속"이라며 "롯데가 부당지원 성격의 내부거래를 확대하기 위해 상호협약을 무력화하는 것은 협약 위반일 뿐만 아니라 명백한 대주주의 횡포"라고 밝혔다.

태광, 롯데에 '3전 3패'
태광과 롯데는 '사돈 기업'이다.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이 고(故) 신격호 롯데그룹 창업주의 동생인 신선호 일본 산사스그룹 회장의 장녀 신유나씨와 백년가약을 맺었기 때문이다. 그런 두 기업이 날 선 분쟁을 벌이는 것을 두고 업계에서는 해묵은 갈등이 표면화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태광과 롯데가 처음부터 악연이었던 건 아니다. 한때는 사업 파트너로 돈독한 관계를 유지했다. 앞서 2001년 태광산업과 롯데쇼핑은 컨소시엄을 이뤄 롯데홈쇼핑 사업자 선정에 도전했다. 당시 태광과 롯데 컨소시엄은 경방·아이즈비전·KCC정보통신·대아건설·행남자기 등으로 구성된 컨소시엄에 밀려 고배를 마셨다. 그러나 이후 태광은 2006년 우리홈쇼핑 지분 45%를 인수하며 최대주주에 올랐다.
그 직후 롯데쇼핑이 롯데홈쇼핑 지분 53%를 확보하면서 갈등이 시작됐다. 한순간에 2대 주주로 밀려난 태광은 2007년 법원에 롯데쇼핑의 롯데홈쇼핑 인수 승인을 취소해 달라는 소송을 제기했으나 패소했다. 이후 태광과 롯데는 크고 작은 분쟁을 반복했다. 롯데홈쇼핑의 법인명이 여전히 '우리홈쇼핑'으로 남아있는 것도 그 잔재다. 법인명 수정을 위한 정관 변경에 태광 측 이사들이 반대표를 던졌기 때문이다.
양 그룹 간 불화는 2023년 태광이 롯데홈쇼핑을 공정위에 고발하며 수면 위로 부상했다. 롯데홈쇼핑 이사회가 그해 롯데지주와 롯데웰푸드가 소유한 서울 양평동 본사를 2039억원에 매입하기로 한 결정과 관련해서다. 당시 태광은 사옥 매입이 과도하게 높은 가격에 이뤄졌다며 이사회 재개최를 요구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법원에 낸 이사회 결의 효력 정지 가처분신청도 기각됐다.
이에 태광산업은 롯데 측 롯데홈쇼핑 이사들을 부당지원 행위 혐의로 공정위에 신고했다. 그러나 공정위는 지난해 9월 무혐의 결론을 내리며 롯데의 손을 들어줬다. 사옥 거래 과정에 절차·가격상 문제가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한 재계 관계자는 "태광은 2007년과 2023년 경영권·사옥 분쟁부터 이번 통행세 의혹까지 '3전 3패'를 기록하고 있는 셈"이라며 "롯데홈쇼핑 이사회 구성까지 롯데 측의 계획대로 변경될 경우 태광은 분쟁의 동력을 잃게 될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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