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원근의 독서출판] 천만 관객 영화와 출판시장 확산 효과
[한국독서교육신문 백원근 독서출판평론가]
영화인들의 꿈이라는 천만 관객 돌파의 최신 흥행작인 장항준 감독의 <왕과 사는 남자>가 연일 화제다. 천만 관객을 돌파한 한국 영화로는 25번째, 미국 영화(9편)를 포함하면 34번째다(천만 관객 돌파 영화 - 나무위키). 흥미로운 점은 한국 영화로 처음 천만 관객을 돌파한 작품이 강우석 감독의 <실미도>(2003)였고, 이것이 2000년대 이후라는 점이다. CGV, 메가박스, 롯데시네마 등 대자본에 의한 전국 멀티플렉스 영화관 시스템의 관객 흡인력이 결정적 영향을 미쳤음은 물론이다. 외국에서는 흥행의 기준을 흥행 수입으로 판단한다고 하는데, 우리는 영화관 관람객 수가 그 척도가 되고 있다.

개봉 40일 만인 3월 15일 기준으로 누적 관객 1,300만 명을 돌파한 <왕과 사는 남자>의 흥행 요인에 대해서는 다양한 논의가 있다. 기존의 세조와 단종의 권력투쟁 관점만이 아닌 영월 백성들의 입장에서 역사를 바라본 게 주효했다는 평가도 있다. 영화의 흥행 효과는 영화관 밖으로도 번지고 있다. 무엇보다 영화 흥행과 함께 영월 청령포 등 촬영 지역에 관광객이 대거 몰렸고, 관련 역사책 판매와 도서관 대출의 활성화로도 이어지고 있다. 4월에 열리는 단종문화제에 대한 관심도 어느 때보다 커졌으며, 역사 공부 모임의 가입자도 증가세라고 한다.
서점에서는 춘원 이광수가 1세기 전에 쓴 『단종애사』부터 조선시대 역사책들이 특별 코너에서 판매되고 있다. 『단종애사』는 1928~1929년에 동아일보에 연재된 작품인데, 1954년 박문출판사에서 발간한 초판본 디자인을 활용한 책 등이 팔리고 있다. 이덕일, 설민석, 박영규 등이 쓴 여러 버전의 『조선왕조실록』도 인기다. 어린이 역사책 『어린 임금의 눈물』도 있다.
그렇다면 특정 영화의 흥행이 출판시장으로 번져 관련서 구매로 확산되는 현상은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천만 명을 돌파한 국민 흥행 영화만을 기준으로 살펴보자. 1,762만 명이라는 기록으로 현재까지 한국 영화사상 최고 흥행작으로 꼽히는 김한민 감독의 <명량>(2014)은 당시 이순신 장군을 주인공으로 삼은 김훈의 『칼의 노래』(2001)를 역주행 베스트셀러로 만들었다. 영화를 소설화한 박은우의 『명량』, 『난중일기』, 필름북, 전기물은 물론이고 이순신 장군이나 거북선 관련 퍼즐, 블록, 장남감까지 인기를 끄는 등 그 특수를 누렸다.
양우석 감독의 <변호인>(2013)의 경우 영화에 등장하는 1980~1990년대 대학가 필독서, 이른바 '불온서적'의 판매량이 급증하기도 했다. E.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를 비롯해 리영희 교수의 『전환시대의 논리』, 조세희 작가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영화 소재로 알려진 노무현 대통령 관련서 등이 이때 큰 주목을 받았다.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장훈 감독의 영화 <택시 운전사>(2017)가 화제가 되자 그 진실을 처음 알렸던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한강의 『소년이 온다』 등의 판매량이 신장되었다. 인터넷서점 예스24는 2017년 8월 기준 두 도서의 전월 대비 판매량 증가세가 각각 164%와 52.9%라고 밝혔다.
김용화 감독의 영화 <신과 함께>(2017)는 원작 세트 도서(8권)가 영화 개봉 이후 4주간 70% 넘게 판매량이 증가했다. 또한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2019)은 한국 영화 100주년이던 해에 천만 관객의 기록을 세운 데 이어, 이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4관왕(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국제영화상)을 석권하며 그 각본집이 많이 팔렸다. 30대 여성이 주요 구매층이었다.
