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살 소녀 목의 ‘안 아픈 멍울’, 돌이킬 수 없는 후회 되지 않으려면[기고/하정훈]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며칠 전, 진료실에 앳된 얼굴의 12세 소녀가 부모님과 함께 들어왔다.
아이의 목 양쪽에는 육안으로도 보일 만큼 커다란 멍울이 불룩 튀어나와 있었다.
멍울은 그대로였지만, 아이가 아프다는 말을 안 하니 대수롭지 않게 넘긴 것이다.
특히 저출산으로 아이들의 수가 급격히 줄어든 것을 고려하면, 인구 10만 명당 발생률은 20년 전보다 3배 이상 폭증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며칠 전, 진료실에 앳된 얼굴의 12세 소녀가 부모님과 함께 들어왔다. 아이의 목 양쪽에는 육안으로도 보일 만큼 커다란 멍울이 불룩 튀어나와 있었다. 사연을 들으니 탄식이 절로 나왔다.
목에 멍울이 처음 만져진 건 무려 2~3년 전이었다고 한다. 당시에는 아프기도 해서 동네 병원을 찾았고, 약을 먹고 통증이 가라앉자, 부모님도 아이도 “이제 다 나았나 보다”하고 안심했다. 멍울은 그대로였지만, 아이가 아프다는 말을 안 하니 대수롭지 않게 넘긴 것이다. 그렇게 방치된 멍울은 점점 커졌고 급기야 반대쪽 목까지 퍼진 뒤에야 다시 병원을 찾았다.
초음파검사 화면을 보는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조직검사(세침흡인세포검사)를 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 만큼 명백하고 심각한 갑상선암이었다. 암은 이미 갑상선 전체를 뒤덮고 양측 경부 림프절까지 광범위하게 전이된 상태였다. 5시간은 족히 걸릴 대수술이 예상되는 매우 위중한 상태였다. ‘조금만 더 일찍 왔더라면’하는 아쉬움이 진료실을 가득 메웠다.
많은 사람이 “아이한테 무슨 암이냐”며 반문한다. 하지만 최근 2002년부터 2022년까지의 국가암등록통계를 살펴본 결과는 다르다. 2014년 ‘갑상선암 과잉 진단’ 논란 이후, 성인 갑상선암 환자는 검진 감소와 함께 급격히 줄어들었다가 다시 증가하고 있다. 반면, 19세 이하 소아 청소년의 갑상선암 발생자 수는 이와 무관하게 지속해서 증가하고 있다.
특히 저출산으로 아이들의 수가 급격히 줄어든 것을 고려하면, 인구 10만 명당 발생률은 20년 전보다 3배 이상 폭증했다.

앞서 만난 소녀의 사례에서 우리가 얻어야 할 뼈아픈 교훈은 통증에 대한 오해다. 부모들은 보통 아이가 통증을 호소하면 놀라서 병원에 오지만 아프지 않으면 “크면 없어지겠지”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의학적으로 더 위험한 신호는 통증 없는 멍울이다. 통증이 있는 멍울은 감기나 편도염에 의한 림프절염인 경우가 많아 오히려 안심할 수 있다. 반면, 만져지는데 아프지 않고, 단단하며,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커지는 멍울은 종양일 가능성이 높다. 특히 소아청소년기에 이런 멍울이 만져진다면 즉시 초음파검사를 받아야 한다.
소아청소년 갑상선암은 성인보다 진행 속도가 빠르고 림프절 전이가 흔하다. 앞선 환자처럼 발견이 늦어지면 수술 범위가 매우 커진다. 수술 중 성대 신경이 다치면 평생 쉰 목소리로 살아야 하고, 부갑상선 기능이 떨어지면 평생 칼슘 약을 먹으며 손발 저림을 견뎌야 한다. 특히 소아의 부갑상선은 정상 지방조직과 모양과 색이 비슷해, 림프샘을 광범위하게 제거할 때 부갑상선을 찾아서 살리기가 매우 어렵다. 한창 예민한 성장기 아이에게 이런 합병증은 삶의 질을 무너뜨리는 치명타다. 대한갑상선학회 가이드라인에서 ‘소아청소년 갑상선암 수술은 합병증 위험이 크기 때문에, 수술 경험이 풍부한 숙련된 의사가 집도하는 것이 좋다’고 권유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소아청소년 갑상선암은 매우 드물지만, 분명히 존재하고 조기에 발견해 제대로 수술받으면 완치율이 매우 높기도 하다. 부모의 작은 관심이 아이의 평생을 좌우할 수 있다. 오늘 밤, 아이를 안아주며 목을 한번 만져보자.
하정훈 땡큐서울의원 원장·이비인후과 전문의
Copyright © 동아일보.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에너지 위기에 믿을 건 원전…“이용률 80%까지 끌어올린다”
- 정동영 “트럼프 북미대화에 높은 관심…北, 기회 놓치지 말아야”
- [단독]‘尹관저 공사’ 21그램 대표, 계엄 1주뒤 휴대전화 교체
- “혹시나” 무안공항 담벼락 둘러보다 또 ‘유해 추정’ 10여점 발견
- [속보]케데헌, 주제가상도 거머쥐어…아카데미 2관왕
- 64세 윤영미 확 바뀐 외모…“용기 내길 잘했다 생각” [노화설계]
- “방화범 신난 듯 서있어”…새벽 배달기사·시민이 큰불 막아
- 트럼프, 호르무즈 파병 고강도 압박…中에 ‘정상회담 연기’ 거론
- 정청래 “검찰개혁, 故노무현 떠올라…질적으로 다른 상징성”
- 송언석 “호르무즈 해협 파병, 국회 동의 필수…정부 일방 결정 안돼”