김성수 감독의 <서울의 봄>(2023)이 흥행 영화로 떠오르자 서점들은 '서울의 봄, 책으로 봄' 코너를 마련하는 등 관련서 마케팅을 펼쳤고 5‧18 및 민주화운동 관련서 판매가 약진했다. 장재현 감독의 <파묘>(2024)가 흥행에 성공했을 때는 오컬트 영화(마술, 악령, 영혼, 사후 세계 등을 다룬 괴기 영화) 소재와 관련된 책과 만화들이 주목을 받았다. 누적 판매량이 1천만 부가 넘는다는 이우혁의 『퇴마록』이 다시 인기를 끌었고, 풍수와 명리학 관련서에 대한 주목도가 전례 없이 높아졌다.
원작 또는 특별한 관련서가 있는 영화가 아니지만 영화 흥행 이후에 책이 발행된 사례도 여럿이다. 강제규 감독의 <태극기 휘날리며>(2004)는 천만 흥행 이후 소설과 메이킹북, 어린이 만화책 등이 만들어졌다. 봉준호 감독의 <괴물>(2006)은 영화가 흥행하자 어린이 만화책으로 발행되었다. 연상호 감독의 재난 블록버스터 <부산행>(2016)은 영화 대본을 책으로 펴낸 '비주얼 노블'이다. 소설과 함께 감독 인터뷰와 촬영 현장 이미지 등을 담았다. 추창민 감독의 <광해, 왕이 된 남자>(2012)는 같은 이름의 역사소설(이주호‧황조윤 지음)을 영화 제작 단계부터 기획해 책을 펴낸 사례다. 윤제균 감독의 <국제시장>(2014)은 소설 『국제시장』을 영화 개봉과 함께 펴내 2만 부 이상이 판매되었다.
이처럼 영화의 흥행이 관련서에 대한 관심을 촉발시키는 '스크린셀러' 또는 '무비셀러' 현상은 이전부터 있어 왔다. 과거 인기 드라마의 원작이나 드라마에 소개된 책이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르는 현상(TV셀러, 드라마셀러), 인기 연예인이나 유명인이 추천한 책이 주목을 받는 현상 등은 화제 도서의 방정식에 등장하는 단골 메뉴들이다. 영화 흥행작에 제한시켜 분석해 보면, 흥행의 정도가 클수록, 흥행 기간이 길수록, 원작이 있거나 관련서를 특정할 수 있는 경우에 출판시장으로의 파급 효과도 컸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문학 작품이 국제적인 문학상을 수상하는 효과에는 훨씬 미치지 못하지만, 흥행 영화에 대한 관심 정도가 연관 콘텐츠의 소비로 확장되면서 크고 작은 특수를 만들어 왔다.
<2025년 국민 독서실태 조사> 항목 중에는 "드라마, 영화 등을 보고 원작을 찾아서 읽거나 들어본 적이 있는지"를 묻는 문항이 있다. 이에 대해, 지난 1년간 책을 읽은 독자들 중에서 해당 경험이 있다는 비율(기간은 제한이 없음)은 성인의 44.1%, 초중고 학생의 55.5%로 비교적 높게 나타났다. 영상 콘텐츠의 원작 독서 경험은 성인의 경우 여성(48.0%)이 남성(39.3%)보다 높고, 20대의 57.4%를 필두로 연령이 낮을수록 그 비율이 높았다. 동시에 독서량이 많을수록 그 비율은 증가했다.
원작이 있는 영화가 아닌 <왕과 사는 남자>의 경우, 영화를 보고 관련서를 찾아 읽는 비율은 전반적으로 높지 않은 듯하다. 또한 특별한 메이킹북(영화 제작 관련 책)을 발행하지 않는 한 출판 특수가 커질 가능성도 제한적이다. 그럼에도 흥행 영화가 역사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독서문화나 출판시장과 연동된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다양한 사회적, 문화적 관심사와 연계된 생활인들의 흥미를 독서와 책 구매로 연결하는 유용한 장치들이 개발되어야 할 여지가 많다는 점이다. 책은 세상의 모든 것을 담는 활자로 만든 그릇이기에, 다양한 계기를 통해 흥미와 궁금증을 책으로 끌어들이는 문화 마케팅의 적극적인 활성화가 필요하다. 영화 제작 단계부터 출판과 연동하는 콘텐츠 가치사슬 전략도 강화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